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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 첫 서울 리사이틀, 록 콘서트 같은 환호와 기립박수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이후 첫 서울 콘서트를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 임윤찬. 2400여 청중이 기립 박수를 치며 록 콘서트장 같은 열기를 연출했다. 사진 목프로덕션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이후 첫 서울 콘서트를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 임윤찬. 2400여 청중이 기립 박수를 치며 록 콘서트장 같은 열기를 연출했다. 사진 목프로덕션

환호성과 갈채의 음량이 여느 공연과 달랐다. 2400여 좌석에 가득 찬 청중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무대 위 피아니스트를 놓칠세라 일제히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촬영했다.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기념 임윤찬(18)의 첫 서울 리사이틀 모습이다.

반 클라이번 우승 기념 10일 예술의전당 공연 #바흐 ‘신포니아’, 리스트 ‘단테 소나타’ 등 연주 #‘임윤찬 신드롬’ 2400여 청중 뜨거운 반응 #공연 시작 전 한정판 음반 1000장 동나

오후 5시, 임윤찬이 등장해 피아노로 걸어갈 때도 박수와 환호가 이질적으로 강렬했다. 피아노에 앉은 임윤찬은 갈채가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 경의 파반느와 갈리아드’ 연주를 시작했다. 기번스는 글렌 굴드가 바흐보다도 좋아했던 튜더 왕조 시대의 버지널(건반이 있는 발현악기, 소형 하프시코드) 음악 작곡가다. 느린 춤곡인 파반느 연주는 두꺼운 양피지의 책을 펴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담담했다. 이어진 빠른 춤곡 갈리아드는 리드미컬했던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남겼다.

임윤찬이 굴드로부터 받은 영향은 다음 곡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벤션과 신포니아’ 중 ‘15개의 3성 신포니아’에서도 계속됐다. 신포니아 15곡을 굴드가 1957년 모스크바에서 연주한 순서대로(당시에는 1번을 연주하지 않았다) 쳤다. 신포니아 1번은 투명하고 낭랑했다. 맑게 비상하는 듯했다. 2번은 먹먹함을 안겨줬다. 5번은 왼손 저음의 확실한 존재감 속에 고음이 약동했다. 14번은 통통 튀는 악구를 고개를 까딱이며 연주했다. 11번은 멜로디를 주고받는 응답이 인상적이었고 10번은 발랄한 진행감 속에 또랑또랑한 터치와 화음이 돋보였다. 15번은 빠른 템포를 취했고 7번에서는 좀 흐트러지고 무심한 표현을 들려줬다. 6번은 장식음이 인상 깊었다. 12번은 굴드 연주처럼 질주하면서도 표현이 뚜렷했다. 잠시 뜸을 두고 연주한 13번은 비감이 섞인 채 율동적이었다. 3번은 매끄러웠고 4번의 선율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임윤찬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일으키며 연주했다. 8번은 경쾌하고 구김 없는 질주였는데, 여운이 귓가에 남았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마지막으로 연주한 9번은 신중하게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개를 건반에 묻었다가 이내 들어 올리면서 연주를 끝냈다.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하는 임윤찬은 콘서트 2부에서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명료하게 해석해 연주했다. 사진 목프로덕션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하는 임윤찬은 콘서트 2부에서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명료하게 해석해 연주했다. 사진 목프로덕션

리사이틀 1부에서 굴드와 바흐를 느낄 수 있었다면 2부는 프란츠 리스트가 주인공이었다. ‘두 개의 전설’ S.175 중 1곡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에서 피아노의 해머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로 아찔한 트릴(차이 나는 음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꾸밈음)을 선보였다. 오른손으로 고음 트릴을 연주하며 왼손으로 지휘하듯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당당하고 웅장한 연주였다. 금가루를 뿌리듯 황홀한 악구의 연속이었다.

2곡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에서는 묵직한 저음으로 곡의 스케일을 키워갔다. 격정적인 폭발과 쏟아붓는 에너지 속에 옅은 광기도 번뜩였다. 천둥이 치는 듯한 저음 속에 옹골차고 강인한 응어리가 느껴졌다. 임윤찬은 종소리 같은 여운을 남기며 연주를 끝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임윤찬은 프로그램 마지막 곡인 리스트 ‘순례의 해’ 중 이탈리아 제7곡 소나타풍 환상곡인 ‘단테를 읽고’(단테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한 임윤찬이 ‘연옥’의 다차원적인 내용을 정리해 명료하게 리스트의 세계로 안내하는 연주였다. 어둑해지며 격렬하게 심연으로 내려가다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밀도 높은 강렬한 타건을 선보였다. 단도직입적이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연주였다. 어떤 악구도 소홀히 하지 않는 임윤찬의 성실함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서정성을 보이다가도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소리로 표정을 바꿨다. 임윤찬은 수미상관을 이루는 멋진 마무리로 2부를 마쳤다.

앙코르 첫 곡은 바흐의 ‘시칠리아노’였다. 우울하면서도 애틋한 선율에 청중은 숨을 죽였다. 두 번째 앙코르는 고도프스키가 편곡한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였다. 원곡에서 첼로가 백조의 유유히 떠가는 모습을 묘사했다면 임윤찬의 영롱한 피아니즘은 반짝이는 호숫가의 물빛까지 그려냈다.

연주를 거듭할수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함성과 갈채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만원 청중으로 붐볐다. 임윤찬 최초 DG 발매 음반인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의 딜럭스 포토북 버전 1000장이 공연 2시간 전 판매되자마자 매진되기도 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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