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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든버러 등 많은 박물관·유적 찾아 ‘세계화’ 눈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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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27면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22〉 영국 공보부 초청 시찰

영국 공보부 초청으로 영국을 시찰 중이던 1976년 6월 30일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오른쪽 셋째가 필자. [사진 김동호]

영국 공보부 초청으로 영국을 시찰 중이던 1976년 6월 30일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오른쪽 셋째가 필자. [사진 김동호]

1976년 영국의 공보 활동을 시찰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영국 공보부(COI: Central Office of Information, 2011년 말 내각부에 통합됨)가 각국 공보책임자를 초청해 중앙·지방 정부의 공보 활동을 보여준, 일종의 워크숍이었다. 영국 COI는 중앙·지방 정부나 단체의 요청 또는 자체 필요에 따라 책자·영화·TV프로그램·전시물 등을 제작·배포하고 정책 효과 평가와 여론조사 등을 하는 정부 홍보 대행 기구다.

72년 베트남에 다녀온 뒤 두 번째 해외여행이었고, 유럽은 처음이었다. 그해 6월 27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런던에 도착한 뒤 7월 20일까지 24일간 머물렀다. 나를 포함해 세르히우아루다 브라질 외무부 언론담당 부국장, 하이탐쿠수스 요르단 총리 공보비서관, 거셈 헤크마트 소아 이란 공보관광부 외신담당 부국장, 에드워드 데이비스 라이베리아 문화공보부 외신국장, 엔시크 모하메드 유소프 말레이시아 공보부 차관, 사이드 유시프 카타르 TV국장, 카를로스 센티스 스페인 공보부 공보국장 등 8명이 함께했다.

6월 30일 오전에 영국의 정부 조직과 공보 활동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오후엔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를 방문해 정부대변인을 만나고 정례 기자회견을 참관하면서 열흘간의 런던 워크숍을 시작했다. 주말을 제외한 8일 동안 외무부와 내무부를 찾아 대변인들의 활동에 대해 들었고, 더타임스와 로이터통신을 견학했다.

31년 뒤 영화제 연 에든버러 다시 찾아

독일 쾰른 대성당을 방문한 필자(가운데). [사진 김동호]

독일 쾰른 대성당을 방문한 필자(가운데). [사진 김동호]

이틀간은 BBC 라디오와 TV 센터를 방문해 각 부문 책임자들과 대화했다. 장관과 의원들이 즉석에서 일문일답으로 진행하는 하원의 대정부 질문도 참관했다. 3~4일간은 인쇄·광고·방송·영화·전시 등 각종 매체를 활용한 정부홍보 활동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고 COI 산하 각 기관을 방문해 관련 책임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7월 9일 기차로 런던을 떠나 에든버러에 도착해 닷새간 스코틀랜드 각급 지방행정기관의 홍보활동을 살펴봤다. 고색이 창연한 에든버러성을 찾았더니 내부에는 초상화 중심의 근대미술품과 무기 등이 전시돼 있었고, 광장에선 8월에 열리는 ‘밀리터리 타투’(세계 각국의 군악대축제)를 개최할 무대 공사가 한창이었다.

스코틀랜드 산림위원회를 방문해 산림 보호 캠페인 활동을 들었는데, 광활한 자연 공간을 시민의 휴양·교육 공간으로 조성한 ‘퀸 엘리자베스 산림공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글래스고에서 ‘뉴타운’ 조성계획을 듣고 현장을 찾았는데, 마치 새마을운동의 현장을 보는 듯했다.

정부간행물을 판매하는 스코틀랜드 왕립서점, 톰슨 재단이 운영하는 TV 학교, 북해유전 개발현장과 정유공장 등을 시찰한 다음 영국 중부 노팅엄의 전기공사, 레스터의 머큐리신문사를 방문하고 금요일인 7월 16일 저녁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인 7월 17일 오전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박물관, 국립역사박물관, 지리박물관, 과학박물관을 돌아봤다. 오후엔 전철로 국립미술관을 찾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미켈란젤로, 고야, 터너를 거쳐 르누아르, 피카소, 모네, 마네, 반고흐, 고갱에 이르기까지 책에서만 봤던 거장들의 명화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7월 18일 일요일에는 이재홍 주영 공보관의 안내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을 찾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극장을 돌아보고 귀로에 옥스퍼드대와 처칠기념관이기도 한 블레넘궁전을 둘러봤다. 7월 20일 파이낸셜타임스를 방문하고 오후에 최종토론을 한 뒤 워크숍 일정을 마무리했다.

7월 21일 오전 마침 영국을 방문 중이던 윤주영 전 문공부 장관과 김경승·이희대 사진작가를 만나 함께 전쟁박물관을 돌아보고, 이정석 KBS 특파원과 대영박물관을 찾은 뒤 히스로공항에서 귀국길에 올랐다. 영국을 떠나면서 언젠가 에든버러와 글래스고는 다시 방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31년 뒤에야 꿈을 이룰 수 있었다.

