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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잠이 없다, 뉴스도 잠들지 않는다…NYT, 44년 만의 파업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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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 기자들이 노트북 아닌 피켓을 들었습니다. 지난 8일 NYT 본사 앞입니다.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 기자들이 노트북 아닌 피켓을 들었습니다. 지난 8일 NYT 본사 앞입니다. A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8번가 620번지 뉴욕타임스(NYT) 본사 앞. 수백 명이 피켓을 들고 모여들었습니다. 피켓 시위대는 다름아닌 NYT 기자들이었습니다. 시위를 이끈 노동조합 ‘NYTimes 길드(Guild)’에 따르면 뉴스 제작뿐 아니라 광고 영업 및 건물 관리 담당자까지 참석했다고 합니다. 노조는 앞서 지난 4일, “경영진과의 협상이 실패했다”며 “8일 자정부터 24시간동안 파업하겠다”고 선언했죠. NYT 기자들이 이렇게 파업을 한 건 1978년 이후 처음입니다.

“역사적(historic) 결단”(CNN), “극적인(dramatic) 스펙터클”(워싱턴포스트), “40여년만의 액션”(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취재한 기사에 첨부된 동영상을 보니 “공정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남녀노소 다양한 이들이 피켓이며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파업을 주도한 NYT 길드 로고. 맨해튼 곳곳에 파업과 함께 붙여졌다고 합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업을 주도한 NYT 길드 로고. 맨해튼 곳곳에 파업과 함께 붙여졌다고 합니다. 로이터=연합뉴스

돈은 잠을 자지 않는다(Money never sleeps)라는 말이 있죠. 뉴스도 잠을 자지 않습니다. 기자들의 파업이 어려운 건 그래서입니다. 다른 업종과 달리, 뉴스는 파업을 한다고 해서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파업을 한다고 지하철이 멈추거나, 수출 기한을 맞출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죠. 게다가 NYT는 오래전부터 ‘1면 회의’라는 걸 없앤, 디지털 뉴스의 글로벌 리더입니다. 1면 기사를 강판하고 나면 심야 몇 시간은 제작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 그야말로 24시간 가동 체제인 것이죠. 아마도 그래서, 24시간 파업이라는 방식을 택한 게 아닌가 합니다.

궁금한 내용, 왜 파업을 했는가. 결국 문제는 돈, 즉 노동에 대한 보상입니다. NYT의 디지털 뉴스는 한국의 대다수 매체들처럼 무료가 아닙니다. 적지 않은 구독료를 내야 하죠. 그 대신 독자들은 심층 분석과 특종, 깊이 있는 인터뷰 등 NYT의 콘텐트를 제공 받습니다. 디지털 유료 구독의 길은 NYT에도 쉽지 않았지만, 이들은 결국 해냈습니다. 문제는 그 후입니다. 노조는 24시간 파업을 공식화 하면서 이런 짧은 성명을 냈습니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 마감시한까지 사측과 공정한(fair) 결론에 도달하기를 바랬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1100명이 넘는 우리 소속원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곳의 기자들과 우리는 연대행동을 할 준비가 됐다.”

뉴욕타임스(NYT) 맨해튼 본사 건물.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 맨해튼 본사 건물. AP=연합뉴스

노조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디지털 유료 구독료 등으로 사측이 벌어들인 수익을 정당하게 배분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급여를 인상하라는 것이죠.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온다고 합니다. 여기에다 유연 근무 등, 달라진 근로 문화를 계약에 적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노조 구성원들이 만든 트위터 공식 계정은 이 모든 주장을 다음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알고 있다(We know what we’re worth)” 이젠 사측이 그 가치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사측의 주장은 다릅니다. NYT 경영진 측은 로이터통신에 “노조의 주장은 일방적이고도 사실과 다르다”며 “24시간 파업이라는 성급한 행동이 실망스럽다”고 밝혔습니다.

노조의 파업 선언문. [NYTGuild Twitter 캡처]

노조의 파업 선언문. [NYTGuild Twitter 캡처]

파업은 적잖은 파장을 낳았습니다. WP에 따르면 이날 NYT 조 칸 편집국장은 뉴스룸 전체 메일에 “(파업에 무관하게) 오늘도 왕성한(robust) 보도를 이어가자”면서도 “평소보다 힘들겠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미리 써놓은 기사를 출고하지 않다가 이날에 맞춰서 내보내기도 했다고 하네요. 애니 카르니 NYT 기자는 이날 트윗에 “방금 내 기사가 출고됐지만 내 의사와 무관한 예약 출고”라며 “나는 지금 파업 현장에 있다”고 쓰기도 했죠.

노조 소속이 아닌 해외 NYT 지국 근무자들의 일이 가중됐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에서 NYT 뉴스룸에 근무하는 지인은 파업 직전 저와 통화에서 “일이 조금 늘어나도 상관없다”며 “디지털 뉴스룸을 위해 달려온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 동료들의 파업을 얼마든지 지지한다”고 하더군요. NYT 에디터로 근무하다 뉴스 관련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인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이번 파업 한 번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이런 파업이 40여년만에 실행에 옮겨졌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뉴욕타임스 파업을 앞다퉈 보도한 외신들. 대부분 파업에 우호적인 톤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 파업을 앞다퉈 보도한 외신들. 대부분 파업에 우호적인 톤이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파업을 곱게 보진 않습니다. 폴리티코와 같은 온라인 매체는 “과거처럼 기자들이 손을 놓으면 윤전기가 안 돌아가던 시절이 아니다”라며 “옛날 방식의 파업은 이젠 통하지 않는다”고 꼬집었죠.

어쨌든, 24시간 파업은 끝났고 NYT 기자들은 뉴스룸으로 돌아갔습니다. 파업이 남긴 건 뭘까요. CNN은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모든 노동엔 그만큼의 값어치를 지불해야 한다. 저널리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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