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일까, '사법후퇴'일까...'법원장 추천제'가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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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초 전국 지방법원장 인사를 앞두고 사법부가 소란스럽다. ‘김명수 알박기’와 ‘사법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인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놓고서다.

2017년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와 호흡하며 재판만 한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뉴스1

2017년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와 호흡하며 재판만 한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뉴스1

고등부장 승진제 폐지 後 마지막 ‘승진’ 자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얼룩진 ‘양승태 체제’의 뒤를 이어 출범한 ‘김명수 체제’는 ‘제왕적 대법원장제’ 해소를 지상 과제로 삼았다.

이 때문에 대법원장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일부를 선발해 고등부장으로 보임했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고등부장 중 일부가 돌아가며 맡던 법원장도 일선 판사들이 추천한 후보군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법관들을 대법원장이 가진 인사권으로 줄 세우지 않겠다는 공언에 따른 개혁 조치인 셈이다.

지난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를 겪으며 둘로 나뉜 법원은 봉합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를 겪으며 둘로 나뉜 법원은 봉합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연합뉴스

정작 법원 안팎에서는 “고등 부장 승진제가 없어지자 법원장이 승진 개념이 되는 풍선효과가 생겼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 둘로 쪼개져버린 법원 분위기에서 드물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법원장 자리라 인기가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도권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대부분의 판사는 정치적 성향이 없지만, 우리법˙인권법 판사들과 김명수 코트 이전에 법원행정처에 몸 담았던 판사들은 극과 극에 가 있다”며 “그런 법원 분위기에서 투표를 통해 법원장으로 뽑힌 것이니 어느 정도는 고루 신임을 얻었다는 지표가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서울남부지법에서는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이라고 처음 판단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던 정계선(사법연수원 27기)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를 포함해 무려 7명의 판사가 법원장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또 다른 고등법원 부장 판사는 “법원장 출신이라고 전관으로서 힘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법원장은) 재판은 안하는, 해당 법원 내 최고 실권자”라고 말했다. “아무리 사법개혁이니 뭐니 해서 권력을 내려놓는다 해도 ‘장’은 ‘장’”이라는 것이다. 법원장의 직무는 법관의 근무 평정이나 재판 사건의 배당, 재판부의 조직 및 법관별 분장업무의 지정, 예산 등 각종 사법 행정 업무다. 이를 위해 재판을 맡지 않고 매일 사무국장으로부터 법원 내부 동향 등을, 매주 수석부장판사로부터 법원 사건 재판 동향 등을 보고받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당 법원의 내부 사정이나 살림살이를 소상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말 많고 탈 많은 ‘법원장 추천제’… “대법원장 인사권 여전하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각 지방법원에 소속된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해당 법원 추천위원회의 결과를 참고해 대법원장이 그중 한 명을 법원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제도 취지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의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인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특히 ‘민주적 외관을 쓴 김명수 알박기 인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각 법원에서 인지도가 높은 수석부장판사가 투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 수석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투표를 거쳐 수석부장판사가 결국 법원장이 된다면, 사실상 법원장 인사에 대법원장이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심지어 지난 2021년 법원장 추천제를 실시한 7개 법원 중 광주지법은 추천 후보를 법원장으로 보임하지 않고 대법원장이 직접 발탁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추천 이후 일부 후보자의 동의 철회 등 사정변경이 있었다”며 배경을 설명했지만, 대법원 고위 관계자가 추천된 판사 후보에게 “법원장 후보 동의를 자진 철회하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 대법원장과 가까운 서울중앙지법 송경근 민사1 수석부장판사가 중앙지법뿐 아니라 청주지법의 법원장 후보에도 ‘겹치기 입후보’ 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함석천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이 지난 12월 5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함석천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이 지난 12월 5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이 때문에 법원장 추천제에 대한 내부 분위기 역시 양분된다. 김 대법원장과 가까운 한 부장판사는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의 흐름이고 실제 내부 구성원의 만족도도 높다”며 “대법원장의 인사권은 헌법에 적시된 권한이고, 이는 인사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했다.

반면 한 고법 부장판사는 “이름만 민주이고 추천일 뿐, 사실상 대법원장의 인사권 독점이 아니냐”며 “판사들이 재판 잘하는 것 말고 정치적인 것들에 신경 쓰게 만드는 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원장 추천제는 대법원장 공약으로 만든 예규이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교체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신임 오석준 대법관도 후보자 청문회 당시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 “재판을 지연하고, 열심히 일하는 법원 분위기를 흐리게 한다는 지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5일 김 대법원장을 향해 개별 판사들이 직접 투표한 결과를 존중하라는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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