ADVERTISEMENT

정용진의 유니크한 꿈이 열린다…'최고 와인 6개' 탄생시킨 그곳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와인 시장은 정말 미쳤어요(crazy)! 최근 2~3년 새 매출이 정말 좋았습니다. 셰이퍼 와인을 좋아해줘서 고마웠죠.”

더그 셰이퍼 ‘셰이퍼 빈야드’ 대표 현지 인터뷰

미국 나파밸리 와인 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더그 셰이퍼(Doug Shafer·66) 셰이퍼 빈야드 대표는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첫인사를 건넸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셰이퍼 빈야드’ 와이너리에서 만난 셰이퍼 대표는 “신세계의 투자로 새로운 포토밭을 매입하는 등 좋은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며 크게 웃었다.

셰이퍼 빈야드는 지난 2월 신세계그룹이 2억5000만 달러(약 3300억원)에 인수했다. 1972년 설립된 나파밸리의 터줏대감이자 손꼽히는 와인 명가가 한국 기업의 품에 안긴다는 소식은 전 세계 주류 업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10월 찾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셰이퍼 빈야드. 더그 셰이퍼 대표가 와이너리를 소개하고 있다. 유지연 기자

지난 10월 찾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셰이퍼 빈야드. 더그 셰이퍼 대표가 와이너리를 소개하고 있다. 유지연 기자

이번 인수는 와인에 조예가 깊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더 화제가 됐다. 정 부회장은 미국 출장 때 이곳을 직접 찾아 와이너리를 점검해 “(셰이퍼가) 전통과 역사, 개성을 모두 갖춘 이상적 와이너리”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더그 셰이퍼는 회사 매각에 대해 “셰이퍼의 구성원 모두가 100% 지지했다”며 “신세계와 셰이퍼는 최고 품질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셰이퍼 와이너리 전경. 예약 후 투어가 가능하고 와인 시음도 할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셰이퍼 와이너리 전경. 예약 후 투어가 가능하고 와인 시음도 할 수 있다. 유지연 기자

‘파리의 심판’ 불러온 비옥한 땅 

소박하지만 고급스럽다-. 나파밸리 스택스 립 지역의 산비탈에 위치한 셰이퍼 와이너리에 대한 첫인상이다. 동굴이나 성으로 만들어 으리으리한 건축물 대신 잘 지은 2층 고급주택이 손님을 맞이했다.

셰이퍼의 출발은 50년 전 시카고에서 출판사 ‘스콧 포어스먼’이었다. 이 회사의 중역이었던 존 셰이퍼(John Shafer·2019년 작고)는 포도원이 미래의 유망 투자처라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보고서를 읽고 ‘귀촌’을 결정한다. 그의 나이 47세, 아들 더그 셰이퍼가 17세 때였다. 다음은 셰이퍼 대표와 일문일답.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 셰이퍼 와이너리 전경.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재배한다. 사진 셰이퍼 빈야드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 셰이퍼 와이너리 전경.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재배한다. 사진 셰이퍼 빈야드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인상이 어땠나. 
1972년 와이너리를 인수하고 이듬해 이곳으로 이사 왔다.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날씨가 추운 시카고에 있다가 따뜻한 해변과 햇볕, 서핑과 미녀들이 있는 이곳이 정말 ‘쿨(cool)’하게 느껴졌다(웃음).   
포도 농사가 쉽지 않았을 텐데.  
여기는 포도가 자라는 데 기막힌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다. ‘박스 캐니언(Box canyon·양쪽이 절벽인 깊은 협곡)’의 미세기후(좁은 지역 내의 기후)가 블루베리만큼 작고 검은, 풍부한 맛의 포도를 키워 낸다.    
셰이퍼의 와인은 농밀하고 강렬한 풍미를 자랑하면서도 부드러운 타닌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셰이퍼 빈야드

