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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카카오 먹통 방지법, ‘디테일의 악마’ 넘어서려면

중앙일보

입력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일명 '카카오 먹통 방지법' 3개가 통과됐다. 연합뉴스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일명 '카카오 먹통 방지법' 3개가 통과됐다. 연합뉴스

이름보다 별명으로 더 유명해지는 법안들이 있다. 대개 한 기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 이를 겨냥해 통과되는 법안들이 그렇다. ‘구글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결과는? 대부분 입법 취지와 반대로 가고 있다. 해외 빅테크의 독주를 부추기거나 택시 대란을 일으켰다는 비판과 함께.

여기에 또 하나가 추가됐다. 일명 ‘카카오 먹통 방지법’. 8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방발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3건 모두 지난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발의된 법안으로, 반대는 없었다. 대체 토론을 신청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의원도 없었다. 국민적 공분을 산 만큼 여야와 정부 모두 입법 속도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카카오 먹통 사태 직후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법은 이미 2년 전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부결된 적이 있다. 당시엔 “인터넷데이터센터(IDC)는 사회기반시설로 보기 어려우며, 중복 규제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번엔 이런 반대 논리가 쏙 들어갔다. 심지어 데이터센터를 빌려 쓰는 플랫폼도 대상에 포함될 정도로 규제 수준이 높아졌다. 법안 조율 과정에서 중복 규제 부분이 해소됐다는 이유도 있지만, 규제를 요구하는 여론을 거스르고 싶은 의원은 없었을 것이다.

규제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까지 해당할 것이냐’는 기준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방발법. 기간통신사업자(통신사 등)처럼 부가통신사업자(플랫폼 등)도 서버 다중화의 의무가 생기는데, 법안에서는 기준을 ‘이용자 수 또는 트래픽 양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로만 해놨다. 가장 중요한 ‘누가, 이 의무를 지게 되는가’의 기준은 추후 시행령에 위임해버렸다.

네이버 클라우드 서버실, 데이터센터 . 사진 네이버클라우드

네이버 클라우드 서버실, 데이터센터 . 사진 네이버클라우드

전기통신사업법 22조의 7(일명 넷플릭스법) 적용 기준을 준용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일평균 이용자 수가 100만명 이상이면서 국내 발생 트래픽량이 국내 총 트래픽 소통량의 1% 이상인 사업자’가 넷플릭스 법의 기준. 사실상 여기에 해당하는 국내 기업은 네이버와 카카오뿐이다. 사용자 수와 트래픽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and’ 조건이기 때문. 그러나 법안의 문구는 둘 중 하나의 조건만 충족시켜도 해당하는 ‘or’ 조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and냐 or냐가 앞으로 쟁점이 될 것”이라며 “급하게 법안만 통과시켜 놓고 중요한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입법이라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법안에 따라 서버를 다중화하려면 기업들이 최대 수천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수만 대의 서버를 가진 곳도 있어서다. “사고는 카카오가 쳤는데, 왜 다른 기업까지 같이 매를 맞아야 하냐”는 하소연도 나온다.

규제의 역설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네·카 뿐”

그러나 오히려 수천억 원의 비용은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기업엔 큰 문제가 아니다. 지난 3년간 네이버의 설비투자(CAPEX) 비용은 약 1조8000억원으로 1년 평균 약 6000억원을 지출했다. 게다가 네이버는 이미 자체 데이터센터도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의 3년 CAPEX는 약 7200억원이다. 네이버에는 못 미치지만 1년에 수천억 원은 지출할 역량이 된다는 뜻. 게다가 7일 카카오가 스스로 발표한 ‘반성문’에 따르면 카카오는 향후 서비스 장애 예방에 지난 5년간 투자한 규모의 3배를 투자할 예정이다. 고우찬 카카오 재발방지대책 소위원장은 “오늘 발표한 것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연간 운영비만 몇백, 몇천억원 정도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1015 카카오 먹통 사태 방지책을 발표하고 있는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 비상대책위원회 재발방지대책 공동 소위원장. 사진 카카오

1015 카카오 먹통 사태 방지책을 발표하고 있는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 비상대책위원회 재발방지대책 공동 소위원장. 사진 카카오

문제는 and와 or의 경계에 있는 기업들이다. 특히 스타트업은 대부분 무료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이용자를 끌어모은 다음, 이를 기반으로 수익을 내는 플랫폼식 모델을 택하고 있다. 이용자 수는 많아도 아직 시설 투자에 수십~수백억 원을 쓸 만큼의 여력이 안 된 곳들이 대부분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 대상이 되는 사업자 요건과 범위 설정 등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 기업도 제대로 규제할 수 있나

해외 기업들과의 역차별 우려도 여전하다. 해외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국내에서 서비스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규제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 부가통신사업자 규제에 부담을 느낀 해외 사업자들이 서버를 국외로 옮기면, 국내 사업자들만 규제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판도라TV, 엠군, 엠엔케스트.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 유튜브 보다 앞섰던 동영상 플랫폼들이다. 현재는? 이들 플랫폼이 어떻게 됐는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물론 이들이 단순히 규제 하나 때문에 고꾸라진 건 아니다. 모바일로 재편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했고, 지나친 광고 삽입으로 불편을 야기하며 서서히 유튜브에 밀렸다. 그러나 2016년 트래픽 사용량에 따라 망 사용료를 부담하는 상호접속 고시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해외 사업자들은 망 사용료를 내지 않거나 일부만 부담했다.

제2의 동영상 플랫폼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번 법안의 시행령에서라도 ‘디테일의 기술’이 필요하다. 성급한 입법에 대한 대가를,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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