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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테슬라 투자냐 고금리 예금이냐, 300조 퇴직연금 들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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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09면

연말 돈의 대이동 시작

8%대 원리금 보장형 담을까, 애플·테슬라 투자할까. 연말을 앞두고 ‘노후 안전판’인 퇴직연금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퇴직연금 원리금보장형의 금리가 8%대까지 올라섰다. 지난달에는 애플·테슬라·삼성전자 등 동·서학 개미가 선호하는 한 종목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단일종목 상장지수펀드(ETF)도 상장됐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투자가 가능해 연금 포트폴리오의 주식 비중을 높이려는 투자자들에게 눈길을 끌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최근 퇴직연금의 금리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퇴직연금을 유치하려는 금융기관 간 출혈 경쟁 우려마저 나온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금융1실장은 “매년 연말 퇴직연금 시장에서 30%의 자금이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올해는 금리 인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동 규모가 상당히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퇴직연금 상품이 통상 1년 단위로 만기를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해 연말이면 전체 퇴직연금 300조원의 30% 정도인 90조원가량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동하는 ‘퇴직연금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올해는 금리 인상에다 최근의 돈맥경화(자금 회전 속도가 떨어지는 현상)로 금융기관들이 퇴직연금 유치에 사활을 걸고 달려들고 있다.

많은 돈이 한꺼번에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융당국까지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퇴직연금 머니무브 현상과 관련해 “금융시장 특성상 쏠림이 생길 경우 금융당국이 비난을 받더라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며 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연말 만기 갱신이 몰려있는 금융사들의 판매 경쟁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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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싸움이 치열하던 12월 퇴직연금 금리 수준이 최종적으로 공개됐다. 통상 퇴직연금 중 확정급여(DB)형의 만기가 12월에 80% 가량 집중돼 있다. DB형은 회사가 직원들의 퇴직금 재원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유형이다. 현재와 같은 돈맥경화 상황에서 자금 단위가 큰 퇴직연금 가입자를 놓치면 뭉칫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금융사들은 DB형을 중심으로 역마진까지 감수한 경쟁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특히 증권사와 생명보험에서의 금리 인상 폭이 컸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업권별로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평균 금리는 증권사(6.49%)가 가장 높았고 저축은행(5.95%), 생명보험(5.67%), 손해보험(5.42%), 은행(5.06%)의 순이다. 증권사는 전월 대비 평균 1.29%포인트나 인상했고, 생보사는 0.9%포인트 높였다.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DB) 금리로는 다올투자증권이 가장 높은 8.5%를 예고했다. 키움증권과 SK증권은 7.4%의 금리를 제시했다.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도 12월 금리로 6.15%를 제시했다.

단연 화제는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금리로 최고인 8.5%를 예고한 다올투자증권이다. 금리 인상 자제령에도 8%대 고금리 상품 출시를 강행해서다. 다올증권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관계로 8%대 고금리를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퇴직연금 머니무브 우려가 고조되면서 판매를 전격 중단한 곳도 나왔다. 1일 8.25%의 금리를 공시했던 키움증권은 단 하루 만에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8%대 금리 상품은 장기 상품으로 물량 규모가 크지 않았다. 7%대인 1년 만기 상품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이 상품에 집중키로 했다”고 전했다. 고금리 경쟁에 불을 붙인 다올증권도 소량의 퇴직연금만 취급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위지원 실장은 “실제 차입가능 규모는 회사의 재무건전성이나 자산구조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상품 출시 경쟁도 눈에 띈다. 최근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인기 종목 한 개에 집중 투자하는 길이 열렸다. 지난달 자산운용사 6곳(미래에셋·삼성·신한·KB·한국투자·한화운용)은 단일·소수종목형 ETF를 주식시장에 동시 상장했다. 이로써 퇴직연금을 통해서도 삼성전자나 테슬라 등 인기 종목 중심의 투자가 가능해졌다. 삼성전자, 테슬라 등의 단일종목을 30% 담고 나머지는 채권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워 안전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단일종목형으로 삼성자산운용은 삼성전자를 택했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테슬라,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엔비디아, 한화자산운용은 애플을 각각 선정했다. KB자산운용과 신한자산운용은 5개 이하 소수종목 ETF를 출시했다. KB자산운용은 삼성전자, 삼성SDI 등 삼성그룹 계열사를 담은 ETF를 출시했고, 신한자산운용은 나스닥 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상위 5개 종목을 담았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단일·소수종목형 ETF는 개별주식 직접투자 효과와 더불어 국고채 중심의 변동성 완화 장치로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은 금리 및 상품 경쟁이 퇴직연금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295조6000억원으로 1년 새 15.7% 늘었다. 하지만 수익률은 초라하다. 지난해 연평균 수익률은 2%에 그쳤다. 전년 1년 전보다 0.58%포인트 하락했다.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2.39%에 불과하다. 국내 퇴직연금이 도입된 것은 2005년이지만, 여전히 노후 안전판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자산 대부분이 그동안 이율이 낮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지난해 말 적립금의 86.4%가 은행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형이었다. 다행히 올해는 원리금보장형의 금리가 상승해 만기를 맞은 상품을 교체할 경우 수익률이 올라갈 전망이다. 올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국내 도입되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정한 방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장치다.

선택이 폭이 넓어진 만큼 효과적인 운용을 위한 가입자들의 관심도 필수적이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원리금보장형 금리 수준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공격적 투자로 초과수익을 원하는가에 따라 퇴직연금 상품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선 글로벌 금융상품에 분산 투자하며 적립 매수하는 방식이 추천된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타깃데이트펀드(TDF)는 생애주기에 따라 주식과 채권 등의 비율을 조율해 분산투자하는 펀드로 올 들어서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빨아들였다. 최종진 미래에셋증권 연금본부장은 “지역 및 상품에 대한 분산 투자, 우량자산 장기투자, 적립식 투자의 3가지 원칙이 연금자산 증식의 핵심”이라며 “생애주기와 투자 성향에 맞춰 투자자산과 연금자산의 비율을 조정하며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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