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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꽃핀 한·일 문학교류, 50년 전 씨앗 뿌린 잡지 있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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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24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최근 6개월 정도 한 옛날 잡지에 빠져 연구 중이다. 한국 문학을 일본어로 소개했던 계간지 『한국문예』다. 창간은 1975년, 종간은 1986년 가을(43호) 이후라고 한다. 이 계간지의 발행 및 편집을 맡은 전옥숙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상수 영화감독의 모친으로, 한국에선 ‘문화계의 여걸’이라 불릴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내가 이 잡지에 빠진 것은 의문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단편소설·시·수필 등이 다양하게 소개됐는데 특히 단편소설은 매번 7편 정도 실렸고, 11년에 걸쳐서 300편 이상 소개되었다. 대부분 문학 전공이 아닌 내가 봐도 알 만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 잡지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아온 듯하다.

11년간 한국 단편소설 300편 이상 소개

80년대부터 교류했던 한일 문학인들. 왼쪽부터 윤흥길 작가, 한승원 작가, 나카가미 겐지 작가. [사진 나카가미 노리]

80년대부터 교류했던 한일 문학인들. 왼쪽부터 윤흥길 작가, 한승원 작가, 나카가미 겐지 작가. [사진 나카가미 노리]

그 이유로는 이 잡지의 특수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 출판하고 일본에서 판매하는 잡지로, 한국 잡지에도 일본 잡지에도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발행 당시 이 잡지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고 여러 사람이 증언하고 있다. “배후에 중앙정보부가 있다”는 소문이다.

『한국문예』 창간 시기는 73년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 일어나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최악이었던 때다. 때문에 『한국문예』 창간은 일본에서의 한국 이미지 개선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매호 구독했었다는 일본인 지인은 “아직 일본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나 작품에 대해 알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긴 했지만 발행 의도에 대해서는 수상쩍다 생각했었다”며 그것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던 진짜 이유가 아닐까라고 했다.

1975년 일본에서 창간돼 1986년 가을(43호) 이후 종간된 문학 잡지 『한국문예』. 한국 문학을 일본어로 소개했던 계간지로 발행 및 편집을 맡은 전옥숙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상수 영화감독의 모친이다. [사진 변재원]

1975년 일본에서 창간돼 1986년 가을(43호) 이후 종간된 문학 잡지 『한국문예』. 한국 문학을 일본어로 소개했던 계간지로 발행 및 편집을 맡은 전옥숙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상수 영화감독의 모친이다. [사진 변재원]

수상하다고 생각할 만하긴 하다. 아직 일본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낮았던 시기에 11년에 걸쳐 발행된 것은 상업적 목적은 아닐 테고, 편집 후기를 봐도 수익구조는 적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문예』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군사정권에서 싫어할 만한 작품들이 꽤 많다. 예를 들어 79년 가을호에는 현기영 작가의 ‘플라타너스 시민’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렸다. 현 작가는 78년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해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79년에는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기도 했다. 『한국문예』에 실린 작품이 ‘순이 삼촌’은 아니었지만, 여러 모로 문제시되고 있는 와중에 현 작가의 작품이 실린 것을 보면 편집에 관해 군사정권의 관여는 없었던 걸로 보인다. 79년 가을호 편집 후기에서 “현기영의 ‘플라타너스 시민’도 일독을 권한다”고 추천했을 정도다. 한국 문학을 잘 아는 사람한테 목차를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다양한 작품이 게재돼 있다”고 했다.

당시는 일본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낮았던 시기라 『한국문예』는 많이 팔리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 찾다가 일본 작가 나카가미 겐지가 『한국문예』를 통해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진 것을 발견했다.

