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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멈춰 한 달 절반 공쳤다” 한숨 짓는 ‘을 중의 을’ 일용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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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04면

파업 직격탄 인력시장 르포 

9일 새벽 인력사무소가 몰려있는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부근에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일거리를 찾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정준희 기자

9일 새벽 인력사무소가 몰려있는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부근에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일거리를 찾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정준희 기자

“공사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는데 요즘은 일이 없어요, 일이.”

아직 짙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지난 9일 오전 5시.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4번 출구 앞의 폭 3m 남짓한 인도에는 500여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몰렸다. 대부분이 50~60대 남성이었다. 여기저기서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도 들린다.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모인 노동자들이다.

정근모(52)씨는 자전거를 타고 오전 4시40분에 남구로역 인력사무소에 도착했다. 정씨는 “평소에는 오전 5시30분쯤 오는데 요즘은 일이 없어서 30~40분 정도 일찍 나오는 편”이라며 “화물연대 파업 때문에 시멘트 공사가 안되니깐 일자리가 거의 절반으로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줄어든 일자리에 전전긍긍하는 건 정씨만이 아니다. 김주일(58)씨도 “최근 한달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는데 절반 이상을 공쳤다”며 “일자리가 있어도 중국, 캄보디아에서 온 외국인들이 8만~9만원에 일을 한다고 나가버리면 우리는 남는 일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일반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은 보통 13만5000원에서 16만원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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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사무소들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30년째 인력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광훈(62) 대표는 “5년전만해도 많을 때는 하루에 200명 이상이 우리 사무소에서 일을 나가기도 했는데 오늘은 60명도 못나갔다”며 “코로나·불경기에 파업까지 겹치니 우리도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30년째 인력팀장을 하고 있다는 송현조씨도 “여느때 같으면 일손을 찾는 승합차 수십대가 도로를 꽉 채웠어야했는데 지금은 고작 5~6대만 왔다갔다하지 않나”고 혀를 찼다.

올들어 미국의 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건설 노동자에게 힘든 시절이 시작됐다. 여기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가 보름 이상 이어지면서 시멘트·철근 등의 원자재 부족으로 적지 않은 건설 현장이 작업을 축소하거나 일시 문을 닫았다. 여파는 가장 ‘약한 고리’에 집중된다. 중장비·화물차 운전자나 목수·미장·타일 등 기능공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 맨몸으로 하루하루 날품을 파는 일용직 노동자는 아무런 안전망 없이 추락하고 있다.

수도권만의 일이 아니다. 이날 오전 5시30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시 일일취업안내소에도 문이 열리자마자 50~60대 남성 구직자 20여명이 밀려 들어왔다. 이 안내소는 부산시가 운영을 맡긴 공공 취업알선 센터다. 민간 인력사무소와 달리 알선 수수료(노임의 10%)가 없으며 주로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이 건설현장 말단인 이른바 ‘잡부’ 일용직을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 명부를 작성한 뒤 번호표를 뽑은 이들은 신문을 펼쳐 들거나, TV 뉴스에서 나오는 화물연대 파업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파업 장기화로 부산 공사현장 335곳 중 108곳(32.2%)이 작업 전체 또는 일부를 중단하면서 일자리 사정은 크게 나빠졌다. 이곳에서 만난 A(62)씨는 “휴대전화 요금 포함해 공과금 치러야 할 날이 다가온다”며 “오늘은 꼭 일을 나가야 할 텐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까지 법인택시를 몰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손님이 크게 줄며 사실상 권고사직 당했다고 한다.

“청소 잡부 하실 분이 필요한데요. 건장하고, 60세 안 된 분으로요.”

9일 새벽 부산시 일일취업안내소에서 구직자들이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9일 새벽 부산시 일일취업안내소에서 구직자들이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오전 6시쯤 아파트 공사장에서 전화가 왔다. 안내소 측은 대기하는 인력을 순번에 따라 파견한다. 하지만 이 순서가 늘 지켜지는 건 아니다. A씨는 일찍 와서 번호표 2번을 뽑았지만 60대인 데다 고혈압이 있어 B씨(51)가 파견됐다. 건물 청소와 관리 업무를 했다는 B씨 또한 코로나 영향으로 2년 전 실직하고 공사현장 잡부로 떠돌았다. B씨는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때도 생활고를 겪었다”며 “민주노총에 가입해보려고도 했는데, 일용직 잡부인 데다 ‘공사판 출신’도 아니라며 거절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비가 지원되는 직업전문학교에서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B씨는 “일과 병행하기 어렵지만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밥벌이가 끊길까 걱정하는 일은 피하고 싶다”며 안내소 문을 나섰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안내소에서 겨우 자리를 얻어 온종일 고되게 일하면 손에 11만원을 쥘 수 있다. 초조한 듯 대기실에 놓인 커피를 종이컵에 타 마시던 A씨 손이 가늘게 떨렸다. 하루 평균 40여명이 이곳을 찾지만, 3명 중 1명은 발걸음을 돌린다. A씨는 “중장비 기사나 형틀(목수) 같은 기술자는 이미 전북 등 다른 지역 공사장에서 모셔갔다”라며 “건설노조가 화물연대 운송거부에 동조파업을 한다지만, 이런 기술자는 공사현장에서 필수 인력이라 늘 수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사 중단으로 결국 죽어나는 건 나 같은 ‘맨몸 잡부’들”이라고 덧붙였다.

화물연대 파업 불똥은 전북에도 튀었다. 이날 오전 5시30분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한 인력사무소에 구직자 10여명이 들어섰다. 일당 15만원(중개 수수료 10% 포함)을 벌기 위해 새벽밥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명예퇴직자·자영업자·고물상 등 저마다 처지가 달랐다. 박모(55)씨는 “사업이 망하고 일용직 생활을 한 지 4년 됐다”며 “매일 인력사무소에 나오는데 일주일에 사나흘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오전 6시가 지나자 트럭과 승합차가 속속 도착했다. 완주 아파트 건설 현장 등 도내뿐 아니라 전국 일터로 가는 차량이다. 인력사무소 대표 조모(60)씨가 이름을 부르면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차에 타고 사무소를 떠났다. 조 대표는 “경기 침체에다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까지 겹쳐 일거리가 예년의 절반으로 줄었다”며 “파업이 길어질수록 일용직 같은 ‘을 중의 을’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막노동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노조도 적당히 졸라야지.”

다시 남구로역. 오전 6시30분이 넘어가면서 승합차도 자취를 감췄다. 오늘도 허탕을 친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퇴근길’에 나선다. 이들 사이에서 문득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뿐. 고개 숙인 이들은 옹호도, 반박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10년 동안 일용직을 전전했다는 최문호(55)씨는 “아무리 겨울에 일이 없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두시간 가까이 덜덜 떨다가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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