2007년 8월 15일 에든버러영화제로부터 닷새간의 숙박 지원을 받고 자비로 에든버러를 다시 찾았다. 영화제에 참가하면서 에든버러축제도 보고 글래스고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47년 음악·공연 등 12개의 행사를 여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초청받지 못한 단체들은 별도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를 개최하면서 이를 통칭하는 에든버러 축제가 시작됐다. 8월 한 달 동안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에든버러축제는 전 세계 수많은 예술가와 관광객이 몰려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문화행사다. 나는 한나 맥길 에든버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수많은 영화인을 만났고 틈틈이 문학·연극·음악과 밀리터리 타투 등 다양한 축제를 관람했다.

유럽연합(EU)은 85년부터 해마다 ‘유럽의 문화수도’를 지정하는데 85년 아테네가 처음 선정된 이래 피렌체·암스테르담·서베를린·파리에 이어 90년에 글래스고가 선정됐다. 글래스고는 76년 방문 시에는 도시가 퇴락해 뉴타운 조성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14년 만에 ‘유럽의 문화수도’가 됐는지를 확인하려고 버스로 글래스고를 다시 찾아 온종일 시내 곳곳을 돌아봤다.

글래스고, 문화 주도 도시재생 대표 사례

영국 에든버러성에서. 오른쪽이 필자. [사진 김동호]

영국 에든버러성에서. 오른쪽이 필자. [사진 김동호]

글래스고는 번창하던 조선공업이 쇠퇴하면서 83년 조선업계 대부였던 버럴 부부가 평생 모은 9000점의 문화재를 시에 기증했고 이를 계기로 시민·지방정부·공공단체가 합심해 ‘글래스고, 더는 좋을 수 없다(Glasgow Miles Better)’라는 구호 아래 도시재건 운동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도시 중심을 흐르는 클라이드강의 주변에 85년 미술관인 ‘버럴 컬렉션’을 85년엔 전시컨벤션센터를 각각 조성하고 같은 해 ‘꽃과 정원축제’를 개최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했다. 이를 통해 90년에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될 수 있었다. 이 운동은 그 뒤 더욱 확산해 96년 현대미술관이, 99년엔 글래스고 로열콘서트홀이 각각 조성됐고 이어 국립오페라단, 발레단, 체임버 오케스트라단 등이 연이어 창설돼 유령도시 같았던 글래스고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과 함께 ‘문화가 주도한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76년 COI 일정을 마치고 귀로에 본·파리·제네바·로마를 경유해 8월 1일 귀국했다. 7월 22일 독일 본에서는 김원호 공보관의 안내로 쾰른 현대미술관과 동양박물관, 쾰른성당 등을 돌아본 뒤 본에서 이창희 주독 대사와 만찬을 함께했다. 23일 오전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일보 김성우 특파원의 안내로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한 뒤 장덕상 공보관과 합류해 몽마르트르를 비롯한 밤의 파리를 활보했다.

다음 날 아침 김태 서울대 미대 학장과 홍원래 교수, 김형구 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 교수를 만나 파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30㎞ 떨어진 오베르쉬르우아즈를 찾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1890년 삶을 마감한 마을로 그림에 등장하는 교회와 머물던 골방, 형제가 나란히 묻힌 묘지 등을 돌아보았다. 나는 이 마을이 무척 마음에 들어 그 뒤 네 번을 더 찾았다.

오후에는 루소·밀레·고로의 화실이 있는 바르비종을 찾아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현장과 화실은 보고 퐁텐블로의 나폴레옹 별궁을 거쳐 파리로 돌아왔다. 처음 찾은 파리에서의 첫날 일정을 화가들과 함께 ‘미술의 마을’을 방문한 것은 좀처럼 얻기 힘든 행운이었다.

일요일인 7월 25일 국립현대미술관·전쟁박물관·로댕박물관을 돌아본 뒤 대사관에서 민병규 관장을 만나 베르사유궁전과 그가 다녔던 소르본대학 그리고 노트르담성당을 본 다음 저녁에는 ‘카지노 드 파리’ 공연을 관람했다. 다음날 스위스 제네바로 가서 조영구 공보관과 재무부에서 파견 나온 고교동창 권태원 재무관, 주 제네바대표부의 신동원 공사 등을 만났다. 권태원과 함께 레만호와 눈 덮인 몽블랑을 본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28일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하자 이경식 공보관은 벨기에로 발령받아 떠나고 없었지만, 대학 동기인 강종원·라원찬이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었다. 대사관을 찾아 조상호 대사를 만난 뒤 강종원의 안내로 로마 시내를 돌아본 뒤 꽤 멀리 떨어진 티볼리의 빌라데스테를 찾았다. 곳곳에 있는 다양한 분수에서 조명을 받으면서 분출되는 야경이 장관이었다. 밤늦게 로마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다음 새벽에 피렌체로 떠나는 ‘하루 관광’ 버스에 탑승해 피렌체의 문화유적들을 돌아본 뒤 밤에 로마에 돌아와 다음 날 아침 로마를 떠났다. 홍콩을 경유해 8월 1일 귀국했다.

영국 COI 초청 행사는 런던을 포함한 영국 주요 도시를 깊이 있게 살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의 수많은 미술관·박물관·문화유적, 그리고 예술 마을과 도시재생 현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자 수확이었다. 그 뒤 83년의 미국 국무부 초청 시찰과 87년 일본 외무성 초청 시찰과 함께 좁은 안목과 지식을 ‘세계화’ 시켜 준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평생토록 지적인 향도(인도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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