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만 태우는 'LAS VEGAS 검정車'…고령화 日서 대박 난 그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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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도쿄 마치다(町田)시. 오전 9시 30분 금색으로 '라스베이거스(LAS VEGAS)'라고 적힌 검은색 승합차에서 내린 한 남성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아침부터 그가 찾은 곳엔 슬롯머신과 파친코 기계, 마작 테이블 등이 여럿 놓여 있다. 그런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들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일본에서 카지노와 요양시설을 접목한 이색 서비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카지노 게임을 하기 전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모습. 사진 라스베이거스 공식 페이스북 캡처

일본에서 카지노와 요양시설을 접목한 이색 서비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카지노 게임을 하기 전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모습. 사진 라스베이거스 공식 페이스북 캡처

65세 이상 인구 비율(29.1%)이 세계 1위인 일본에서 요양시설과 카지노를 접목한 어르신 돌봄 센터 '라스베이거스'가 인기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일본 TBS 방송은 "벽 쪽에는 슬롯머신 등이 9대 설치돼 있고 어르신 19명이 마작, 파친코를 하고 있었다"면서 "요양시설인지 카지노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이 '라스베이거스'는 2013년 도쿄 아다치(足立)구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 일본 전역에 지점 22곳이 있다. 모리 가오루 사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찰을 하면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모리 사장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크게 지고 난 후 주위를 보니 어르신들이 많았다.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를 탔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고 한다.

모리 가오루 사장은 ″어쩔 수 없어서 가는 곳에서 어떻게 해서든 가고 싶은 요양시설로 바꾸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진 라스베이거스 홈페이지 캡처

모리 가오루 사장은 ″어쩔 수 없어서 가는 곳에서 어떻게 해서든 가고 싶은 요양시설로 바꾸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진 라스베이거스 홈페이지 캡처

모리 사장은 기존 요양시설에선 색칠 공부·종이접기·볼링 등을 하는데 주로 남성들이 "재미없다, 안 다니고 싶다"고 불평하던 점도 떠올랐다. 그는 "일본에선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요양시설에 다닌다'는 인식이 강한데, '카지노 가는 기분'으로 즐기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다"고 밝혔다. 임원 회의에서 반대가 컸지만 "실패하면 책임지겠다"면서 밀어붙였다고 한다.

이 시설을 다니는 어르신들의 일과는 오전 9시 집 앞에서 특별한 차량을 타는 것으로 시작된다. "흰색 차량이 오면 요양 서비스를 받는다는 걸 이웃에게 들켜 싫다"는 불만을 반영해 싱가포르에서 카지노와 호텔을 오가는 검정 차량을 도입했다. 직원들도 휴양지에서 볼 법한 유니폼을 입고 분위기를 낸다.

흰색 차량이 집 앞으로 모시러 가면 이웃사람들이 "저 분은 요양 서비스를 받는구나"라는 소문이 나서 싫다는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검은색 차량을 보낸다. 사진 라스베이거스 홈페이지 캡처

흰색 차량이 집 앞으로 모시러 가면 이웃사람들이 "저 분은 요양 서비스를 받는구나"라는 소문이 나서 싫다는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검은색 차량을 보낸다. 사진 라스베이거스 홈페이지 캡처

시설에 도착한 어르신들은 우선 혈압 체크 등 건강을 점검하고 스포츠 트레이너가 추천하는 스트레칭을 한 뒤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료'는 진짜 돈이 아닌, 매일 체조를 하면 받을 수 있는 '베가스'란 화폐를 사용한다. 운동을 싫어하는 노인들도 체조에 적극 동참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시설 내에서만 사용가능한 게임머니인 '베가스'. 사진 라스베이거스 홈페이지 캡처

시설 내에서만 사용가능한 게임머니인 '베가스'. 사진 라스베이거스 홈페이지 캡처

1회 체조로 받는 '화폐'는 1만 베가스로, 지난해 1위를 한 어르신은 1억461만 베가스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카지노와 요양시설을 접목한 이색 서비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 라스베이거스 공식 페이스북 캡처

일본에서 카지노와 요양시설을 접목한 이색 서비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 라스베이거스 공식 페이스북 캡처

점심의 경우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식단이 제공되는 기존 요양시설과 달리, 이용자가 밥 먹을 시간이나 메뉴를 고를 수 있다. 오후엔
목욕이나 취미 활동 등을 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매일 어르신들의 게임 결과를 알림장에 기재하고 시상식도 개최한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매일 어르신들의 게임 결과를 알림장에 기재하고 시상식도 개최한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오후 4시 30분, 직원들은 그날 게임 결과를 '패스포트'로 불리는 알림장에 적고 시상식을 연 뒤 귀가를 돕는다. 매일 주는 상이 게임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는 설명이다.

이런 시설을 두고 초창기엔 "노인들이 도박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지만 시설 도입 9년이 지난 현재, 도박 중독 증상을 호소하는 이는 없으며 건강에 도움된다는 평가가 많다고 한다. "재밌어서 다른 시설은 가고 싶지 않다", "두뇌 회전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카지노와 요양시설을 접목한 일본 '라스베이거스'에서 2021년 기준 게임머니를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은 1억461만 베가스를 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카지노와 요양시설을 접목한 일본 '라스베이거스'에서 2021년 기준 게임머니를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은 1억461만 베가스를 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TBS는 대부분의 요양시설은 남성들이 재미없다고 기피해 여성 대 남성 비율이 8대 2인 반면, 라스베이거스는 6대4 비율이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일본에선 요양 서비스에 도예·서예·시(하이쿠) 짓기, 바느질·노래방·영어회화 등이 접목되고 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이모티콘 만들기, 컴퓨터 조작법 익히기도 인기라고 TBS는 전했다.

일본의 이런 현상은 한국도 눈여겨 볼 만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7.5%를 차지했다. 2070년엔 이 비율이 46.4%가 된다는 전망이다.

아기가 '직원'인 요양원도…따스한 포옹이 '업무'

일본에는 조손 세대 간 교류를 늘리는 차원에서 아기가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곳도 있다. 사진 토이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일본에는 조손 세대 간 교류를 늘리는 차원에서 아기가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곳도 있다. 사진 토이프로젝트 홈페이지 캡처

일본에는 아기가 '근무'하는 요양원도 있다. 인구 94만 명인 기타규슈 시에 있는 요양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고령화된 일본 사회에서 노년층에 활기를 주고 세대 간 교류를 활발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아기 직원'을 둔 요양원이 있다고 보도했다.

4세 이하가 보호자와 함께 출근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따뜻한 포옹을 해주는 게 주요 '업무'다.

단, 의무적으로 일할 필요는 없고 그저 원할 때 와서 걸음마와 옹알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놀면 된다고 한다. '급여'로는 기저귀·분유, 카페 이용권을 받는다. 이 시설에 있는 노인은 120명이며 지난해부터 아기 직원 32명이 출근하고 있다.

노인들 반응은 긍정적이라고 한다. 나카노 교코(85)는 NYT에 "친손녀를 자주 못 봐서 아기 직원이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아기 입장에서도 세대를 뛰어넘는 상호 작용이 사회성 발달과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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