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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주운전?" 벌금 날벼락…검사 실수에 14년 억울한 누명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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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자꾸 벌금을 내라는 연락이 온다면, 알고 보니 동명이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면 어떨까요? 14년 만에 누명을 벗은 60대 남성 김모씨 이야기입니다.

[그법알 사건번호 120] 갑자기 날아온 벌금 70만원 약식명령, 검사 실수였다면

서울 시내의 한 도로에서 경찰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도로에서 경찰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뉴스1

김씨가 누명을 쓴 것은 동명이인인 40대 남성 김씨의 음주운전 범행입니다. 진범 김씨는 지난 2008년 혈중알코올농도 0.056%의 술에 취한 상태로 차를 몰다가 적발됐습니다. 당시 사건을 맡은 검사는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는데, 이때 진범 김씨가 아닌 다른 김씨의 인적사항과 등록기준지를 적었습니다.

법원 역시 이 약식명령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약식명령은 재판부가 공판 절차 없이 검사의 서면만 보고 처분하기 때문에, 검사나 피고인이 법정에 나오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뒤바뀐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지요. 약식명령을 받은 피고인이 재판부에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거나 무죄를 다투고 싶은 경우에는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 이런 불복 절차 없이 약식명령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김씨는 자신이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듯합니다. 검사가 잘못 쓴 것이 김씨의 주민등록번호와 등록기준지이다 보니 김씨가 사는 주소로 약식명령이 제대로 송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커 보이는데요. 10년이 지나 누명 벗기에 나선 김씨는 2020년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끌어냈습니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최근 대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관련 법령은?

형사소송법 제441조에 따르면, 이미 확정된 사건이라도 명백하게 법에 위반된 것이 있을 때 검찰총장은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습니다. 신청 기간에 제한이 없고, 형의 시효가 소멸했거나 판결을 받은 사람이 사망했더라도 허용됩니다. 검찰총장만이 신청할 수 있고, 대법원만 심리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컷 법원

컷 법원

법원 판단은?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17일 김씨에 대한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김씨 인적사항이 적힌 판결도 파기하고, 김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김씨가 벌금형을 확정받은 사건에 형사소송법 위반이 있다고 봤습니다. 형사소송법상 검사가 피고인으로 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공소 효력이 미치지 않는데, 김씨는 진범 김씨와 엄연히 다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검사가 공소장에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잘못 써 표시상 착오가 있는 경우, 공소장에 기재된 사람에게 공소제기의 효력이 미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원으로서는 형식상이나 외관상 피고인의 지위를 갖게 된 사람에게 공소기각으로 판결해 불안정한 지위를 명확히 해소해 주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진범 김씨에게는 뒤늦게라도 벌금을 물릴 수 있을까요? "쉽지 않다"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진범 김씨의 음주운전 전과 등에 따라 공소시효가 다르겠지만, 길어도 5년이라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물론 형사소송법에 공소시효를 멈추는 조항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정지 사유가 ▶범인이 해외로 도피하거나 ▶다른 사건으로 공소가 제기됐을 경우 등이라 진범 김씨에게 해당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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