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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의 직격인터뷰

“판사 아니어도 법원장 추천하고 후보 될 수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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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이종엽 회장-

문병주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각 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선정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논란 속에 확대 시행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역점 정책으로 2019년 일부 법원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내년까지 법원장 임기가 남은 인천지방법원을 제외한 전국 지방법원에 도입된다. 대법원장의 ‘치적 알박기’란 비판에도 지난 6∼8일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도 최종 후보 확정을 위한 전자 투표가 진행됐다.
 앞서 5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이 제도의 포퓰리즘화에 대한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다만 김 대법원장이 득표수와 상관없는 코드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모였다.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근처 건물에 새로 둥지를 튼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엽(59) 회장은 “국민이 피해를 받는 재판지연의 한 이유로 비판받는 제도를 더 개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협회 사무실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협회 사무실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법원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을

 많은 문제 제기에도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예정대로 확대되고 있다.  
 “제도의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다. 법원 인사시스템이 폐쇄적으로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로 봤다. 그런데 의도가 변질했다. 인기투표가 돼 선배 법관들이 후배들의 눈치나 보고 인심이나 얻으려고 하다 보니까 열심히 연구하고 판결할 유인책이 사라졌다. 사법 포퓰리즘이 확대되는 이유다.”
 어떤 식으로 개선돼야 하나.
 “법원 외부에서 충분한 경륜을 쌓은 법조 경력이 있는 재야 법조인이 추천돼야 한다. 그러려면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듯이 각 법원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추천하고 심사해야 한다. 이들 후보자 중에서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이 임명하면 된다. 선거를 통한 법원장 후보 추천은 재판 지연의 원인이기도 하다.”
 판사들이 1주일에 판결문 2개만 쓰겠다고 한다는 말도 들린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법원에도 번지고 있다. 이런 문화가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와 같은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 독일처럼 재판지연 보상제도 혹은 지연 경고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재판받는 당사자가 재판이 너무 길어진다고 판단할 때 상급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해당 재판부에 경고하거나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런 경고가 누적된 판사는 재임용 심사 등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 나아가 늦어진 판결 탓에 제때 재산권 구제를 못 받았을 경우 국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할 수 있는 재판지연보상법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식 증거개시제도 도입 필요   

 대한변협에서 도입하자고 하는 미국식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는 무엇인가.
 “재판이 본격 진행되기 전 단계에서 양측이 신청하는 상대방 보유의 관련 증거를 모두 오픈하도록 하게 하고, 공개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하여 신속하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도록 한다. 한마디로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도 재판에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재판제도처럼 사실 규명을 위해 오랜 공방을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이른 시일 내에 실체가 드러나 분쟁이 조기에 종결되는 효과가 있다. 우리 법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증거의 채택 여부와 증거 가치 판단을 판사가 혼자서 다 한다. 지금의 재판제도에서는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버티고 숨기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를 막을 방법도 딱히 없다. 그러니 판사에게 증거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한 쪽은 불만을 가지게 되고, 판결을 불신하게 된다. 재판지휘권이 판사에게 전속된 것이 불신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대법원에서는 대법관들이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다며 대법관 수를 늘리겠다고 방향을 잡았는데.
 “지금처럼 대법원에도 사건이 적체된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대법관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1심을 충실히 하면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증거개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사건의 90%가 1심에서 완전히 종결된다. 항소심, 상고심 재판이 정체될 이유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또한 재판 당사자가 승복하는 재판이 많아져 사법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사건이 많다고 대법관을 계속 늘린다면 대법관 권위 자체도 가벼워질 수 있다.”  

