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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석의 중국탐구] 中 백지시위 어떻게 될까..."천안문때완 다를 시진핑 갈라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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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베이징에서 벌어진 백지 시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베이징에서 벌어진 백지 시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년의 사회 관리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이란 성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그 체제의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기존의 사회관계들이 해체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해 사회 안정성이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지속적인 체제 안정성 확보를 위해 2000년대 들어 ‘사회건설’과 ‘사회관리’를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게 됐다.

후진타오 시기와 시진핑 시기의 사회 관리 방식을 비교하면, 사회의 안정유지(維穩)를 목표로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선 차이가 난다. 후진타오 시기엔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라는 슬로건 속에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시장화와 상품화로 타격을 입은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보호적 조치들을 취했다. 여러 탄원이나 군체성 사건 등이 발생하면 인민의 권리를 보호하며 사회적 갈등을 협상과 제도 개선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시진핑 시기 들어선 사회적 갈등을 사회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이와 관련해 치안과 관련한 공안 기구들의 힘을 늘리는 한편 이들 기구에 대한 당의 통제 역시 강화하려 했다. 부연하자면 비교적 거버넌스(治理)와 협치를 강조했던 후진타오 시기와 달리 시진핑 시기 들어선 당조직으로의 집중을 강조하고 기존 사회 영역의 활력을 축소시키기 시작했으며, 사회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오프라인에서의 통제와 검열, 감시가 대폭 늘어났으며, 제로 코로나 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그 기술의 남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견, 중국 사회는 이러한 감시와 통제 강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크게 보면 중국사회의 저항은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로 전국 규모의 거대한 시위는 없었다. 이후 노동자나 농민들의 저항이 산발적으로 있었으나 그 양상은 대부분 “탐관오리에는 반대하나 황제에게는 반대하지 않는다(只反貪官, 不反皇帝)”에 그쳤다. 즉 중국 공산당을 대체할 대안 세력이 없고 다당제나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없는 정치적 상황에서 임금체불이나 부정부패, 혹은 직접적인 행정적 통제로 자신에게 직접 피해를 끼치는 지방 관료나 자본가에 대한 저항은 있었지만, 당 중앙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을 하는 대중저항의 양상이 이어져왔다.

이는 강력한 중앙이 있어야 기층 지역이나 세력가들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중국 인민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 1인으로의 권력 집중이 한층 더 강화되고 제로 코로나 정책은 물론 사회에 대한 검열 통제가 심화되며 부동산 시장 침체 등 경기 둔화까지 이어지자 점차 체제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9 모멘트의 재림  

2022년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 개막 사흘 전인 10월 13일, 베이징 도심의 고가도로 중 하나인 쓰퉁차오((四通橋)에서 현수막 시위가 벌어졌다. 그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적혀있었다.

“PCR 검사가 아닌, 밥을 원한다/ 봉쇄와 통제가 아닌, 자유를 원한다/ 거짓말이 아닌 존엄을 원한다/ 문화대혁명이 아닌 개혁을 원한다/ 영수가 아닌 선거를 원한다/ 노예가 아니라, 공민이 되자/ 수업 거부! 파업! 독재자 매국노 시진핑 파면!”
지난 2018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의 3연임 제한 조치가 철폐되자 주로 해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Not My President” 캠페인이 벌어졌었다. 한데 이번엔 그 구호가 “시진핑 독재자 파면, 제로 코로나 정책 반대” 등으로 훨씬 더 강력해졌다. 그리고 해외 대학들뿐만 아니라 감시가 삼엄한 중국 국내에서도 비록 소수이지만 여러 지역에서 낙서 시위가 벌어졌고, 상하이에서는 몇몇 청년들이 20차 당대회 폐막일 밤에 일종의 백지 현수막을 들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아이폰을 만드는 허난성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에서 코로나 재유행으로 인한 폐쇄적 운영에 대해 수많은 농민공들이 불만을 표출했으며, 심지어 대규모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11월 24일 벌어진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참사는 중국 인민들의 커다란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났는데 봉쇄 방역조치로 인해 제대로 화재진압과 탈출이 이뤄지지 않아 10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고 9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알려졌다.

란저우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PCR검사소를 무너뜨리고 광저우에서도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상하이의 우루무치로(路)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사 추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곳에서는 심지어 공산당 통치와 시진핑에 대한 하야 구호까지 등장했다. 베이징의 량마허에서도 백지를 든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고, 다음날 량마허 거리가 원천봉쇄로 막히자 시위대는 인근 고가도로인 눙잔차오(農展橋) 위에서 기습 백지 시위를 벌였다. 이에 지나가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호응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집단 시위가 벌어지고 봉쇄 정책 폐지와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게시물들이 나붙었다.

이렇게 중국의 주요 대도시들과 대학에서 같은 구호가 등장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것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처음이었다. 지난 30여년간 노동자 시위, 농민 시위, 지식인들의 저항, 일부 생태 운동, 변경에서의 소수민족 운동 등이 계속 벌어졌지만 대부분 지역에서의 이슈로 끝나거나 당사자 문제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운동들이 화학적 결합을 일으키기는 힘들었다. 전반적으로 중국의 사회적 저항은 분절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면은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에 대한 반대라는 하나의 구호로 요구 사항이 모였고, 여기에 경기 둔화, 청년 실업, 언론 자유의 부재, 강압적 정책에 대한 불만 등이 더해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참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는 다른 나라의 여러 참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역할을 묻는 티핑 포인트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중국 당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은 다른 나라에 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잘 지켜온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선전해왔다. 한데 오히려 봉쇄정책으로 인해 화재진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역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그간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계기가 돼버렸다.

향후 백지 시위는 어떻게 될까?  

1989년의 재림은 잔혹한 무력진압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당시와 같은 전면적인 무력 진압의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그렇게 높지 않다.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에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항쟁 지도부를 직접적인 타격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지만 현재 시위는 21세기 들어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났던 양상과 비슷하게 어떤 조직이나 세력을 구심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중국 인민들의 전반적인 방역정책 완화 요구를 인민 내부의 적이나 외부세력의 영향으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중국 당국의 대응 방향은 저강도 탄압으로 시위 확산을 막고 방역 정책 조절로 시위대의 요구를 갈라치기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의 방역완화 요구는 일정하게 수용하되 언론자유 요구나 체제비판의 목소리는 그와 분리시켜 “외부세력”으로 몰아 탄압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그동안 신장위구르 지역이나 홍콩 시위 당시 활용했던 여러 디지털 감시 기술을 사용해 시위 주동자들을 솎아내 검거하고 탄압하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제로 코로나 방역정책의 대폭 완화로 시위가 소강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중국 인민들은 시진핑 시기 들어 처음으로 자신들의 불만 표출과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는 경험을 했다. 게다가 비록 소수에 불과할 지라도 엄격한 통제와 검열을 뚫고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의 저항가수인 리즈(李志)는 자신의 노래에서 “인민에겐 자유가 필요 없어. 지금이야말로 가장 살기 좋은 시대거든(人民不需要自由, 這是最好的年代)”이라고 반어법으로 시진핑 시기를 풍자했지만, 이제 중국 인민들은 자유가 필요하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향후 중국 당국의 방역 및 경제사회 대책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따라 중국의 민심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글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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