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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재신청 공들이는 특수본…거짓말보다 입증하기 힘든 무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일 첫 구속영장 기각 후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손제한 경무관·특수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수본은 영장이 기각된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경정)을 9일 소환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입증을 위한 ‘과실범 공동정범’ 법리 보강에 주력하고 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추가 소환 후 다음 주 구속영장을 재신청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고 인지 자체가 늦었다는 피의자들의 소명을 뚫을 추가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보다 무능 입증이 어렵다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의 벽을 특수본이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이 지난 5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이 지난 5일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피의자 과실 모아 공동정범 구성…영장 발부 가능할까 

 특수본은 구속영장 재신청을 앞두고 이날 송 경정을 소환 조사했다. 송 경정은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서 상황 전파 지연과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신고에도 차도로 쏟아져나온 인파를 인도로 밀어 올리는 등 적절한 안전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특수본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송 경정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뿐만 아니라 구속 사유도 보강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은 송 경정과 이 전 서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증거인멸과 도망할 우려에 대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특수본은 구속영장 재신청을 위해 ‘과실범의 공동정범’ 법리 구성에 주력하고 있다. 과실범의 공동정범은 범죄를 공모하지 않았더라도 각각의 과실이 모여 사고의 원인이 될 경우 성립한다. 과거 법원이 상품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건에서 설계·건설·감리 등 각 과정에서의 과실을 공동정범으로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린 사례가 참고 대상이다.
특수본 관계자는 “수사 초기부터 참사에 일차적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피의자에 과실범 공동정범 법리를 구성했다”며 “이태원 참사도 이 전 서장의 과실만으로 희생자 158명의 사망 결과에 책임이 있다고 법리를 구성하면 유죄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 용산구청과 경찰, 소방, 서울교통공사의 과실 책임이 중첩해 참사가 발생했다고 보면 인과관계 입증이 조금 수월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 관련 입건된 피의자 21명 중 16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고의성을 입증하면 되는 증거인멸·증거인멸교사 혐의와 달리 과실을 입증하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입증이 더 까다롭다는 토로가 나온다.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특수본의 입장과 달리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사전에, 사고 현장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피의자들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과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경정)은 핼러윈 인파 우려를 담은 정보보고서 삭제를 지시하며 증거를 인멸하려는 고의성이 입증돼 지난 5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까다로운 업과상 입증…세월호 사고서도 지휘부는 무죄

세월호 참사 관련 9차례 조사 · 수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세월호 참사 관련 9차례 조사 · 수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는 ▶과실 ▶예견 가능성 ▶사고 결과와 과실의 인과성이 입증돼야 유죄가 성립될 수 있어 법조계에서도 혐의 적용이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월호 사고 후 검찰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을 포함한 해경 지휘부 10명에 대해 구조 실패 책임을 물어 업무상과실치사·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세월호와 직접 교신한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가 파악한 것 이상으로 상황을 잘 알지 못했고, 침몰이 임박해 즉시 하선 명령이 필요할 상황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과실을 묻기엔 정확한 상황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죄(징역 3년)가 인정된 사례는 당시 사고 현장에 도착해 구조 활동을 펼친 김경일 전 해경 123정장이 유일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6년 12월 원심을 확정하며 김 전 정장이 선체가 45~50도 정도 기운 상황에서 현장에 도착해 하선 유도를 하지 않은 것이 희생자 규모를 키운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부주의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가능성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고의성까지 입증돼야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에서 유죄를 끌어낼 수 있다”며 “단순 무능 수준의 과실 입증만으로는 형사 책임을 묻기엔 한계가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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