인기투표 비슷하게 변질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 필요
재판지연에 대한 보상ㆍ경고제 도입해 국민권익 보호해야
대장동 관련 의혹 해소 없이 권순일 전 대법관 개업 안 돼
검수완박, 경찰 수사 역량과 법률가적 소양 고려하지 않아

법률가적 양심으로 처신해야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사건과 관련해 대한변협이 권순일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막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에 어른으로서 각종 중요한 사건과 정책적인 판단에 많이 관여를 한 분이다. 사법적ㆍ정치적 중립성이 유지해야 하는데 현직 시절에 그렇지 않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어느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여했는지 국민적 관심사가 돼 있다. 법조인으로서 당연히 그 의혹이 해소되기 전에는 변호사로서 활동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본다. 권순일 방지법을 준비 중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 연합뉴스

권순일 전 대법관. 연합뉴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으로 일하며 월 1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장동 일당이 50억원을 주기로 했다는 인사 중 한명으로도 거론된다. 2019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당시 대법원 전원 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판결했을 때 권 전 대법관이 핵심 역할을 한 것에 대한 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변협은 두 차례 “신청을 자진 철회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권 전 대법관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달 28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권 전 대법관의 변호사 등록 여부를 외부기관인 등록심사위원회로 회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대장동 사건 수사를 두고 정치적 공방이 심하다.
 “사업 시행 절차에 불공정 행위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녹취 등 여러 증거가 확보되는 것 같다. 철저히 규명돼야 하고, 그래야만 이 사회를 지탱하는 법치의 근간이 바로 설 수 있다. 국민이 수긍하는 정도까지 수사가 분명히 이뤄져야 한다.”

정치의 사법화 vs 사법의 정치화

 헌법재판소에서는 골프 접대 의혹을 받는 이영진 헌법재판관이 계속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도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관은 헌법상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직을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를 떠나 법률가적 양심을 가지고 스스로 처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 나올 때까지 재판 회피라도 해야 헌재라는 기관에 누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정치적 사건이 검찰과 법원, 헌법재판소에 몰려오면서 사법의 정치화가 문제 되고 있다.
 “정치인들 스스로 말하듯이 정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은 정치권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에서의 리더십이 실종돼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럴수록 사법부는 더욱 중립과 독립을 유지하면서 법치의 기본 골격을 다져야 한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위한 법률 지원을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활동이 겹치지 않나.
 “세월호 참사 사건 때도 그랬고, 대한변협은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했을 때마다 직접 참여했다. 이번에도 특별위원회에 진상규명, 피해자지원, 제도보완 등 3개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국가 배상을 위한 국가 소송 같은 걸 소속 변호사가 진행하면 유족 대신 변협에서 그 선임비를 지원한다. 재난의 정치적 도구화를 반대하고, 실효성 있는 법률지원을 할 것이다. 민변의 도움을 받는 분들도 우리 위원회에 연락하시면 민변과 대한변협 복수 지원을 받으실 수 있다.”
이종협 대한변호사협회장과 하창우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장, 홍지백 생명존중재난안전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용산구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종협 대한변호사협회장과 하창우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장, 홍지백 생명존중재난안전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용산구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대책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재난의 정치적 도구화에 반대 

 최근 희생자 명단을 유족들 동의 없이 공개한 사례가 있었는데.
 “법률지원단에서 위법 여부를 검토 중이다.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권 침해 소지가 크다. 철저히 유족 입장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법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사가 진행 중이다.
  “생명권, 재산권과 같은 국민의 권익 보호가 정지되는 게 문제다. 지금의 형사사법 체계는 서구에서조차도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다듬어진 것인데 하루아침에 작전하듯이 바꿔버렸다.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축적된 수사역량을 갖춘 검찰의 수사권을 갑자기 제한시키면 다른 대안이 있나. 이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조치 역시 시행 이후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됐는데, 검수완박법은 시스템적으로 허점이 더 많다. 경찰 내 법률가적 소양을 갖춘 전문 인력이 충분한지, 수사지연과 범죄의 사장으로 선량한 국민의 권익이 침해당하는 사태는 어떻게 대처할 건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 

◇이종엽=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28회(사법연수원 18기)에 합격해 1992~95년 검사 생활을 거쳐 변호사로 개업했다. 인천지방변호사회장을 지냈다. 지난해 2월 51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돼 내년 2월 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