셰이퍼의 와인은 농밀하고 강렬한 풍미를 자랑하면서도 부드러운 타닌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셰이퍼 빈야드

구릉지에 펼쳐져 낮에는 뜨겁고 해가 저물면 서늘하면서, 물이 잘 빠지는 화산지대 토양인 스택스 립은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생산에 적합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현재 미국 와인의 명성을 만든 지역이기도 하다. 프랑스 와인이 최고로 여겨지던 1970년대, 블라인드 시음회에서 종주국 프랑스를 꺾어 업계를 놀라게 했던 일명 ‘파리의 심판’을 연출한 와이너리 ‘스택스 립 와인셀러’ ‘끌로 뒤 발’이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셰이퍼가 위치한 나파밸리 스택스 립 지역에는 미국 와인의 현재 명성을 만든 와인 명가들이 자리한다. 유지연 기자

셰이퍼가 위치한 나파밸리 스택스 립 지역에는 미국 와인의 현재 명성을 만든 와인 명가들이 자리한다. 유지연 기자

벨벳 장갑을 낀 강철 주먹

셰이퍼 와인의 특징이 뭔가.
강렬한 풍미의 ‘풀바디’ 와인이면서 풍성하고 조화롭다. 너무 많은 타닌(떫은맛)이나 신맛을 내지 않고, 어떤 맛이든 과하지 않게 섞는다.  

셰이퍼의 레드 와인은 강렬하면서도 부드럽다. 동시에 장기 숙성 잠재력을 가진 견고한 와인이다. 별명은 ‘벨벳 장갑을 낀 강철 주먹’이다. 대표 와인 ‘힐사이드 셀렉트’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카베르네 소비뇽이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맛”이라는 극찬과 함께 한 번도 어려운 100점 만점을 6차례나 받았다.

셰이퍼 빈야드는 레드 와인 4종, 샤도네이 1종, 디저트 와인 1종 등 최고급 와인 6종을 낸다. 유지연 기자

셰이퍼 빈야드는 레드 와인 4종, 샤도네이 1종, 디저트 와인 1종 등 최고급 와인 6종을 낸다. 유지연 기자

가장 와인 맛이 좋았던 해는?
모두 자식 같아서 고를 수가 없지만, 굳이 꼽겠다면 1999년이다. 그해 10월 포도 수확철에 일을 하다 말고 샤워를 한 뒤 좋은 셔츠를 입고 포도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청바지에 카우보이 부츠를 신었고, 아내는 드레스를 입었다. 파티는 없었고, 바로 일터로 복귀했다(웃음). 그때만큼 기후가 좋았던 때도 없었다.  
어떤 와인을 추구하나.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 마시는 사람이 반사적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와인이다. 위대한 것은 단순함에 있다. 와인은 숭배할 필요는 없다. 삶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평소 25달러(약 3만원)짜리 와인을 즐긴다. 테이블 위 음식과 잘 어울리고, 대화의 윤활유가 되면 된다.  

만들면 팔린다, 셰이퍼의 성공 방정식

와인을 숭배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셰이퍼의 와인은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 열광적 지지를 받는다. ‘힐사이드 셀렉트’(375달러·국내가 75만9000원)의 희귀 빈티지는 병당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셰이퍼의 대표 와인 힐사이드 셀렉트. 2008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첫 G20 정상회의 만찬의 메인 와인이기도 하다. 사진 셰이퍼 빈야드

셰이퍼의 대표 와인 힐사이드 셀렉트. 2008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첫 G20 정상회의 만찬의 메인 와인이기도 하다. 사진 셰이퍼 빈야드

현재 셰이퍼는 나파밸리 주요 지역 9145만㎡(약 27만 평) 부지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힐사이드 셀렉트’와 ‘원포인트 파이브’ ‘릴 렌트리스’ ‘TD-9’ 같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레드 숄더랜치’, 디저트 와인 ‘파이어 브레이크’ 등 6종을 만든다.

