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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더는 미룰수 없는 ‘대학구조개선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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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오정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오정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대학들이 위기다. 입학 정원을 절반도 못 채운 대학이 2020년 12개 대학에서 지난해 27개 대학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대학으로 보면 충원하지 못한 인원이 4만 명을 넘는다. 학교에 다닐 인구, 즉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데 따른 현상이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는 점점 더 심화해 2040년에는 전체 대학 정원의 절반이 미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상당수 대학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을 처지에 놓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2046년까지 195개 대학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전체 대학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대학들은 재정 취약으로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비수도권 지방 사립대학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는 이미 현실로 닥쳐 학생 충원의 어려움과 재정난을 이유로 폐교하는 지방대학들이 속출하고 있다.

입학정원 못 채운 대학 2배 급증
상당수 지방 사립대들 존립 위협
구조조정에 행정·재정 지원해야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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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사립대학들의 위기는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체 대학 중 85%가 사립대학일 정도로 고등교육을 사실상 사립대학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정원 미달이 계속되면 대학 재정난이 악화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등교육 부실화는 결국 우수한 인력 양성 실패, 나아가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더욱이 대학이 재정난을 이유로 문을 닫게 될 경우 학생과 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대학 주변의 상권 붕괴로 지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2000년 이후 10개 학교법인이 해산 또는 파산했으나, 청산이 완료된 법인은 1개뿐이고 9개 미청산 법인의 교직원 체불 임금 등 채무액은 660억원이나 된다. 준비되지 않은 폐교로 인한 충격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구체적인 대책을 아직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공공성을 이유로 학교 재산을 매각하기 어렵고, 인수·합병도 자유롭지 않다. 대학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고 싶어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현행법상 대학의 설립·운영자는 대학을 폐교하거나 대학이 인수·합병되더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유인이 없다. 이 때문에 십수 년 전부터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지만 지난 정부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결국 위기가 현실이 됐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회에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대학구조개선법)이 발의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대학구조개선법은 대학들에 대한 재정 진단을 통해 ‘경영 위기 대학’으로 지정된 대학에 대해 구조조정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유도하자는 취지다.

대학 간 통폐합 및 폐교·해산 등 구조개선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폐교되는 대학 소속 학생 및 교직원에 대한 보호 조치를 마련하는 등 구조개선에 필요한 사항을 두루 담고 있다.

다만 구조개선에 필요한 세제 지원이나 폐교·해산되는 대학의 설립·운영자에 대한 조치가 미흡해 여전히 대학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기에 부족한 점은 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폐교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입법을 미룰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국회에서 대학구조개선법에 대한 심의조차 개시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학 구조개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서라도 법안을 조속히 심의·처리하길 바란다.

폭설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 그로 인한 재난을 막기 위해 대비하는 것이 당연하다. 눈이 올 것을 알면서도 대비를 하지 않아 일어난 재난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人災)’다. 현실적으로 단시간에 인구 감소를 막을 획기적인 방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예보가 된 미래다. 대학의 위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충격은 사전에 준비를 잘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이미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더는 대비를 미룰 시간이 없다. 대학구조개선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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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