시네텔 회장 시절 전옥숙씨. 연합영화사 대표 등을 지내며 영화제작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사진 한국일보]

시네텔 회장 시절 전옥숙씨. 연합영화사 대표 등을 지내며 영화제작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사진 한국일보]

나카가미는 76년 소설 ‘곶(岬)’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인기 작가다. 본인이 쓴 에세이에 의하면 도쿄에서 오태석 극작가의 ‘초분’ 연극 공연을 보고 그 뒤풀이 자리에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전옥숙씨를 만났다고 한다. 전씨가 한국에 놀러 오라고 권했고, 나카가미는 81년 한국에서 6개월 간 체류하면서 그의 대표작 ‘땅의 끝, 지상의 시간’이나 중편 소설 ‘서울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관한 수많은 에세이를 쓰면서 일본에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관광 비자를 장기 체재 비자로 변경하고 아파트를 빌리는 것도 모두 전옥숙씨가 도와준 일이라고 한다.

나카가미는 이 6개월 사이에 전옥숙씨를 통해 한국 작가들을 소개 받아 85년에는 『한국현대단편소설』이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판했다. 김승옥, 한승원, 전상국, 선우휘, 윤흥길, 박범신, 황석영, 김원일 등 8명의 단편이 일본어로 소개된 책으로 나카가미의 해설을 보면 8명과 직접 만나서 교류한 이야기도 나온다.

나카가미의 공로는 그뿐만이 아니다. 90년대 초 그는 한국 작가들과 일본 문학평론가·번역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일 문학 심포지엄을 하자”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92년 나카가미는 46세의 나이에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추모의 의미를 담아 그해 제1회 한일 문학 심포지엄이 도쿄에서 열렸고, 이후 한국과 일본의 여러 지방 도시를 돌며 한일 작가들의 교류의 장으로 발전해갔다.

한승원 작가와 딸 한강, 대를 이어 친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일본어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일본어판.

이런 이야기를 일본에서 한국 문학 번역 출판을 해온 출판사 ‘쿠온(クオン)’의 김승복 대표한테 전했더니 김 대표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며 나카가미가 만든 또 하나의 인연을 알려줬다.

나카가미가 서울 체류 중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한승원 작가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한 작가의 집에 나카가미가 찾아가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이 한강 작가다. 김 대표는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일본에서 번역 출판했고, 나카가미의 딸인 나카가미 노리 작가와 한 작가를 엮어 왕복 서간을 쓰게 해서 일본 잡지에 게재했다. 2013년 도쿄국제도서전 때는 두 사람의 대담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들의 교류가 딸들의 교류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나는 2013년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두 딸 작가들의 대담을 직접 들었는데, 당시에는 나카가미 겐지가 한일 문학 교류에 관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몰랐다. 당시 나는 아사히신문 문화부 기자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는 타이밍에 맞춰 한국에서의 일본 문학 인기에 관한 연재를 준비 중이었다. 한국에서 하루키 팬들과 출판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마지막에 한국 작가의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김영하 작가를 만났었다. 김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막 출판한 시기였다.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책 전문서점 ‘책거리’ 에 진열돼 있는 한국 소설 일본어판. [중앙포토]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책 전문서점 ‘책거리’ 에 진열돼 있는 한국 소설 일본어판. [중앙포토]

당시 내가 쓴 기사에 따르면 2000년~2012년 사이 일본에서 번역 출판된 한국 문학은 279작품, 한국에선 2012년 한 해만 일본 문학이 781작품이나 번역 출판됐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한국 문학이 붐이라고 할 만큼 많이 팔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쿠온 김승복 대표가 있다. 쿠온에서 2011년 출판하기 시작한 ‘새로운 한국 문학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다.

반세기 전 창간한 『한국문예』를 연구하다 현재에 이르는 한일 문학 교류의 흐름을 알게 됐다. 나카가미야 말로 한일 문학 교류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고, 그 씨를 뿌린 인물은 『한국문예』를 발행한 전옥숙씨였다. 한일 문학의 가교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시간에 묻혀 잘 안 보이지만, 나는 존경의 마음으로 이렇게 신문 기사에 기록을 남기려 한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전 아사히신문 기자.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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