셰이퍼 부자와 38년간 합을 맞춰온 와인 메이커 엘리아스 페르난데스(Elias Fernandez)는 셰이퍼 와인의 성공 비결을 ‘가족 경영’에서 찾았다. 소수의 인원이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서 좋은 품질을 고집한 것이 지금의 셰이퍼의 명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셰이퍼 부자와 엘리아스 페르난데스로 이뤄진 팀은 나파밸리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카베르네 소비뇽·시라·샤르도네 등 손대는 품종마다 최고 와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릴렌트리스 시라 2008’은 2012년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됐다.

셰이퍼 빈야드에서 38년간 와인을 만들어 온 엘리아스 페르난데스 와인 메이커. 유지연 기자

셰이퍼 빈야드에서 38년간 와인을 만들어 온 엘리아스 페르난데스 와인 메이커. 유지연 기자

페르난데스에 따르면 포도를 딸 때부터 이미 완벽한 것만 따고, 카메라로 확인하면서 일일이 다시 선별한다. 포도밭의 온도와 습도는 나무에 센서를 달아 관리한다. 이후 100% 프랑스산 오크통에 32개월 보관·숙성하며 병입 후에도 1년을 더 숙성하는 ‘느린’ 생산방식을 고집한다. 제초제 대신 양 떼를, 쥐약 대신 맹금류를 풀어 포도밭을 관리하며 오크통도 한 번만 쓰고 재사용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품질 관리를 한다.

프랑스산 오크통에 와인을 숙성시키는 모습. 32개월간 숙성시킨다. 유지연 기자

프랑스산 오크통에 와인을 숙성시키는 모습. 32개월간 숙성시킨다. 유지연 기자

“신세계가 펼칠 앞으로 50년 기대”

업계에선 신세계가 셰이퍼 인수를 통해 향후 차별화한 와인 개발을 통해 주류 계열사 신세계L&B와 시너지 창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셰이퍼 같은 고급 와인 수요는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와인 시장은 지난 2008년부터 연평균 11.8%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이탈리아·미국산 고가 와인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다. 지난해 국가별 와인 수입액 증가율은 프랑스(93.8%), 이탈리아(86%), 미국(59.8%) 순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신세계L&B는 와인 수입사 이상의 역할 확장 가능성도 점쳐진다. 업계에선 신세계가 나파밸리의 간판 브랜드를 인수함으로써 미국 와인 업계의 완전한 ‘이너서클(소수 핵심층)’에 들어갔다는 해석도 나온다. 단순 수입을 넘어 생산까지 한다는 점에서 국내 와인 업계를 한층 성장시킨 것은 물론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수년 전부터 글로벌 사업을 위해선 브랜드 가치가 뛰어난 와이너리 인수가 도움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셰이퍼 같은 고급 와이너리는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위상이 격상되는 효과가 있다. 이른바 ‘신세계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퍼즐이 된다는 얘기다.

더그 셰이퍼 대표는 셰이퍼와 신세계의 공통점으로 '퀄리티 브랜드'라는 점을 꼽았다. 유지연 기자

더그 셰이퍼 대표는 셰이퍼와 신세계의 공통점으로 '퀄리티 브랜드'라는 점을 꼽았다. 유지연 기자

새 주인을 맞으면서 가족 경영의 장점이 희석되지는 않을까. 
지난 8개월간 지켜봤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는 종전 방식 그대로 와인을 만들고 있고, 고용 승계도 온전히 이뤄졌다. 최고의 품질을 추구해 나간다는 같은 철학 아래 우리가 지난 50년간 해온 비즈니스를 앞으로 50년 이후까지 해 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매각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6개월 전 새로운 포도밭 22에이커(약 2만7000평)를 샀다.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대표로 있고 그동안의 경험을 나눠 셰이퍼가 더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와이너리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진 않았나.
다섯 자녀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이 행복한 일을 했으면 한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