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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만든 시간, 시간을 바꾼 기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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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21면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김명주 옮김
김영사

AI 지도책
케이트 크로퍼드 지음
노승영 옮김
소소의책

1865년 4월, 미국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링컨 대통령이 암살범의 총에 숨졌다. 장례식 생중계는커녕 TV나 라디오가 아예 없던 시절이다. 애도의 마음을 연결해준 것은 철도였다. 링컨의 관은 장의열차 ‘링컨 특별호’에 실려 워싱턴부터 뉴욕·시카고 등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곳곳마다 모여든 수많은 조문객을 만났다.

13일간 미국을 가로질러 이동한 ‘링컨 특별호’. 앞쪽에 링컨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진 김영사]

13일간 미국을 가로질러 이동한 ‘링컨 특별호’. 앞쪽에 링컨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진 김영사]

당시 각각의 노선을 운행한 철도회사는 모두 15곳. 더구나 표준시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워싱턴이 정오이면 뉴욕은 12시12분, 시카고는 11시17분이니 열차 스케줄을 짜는 것부터 힘들었다. 이런 어려움을 넘어 ‘링컨 특별호’는 장장 13일에 걸쳐 약 2600㎞를 달렸다. 이 책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원제 The Alchemy of Us)의 저자는 “이 슬프고 어두웠던 시절 미국은 철제 레일을 통해 하나로 꿰어졌다”고 썼다.

발명과 발명가를 다룬 책이 한둘은 아니지만, 이 책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도 수준급인 데다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미국의 재료과학자인 저자는 상대적으로 낯선 발명가들은 물론이고 쿼츠 시계가 나오기 이전에 매일 그리니치 천문대를 찾아가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고 ‘시간’을 ‘배달’한 여성, 폴라로이드사의 즉석사진기가 남아공의 흑인 통제에 쓰이는 것을 알고 시위에 나선 이 회사 직원 커플 등 뜻밖의 인물에게서도 신기술의 함의와 이면에 대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끌어낸다. 에디슨의 전구, 모스의 전신 등 유명한 사례도 새롭게 다가온다. 천재성을 부각하고 발명을 신비화하는 대신에 발명의 계기나 동기, 개발 과정에서 부딪힌 난제 등을 상세히 알려주는 덕분이다.

AI 지도책

AI 지도책

저자는 신기술을 절대시하는 대신 비판적 시각을 주문한다. 책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서양에서는 한밤중에 일어나 뭔가 하다가 다시 자는 ‘분할 수면’이 흔했다고 한다. 그래도 인체에 문제는 없었다. 요즘처럼 밝은 빛이 없었으니 밤에 멜라토닌의 분비가 영향을 받을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공조명의 등장도, 시간에 대한 강박을 확산시킨 정확한 시계도 마냥 축복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트랜지스터의 발명 이후 나온 컴퓨터·인터넷이 뇌에 미치는 영향도 언급한다. 신기술이 열어놓은 길을 순응만 할 게 아니라, 아니다 싶으면 “스위치를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 선임 수석 연구원이 쓴 『AI 지도책』(원제 Atlas of AI)은 신기술, 그중에도 AI(인공지능)를 탈신비화하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기존의 산업과 달리 청정해 보이는 것은 AI의 이미지일 뿐. 이 책은 희토류의 채굴·추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나 폐기물, 데이터 센터가 소비하는 전기와 물의 양 등 ‘지구’의 문제부터 시작해 ‘노동’의 문제를 지적한다.

저자는 AI의 학습을 위한 라벨 붙이기 등 그 구축과 유지가 자동으로 이뤄지기는커녕 건당 푼돈을 받는 저개발국가 사람들의 노동에 의존하는 면면, 그리고 아마존의 물류센터에서 보듯 로봇과 알고리즘을 통해 아마존이 고집하는 ‘속도’가 직원들의 ‘시간’을 통제하며 육체적 혹사를 부르는 상황을 주목한다. 저자의 관심사이자 방점은 “로봇이 인간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로봇처럼 취급받는 경향”이 어떻게 강화될 것인가에 실린다.

이 책은 데이터의 수집과 분류 방식 등도 비판하는데, 비판의 타당성에 앞서 AI를 위한 데이터가 초기에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유용해 보인다. 저자는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얼굴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비판하는 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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