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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는 일본에 졌지만 천연가스 쟁탈전은 압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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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14면

카타르서 펼쳐진 또 다른 월드컵

러시아, 이란에 이어 천연가스 매장량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카타르는 전세계 천연가스 공급의 30%를 담당한다. 사진은 카타르 북부 라스 라판 산업 단지에 위치한 가스 정제 시설. [AP=연합뉴스]

러시아, 이란에 이어 천연가스 매장량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카타르는 전세계 천연가스 공급의 30%를 담당한다. 사진은 카타르 북부 라스 라판 산업 단지에 위치한 가스 정제 시설. [AP=연합뉴스]

“월드컵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선 일본이 독일을 이겼지만,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는 독일이 일본을 상대로 크게 승리했다.” 최근 독일이 카타르와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공급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에 브라이언 윌슨 전 영국 에너지 장관이 내놓은 평가다. 독일은 2026년부터 15년간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인 카타르에너지에서 매년 200만t의 LNG를 받아가기로 했다. 이 계약은 카타르가 유럽 국가와 맺은 최장기 계약이다.

반면 카타르와 장기계약을 이어오던 일본은 지난해 계약 갱신에 실패했다. 일본은 지난 1997년부터 연간 550만t가량의 LNG를 카타르에서 들여왔지만, 계약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일본 현지 언론에서는 카타르가 20년 이상 장기 계약을 요구한 데다, 수입물량을 제 3국에 다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타국 전매 금지’ 조건을 제시하자 계약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월드컵이 한창인 카타르 한편에서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한 LNG 확보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 사상 최장기 27년간 공급 계약

2022년 월드컵이 치러지고 있는 카타르가 올 들어 러시아를 대체할 천연가스 공급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카타르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3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EU)의 제재에 반발한 러시아가 LNG 공급을 줄이자 3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5월과 8월에는 슬로베니아와 그리스 등 각국 수장들이 카타르에 러브콜을 보냈다. 프랑스의 에너지 대기업인 토탈은 직접 투자에 나섰다. 지난 9월 카타르 가스전 확대 개발에 15억 달러(약 2조1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하는 등 올해만 총 35억 달러(약 5조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지난해 7900만t의 LNG를 수입한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인 중국도 적극적으로 카타르 공략에 나섰다. 중국은 지난 11월 국영 석유화학업체인 시노펙을 통해 카타르에너지로부터 27년간 연간 400만t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자원 확보전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27년 계약은 카타르에너지는 물론 전 세계 LNG 거래 역사상 최장기 계약이다. 이처럼 카타르 LNG 확보전에 불이 붙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3국이 꼽힌다. S&P글로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카타르 천연가스 수출의 15.63%를 가져가며 1위를 차지했고, 일본(12.53%)과 대만(6.78%)도 각각 4위와 5위에 오를 만큼 비중이 높다. 비중이 높았던 만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에선 올해 일본을 LNG 수입 물량이 반토막이 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본 TBS는 에너지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향하는 선박 정보를 살펴보면 카타르산 LNG의 일본 수출 비중은 지난해 12%수준에서 올해 4%까지 줄었다”며 “일본을 향하던 물량의 절반이 유럽과 중국을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일본을 향하던 LNG 선박이 목적지를 바꾼 이유는 뭘까. 우선 LNG 공급 방식인 ‘착선인도(Delivered Ex Ship)’가 원인으로 꼽힌다. 통상 해외로 LNG를 공급할 때 계약 방식은 ‘착선인도’ 방식과 ‘본선인도(Free On Board)’ 방식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일본은 착선인도 비율이 높다. 이 방식은 판매사가 LNG 운송 선박을 통제하기 때문에 운송 과정에서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소비자가 나타나면 행선지를 바꿀 수 있다. 판매사 입장에선 계약 위반 위약금을 내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어 배송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카타르산 LNG 확보 경쟁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독일만 하더라도 LNG 하역·저장·송출 시설인 LNG 터미널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11월에는 북해 연안 빌헬름스하펜에 부유식 LNG 터미널을 완공하기도 했다. 루이 소아레스 프랑크푸르트에셋매니지먼트 투자분석가는 파이낸셜타임즈(FT)를 통해 “독일은 새로운 터미널을 채우기 위해서는 전 세계 LNG 생산량의 3%가량이 필요하다”며 “독일은 다른 곳으로 공급될 LNG의 계약 위반 위약금을 지불할 만큼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타르 LNG 수출 비중, 한국이 1위

한국은 주변국에 비해 구매자가 선박을 통제하는 본선인도 방식 비율이 높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의 장기 계약 기준 본선인도 계약 비율은 42%로 일본(27%)과 대만(12%)에 높다. 그러나 최근 카타르가 착선인도 방식을 선호하고 있어 본선인도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중국도 최근 계약 대부분을 착선인도로 체결하는 등 LNG 시장에 착선인도 방식의 계약이 줄을 잇고 있다”며 “LNG 확보 경쟁 속에 수입국이 본선인도 방식을 고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분간 천연가스 가격 강세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연합 국가들이 천연가스 재고를 다시 쌓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봄부터 천연가스 구매 경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천연가스 재고 비축에 나섰던 지난 8월에도 유럽 천연가스 가격 기준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h당 345유로까지 상승한 바 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의 가스관 가동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유럽국가들은 2023년에도 LNG 수입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반면 전 세계 LNG 수출 시설의 확장 완공은 2024년 이후로 예상돼 내년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 대비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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