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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알 파치노도 왔다…‘게임계 오스카’ 시상식서 본 IP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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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마이크로스포트 시어터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TGA)에 관객들이 시상자로 알 파치노가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미국)=박민제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마이크로스포트 시어터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TGA)에 관객들이 시상자로 알 파치노가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미국)=박민제 기자

“사실 전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제 아이를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죠.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비디오 게임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특하고 몰입감 넘치는 방식에 대해서요.”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 백발이 성성한 대배우 알 파치노(82)가 무대에 등장하자 7000여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알 파치노가 나타난 이곳은 영화제가 아니라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TGA·The Game Award). 목소리 연기나 모션 캡처 등 게임 속 캐릭터를 잘 구현한 배우에게 줄 연기상(Best Performance) 시상자로 나선 그는 “게임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더 게임 어워드가 뭐야?

TGA는 게임 저널리스트 제프 키글리(Geoff Keighley)가 2014년 만든 게임 시상식이다.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MS Xbox), 텐센트, 닌텐도, EA 등 글로벌 주요 게임사 대부분이 GTA 자문위원회에 참여해, 게임업계의 아카데미상(오스카)으로도 불린다. 팬들의 지지도 뜨겁다. 지난해 시상식은 전 세계 8500만 명이 동시 시청했을 정도.

올해 TGA는 총 31개 부문을 시상했다. 시상식 중간중간엔 신작 게임 소식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월드 프리미어가 이어졌다. 약 50여 개에 달하는 신작 트레일러들이 이날 공개됐다. TGA 수상작이 글로벌 게임 산업의 현재라면, 월드 프리미어는 미래를 보여주는 셈. 중앙일보는 국내 언론사 중 유일하게 TGA 2022에 초청받아 시상식에 참여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마이크로스포트 시어터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TGA)에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미국)=박민제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마이크로스포트 시어터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TGA)에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미국)=박민제 기자

이게 왜 중요해 

◦ 게임은 최근 수년 사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알 파치노 같은 배우가 시상자로 나온 것도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도 이날 최고 인디게임 데뷔작 후보를 영상으로 소개했다.
◦ 글로벌 게임 산업 규모는 나날이 확장 중이다. MS Xbox 내부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게임 이용자는 30억 명이며 2030년까지 45억명으로 증가할 전망. 게임산업 전문가인 오의덕 인벤 글로벌 대표는 “알 파치노 말고도,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를 실사화한 HBO 드라마의 주인공 역 배우 페드로 파스칼 등이 이날 시상자로 나왔다”며 “게임 IP(지식재산)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에 진입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프롬소프트웨어가 개발하고 반다이남코가 배급한 게임 엘든 링은 지난 8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에서 최고상인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다. [사진 반다이남코]

프롬소프트웨어가 개발하고 반다이남코가 배급한 게임 엘든 링은 지난 8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에서 최고상인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다. [사진 반다이남코]

IP 비즈니스 센터, 게임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세는 미디어 믹스(media mix)다. 잘 만든 원천 IP를 활용한 신작을 지속해서 선보이고 이를 다양한 장르로 확장해 기존 팬덤 플러스 알파(+α)를 만드는 게 성공 공식이다. 그간 하위 문화로 여겨졌던 게임은 미디어 믹스에 IP로서 중요성을 재평가 받고 있다. 특히 게임은 다른 미디어보다 더 몰입감 높은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로열티 높은 팬덤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IP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 올 초 개봉한 액션 어드벤처 영화언차티드가 약 4억 달러(5224억 원)를 벌어들이며 글로벌 흥행한 점이 대표적이다. 언차티드는 게임사 너티독의 동명 인기 게임 시리즈에 기반을 둔 실사 영화였다.

이날 TGA에서도 이런 트렌드는 확인됐다. 최고상인 올해의 게임(GOTY·Game of the Year) 후보작 6개 중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스 3’ 등 3개가 유력 IP 시리즈 게임의 최신작이었다. GOTY 수상작인 일본 프롬소프트웨어의 ‘엘든 링’ 또한 전작인 ‘다크 소울’ 시리즈 시스템에 오픈 월드 개념을 접목, 사실상 다크 소울 후속작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 2월 출시 된 엘든 링은 6개월간 1660만장이 팔렸다. 내년 출시 예정 게임 중 가장 기대되는 작품을 뽑는 ‘최고 기대작’ 부문에서도 닌텐도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 후속작인 ‘왕국의 눈물’이 수상했다. 후보작 5개 중 4개가 기존 IP를 활용한 게임이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마이크로스포트 시어터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TGA)에서 관객들이 내년 6월 출시일을 확정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신작 게임 디아블로Ⅳ 관련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미국)=박민제 기자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엔젤레스 마이크로스포트 시어터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TGA)에서 관객들이 내년 6월 출시일을 확정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신작 게임 디아블로Ⅳ 관련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미국)=박민제 기자

미래를 가늠할 월드 프리미어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이어졌다. 현장 팬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운 게임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디아블로Ⅳ’. 첫 게임이 나온 지 26년, 전작인 디아블로 III가 나온 지 11년 만의 신작이다. 가수 할시(Halsey)의 공연과 함께 디아블로Ⅳ 트레일러와 함께 출시일(2023년 6월 6일)이 공개되자 환호성이 이어졌다. 로드 퍼거슨 디아블로 총괄 매니저는 “디아블로 원작의 암울한 분위기에 디아블로 II의 영웅 육성 요소, 디아블로 III의 실감 나는 전투를 결합해 디아블로 IV의 광활하고 생동감 있는 야외 세계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스퀘어에닉스는 ‘파이널 판타지 16’,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는 ‘철권8’, 캡콤은 ‘스트리트파이터 6’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닌텐도는 내년에 개봉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기반 애니메이션 영화의 트레일러를 선보였다.

배우 알 파치노(왼쪽)는 지난 8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 연기상(Best Performance) 시상자로 참여했다. 알 파치노가 연기상 수상자인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주인공 캐릭터 크레토스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저지(오른쪽)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TGA 트위터]

배우 알 파치노(왼쪽)는 지난 8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더게임어워드 연기상(Best Performance) 시상자로 참여했다. 알 파치노가 연기상 수상자인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주인공 캐릭터 크레토스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저지(오른쪽)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TGA 트위터]

그런데 한국 게임은?

약 3시간 반 동안 진행된 시상식에서 한국 게임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던전 앤 파이터 듀얼(네오플)이 최고 액션게임, 페이커(이상혁)·쵸비(정지훈) 등이 최고 e스포츠 선수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이 눈에 띄는 정도. 수상작(자)는 없었다. 월드 프리미어에서도 크래프톤이 지난 2일 출시한 ‘칼리스토 프로토콜’ 트레일러를 선보인 게 전부였다. 국내 중견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 글로벌 게임 시장 주류가 모바일에서 다시 PC·콘솔로 넘어갔다”며 “국내에선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전념했던 게임사들이 이제야 PC·콘솔 시장으로 다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 글로벌 주류 게임업계 흐름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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