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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성장은 더디고 붕괴는 빠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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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31면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은 성장의 기회와 붕괴의 위험을 미리 알아내고 싶어서다. 사전에 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붕괴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사실 붕괴라는 것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고 자주 목격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이를  피하고 싶지만 적극적으로 원할 수도 있다. 오래된 건물, 과거 관행, 비효율적 생산방식, 에너지 생산방식 등 기존 것이 없어져야만 새로운 것이 들어설 공간이 생긴다.

붕괴란 단 하나의 구성 요소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한꺼번에 빠른 속도로 해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행기, 생태계, 회사, 국가 등은 모두 구성요소(Node)와 관계(Link)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구성체로 볼 수 있는데 이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물론 각각의 붕괴는 범위나 속도가 다양하다.

붕괴는 왜 발생하며 어떻게 전개되는가? 과거 사례를 보면 거의 대부분은 성장의 패턴과 붕괴의 패턴이 대칭적이지 않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처럼
성장과 붕괴의 패턴은 비대칭적
변화 외면하고 과거로 돌아가면
내려가는 길은 매우 빠르고 급해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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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말년 3년 동안 루실리우스에게 다양한 인생의 문제에 대해 124통의 편지를 남긴다. 그 편지 중 한 문구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나타나는 것처럼 천천히 없어진다면 나약한 우리 인간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성장의 속도는 더디고 파괴의 속도는 빠르다.” 이런 현상을 ‘세네카 효과’ 또는 ‘세네카 붕괴’라고 부른다.

세네카 자신도 이 패턴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한때 네로 황제의 선생이었고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로마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정계에서 쫓겨나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 후 황제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자살을 강요받았다. 로마도 똑같은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세네카가 생존했던 당시 로마는 여전히 강대국이었지만 제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께 세워지고 기원후 2세기 정도에 가장 융성했다.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했다. 약 1000년간 성장하다가 마지막 200~300년 쇠퇴하다가 붕괴됐다.

로마가 왜 멸망했는지 이론은 많다. 알렉산더 데만트는 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210가지 이상을 열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 이론은 로마 멸망 원인의 일부만 드러낼 뿐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미국 인류학자 조셉 테인터에 따르면 어떤 사회가 성장할 때 새로운 문제 또는 수요가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사회는 새로운 제도나 도구를 만든다. 자발적으로 사회의 복잡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조만간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첫째, 투입 대비 편익 효율이 저하하게 된다.  조직 신설, 신규 정책, 병력 증원을 하는 데도 문제 해결이 완전히 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심하면 문제 해결이 전혀 안 되는 상황, 즉 한계 편익이 0이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해결에 260조를 투자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열심히 뛰어도 제자리인 ‘이상한 나라의 붉은 여왕’ 처지이다.

둘째, 사회의 복잡성을 늘리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조직 신설, 제도 도입 등 모두 돈 또는 통칭하여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연을 개량하거나 석유 등을 퍼올리거나 하는데, 생산비용 또한 증가한다.

농작물 생산을 위해서 넣어야 하는 비료와 농약을 생각해 보라. 갈수록 생산성은 정체된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때 사회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면 한두 번은 운 좋게 넘길 수 있지만 결국 붕괴위험에 노출된다. 평상시에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이른바 회복력이 변수이다.

그렇다면 왜 붕괴 속도가 성장 속도보다 빠른가? 우선 사회구성원, 정확히는 기득권이 마지막까지 변화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미 현상 유지를 위해 투자해 놓은 매몰비용(sunk cost)이 아까워서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다. 사회구성원도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때문에 누군가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는 보고만 있다. 무엇보다도 오버슈트(overshoot) 효과가 제일 크다. 현재의 생산 및 노동 방식은 과도한 착취(overexploitation)현상을 보인다. 착취는 각 사회조직에서 생산량은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손해는 n분의 1로 여겨지기 때문에 착취를 멈추기가 쉽지는 않다.

세네카 붕괴가 발생하는 것은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 활용하기보다는 외면하거나 과거로 돌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결국 성취할 수 없는 과거 영광으로 가자고 선동적인 언사를 남발한다. 직면한 문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구조적 문제에 실패한 과거 방식을 적용하고 미래 도전에 눈을 감는다.

화석 연료로 인한 기후변화 위기가 커지는데도 재생에너지 투자는 지지부진하다. 낙수효과가 불분명한데도 감세 정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많은 젊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졸지에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모임을 거짓으로 만들어 떠들다 미안하다고 한다. 짧은 이익만 보이고 긴 투자는 도무지 안 보인다. 진영만 보이고 전체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세네카가 이미 2000년 전에 말했다. 내려가는 길은 매우 빠르고 급하다고.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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