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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케어’ 대수술…MRI 남용땐 건보 제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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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단순 두통 증상으로 병원에 간 40세 환자는 뇌 조영제, 뇌혈관, 특수검사 등 세 종류의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동시에 하는 과잉 검사를 받았다. 신경학적 검사에서 이상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MRI를 찍었고, 이에 건보 재정 72만원이 들어갔다.

올 1월 소화불량을 호소한 52세 환자는 복부·비뇨기·심장·갑상샘·혈관 등 6개 부위의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복부 불편감과 통증, 흉통을 호소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검사에 건보 재정 115만원이 들어갔다. 이런 식의 여러 부위 동시 검사는 연 7000여 건에 달한다.

MRI와 초음파 검사 건보 적용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케어’가 대대적인 수술대에 오른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내세운 문 케어가 시행된 이후 MRI·초음파 검사비는 2018년 1891억원에서 지난해 1조8476억원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보건복지부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공청회를 열고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 및 필수 의료 지원 대책’을 공개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5년간 광범위한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이 추진됐다”며 “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의료 남용 등의 부작용을 초래해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문 케어를 비판했다.

이날 공개된 정부의 개선 방안에 따르면, MRI·초음파 검사에 대한 건보 적용 기준이 강화된다. 두통·어지럼증 환자의 경우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뇌·뇌혈관 MRI  검사에 보험을 적용하되 최대 2회 촬영만 적용할 방침이다. 현재는 신경학적 검사를 하기만 하면 이상소견 유무에 상관없이 3회 촬영까지 보험 적용을 하고 있다.

또 같은 날 여러 부위를 초음파 검사를 하지 못하도록 횟수를 제한하고, 올해 건보 적용 예정이던 근골격계 MRI·초음파 검사는 의학적 필요성이 입증되는 항목에만 제한적으로 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밖에 연간 365회 이상 병원 진료를 받는 과다 이용자에게는 진료비의 최대 90%까지 본인이 부담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외국인의 ‘건보 무임승차’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피부양자 조건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건보가 안고 있던 구조적인 비효율을 관리하려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면서 “단기 대책에 그치지 말고 현 정부 임기 5년 동안 보건의료 제도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두통 MRI, 신경학적 이상소견 필요…최대 2회로 건보 제한 

8일 공청회에서 복지부는 문재인 케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문 케어가 내건 ‘비급여의 급여화’와 ‘환자 부담 상한액 축소’가 의료 남용과 비효율을 초래하고 보험료와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켰다고 진단한 것이다.

또 문 케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건보료를 많이 올려 보험료 부담이 커진 점도 지적했다. 연평균 건보료 인상률은 2013~2017년 1.1%에서 2018~2022년 2.7%로 껑충 뛰었다.

문 케어 대수술 주요 내용

문 케어 대수술 주요 내용

복지부는 과다 의료 사례도 문 케어의 부작용으로 꼬집었다. “현행 건강보험체계에서는 과다 의료 이용·공급을 관리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해 도덕적 해이와 불필요한 의료 남용이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인 42세 A씨는 지난해 2050회 병원을 찾았다. 총 24곳의 병원에서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진료를 받았다. 그는 매일 평균 5.6개의 병원을 찾았고, 하루에 병원 10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A씨는 병원에서 주로 통증 치료를 위한 물리치료를 받거나 진통 주사나 침·뜸 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1년간 쓴 건보 재정은 2690만원에 달한다. A씨의 병원 진료 횟수는 2017년 1118회, 2018년 1269회, 2019년 1529회, 2020년 1900회 등 매년 늘었다.

A씨처럼 연간 365일 이상 외래진료를 받는 과다 의료이용자는 지난해 2550명이다. 이들에게 들어간 건보 재정은 251억4500만원으로 1인당 986만1000원을 썼다. 전체 건보 가입자 평균 연간 급여비(149만3000원)의 6.6배다.

복지부는 건보 재정 효율화를 위해 ‘외래의료 이용량 기반 본인부담률 차등제’를 검토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연간 365회를 초과한 외래 이용에 대해서는 본인부담률을 현행 20%(평균)에서 90%로 대폭 상향하는 방안이다. 복지부는 이와 함께 본인부담 면제나 진료비 할인 등 과다 이용을 조장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기획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외국인 가족이 병원 진료 목적으로 입국해 보험 혜택만 받고 출국하는 이른바 ‘건보 먹튀(먹고 튀기)’ 문제도 개선책에 포함됐다.

암환자, 암 무관한 경증 치료비 혜택 축소

외국인 B씨는 2020년 말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한국 국적을 가진 사위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그는 입국 후 보름 뒤부터 병원에 다니며 평소 앓고 있던 질환을 치료했고, 진료비 중 9000만원을 건보가 부담했다.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지만 건보 혜택을 누린 것이다. 그는 몇 달 뒤인 지난해 4월 출국했다.

복지부는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해 앞으로 외국인 피부양자 조건에 ‘국내 체류 기간(6개월)’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외국인 피부양자 중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는 현재와 같이 입국 즉시 건강보험을 이용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뒀다.

암과 희귀·난치성 질환자에 대해 진료비 5~10%만 부담시키는 ‘산정특례’ 제도도 손보기로 했다. 현재 252만 명이 혜택을 받고 있는 산정특례의 적용 범위는 중증 질환과 그 합병증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관련 없는 경증 질환에도 특례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암환자가 추간판탈출증(디스크)으로 병원 진료를 받을 때도 본인부담금을 5%만 내는 등의 사례다. 복지부는 “통상 경증 질환으로 분류되는 105개 질환부터 전문가 논의를 거쳐 대상을 선정하고 적용 제외 사례는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중증 아토피 질환자의 경우 가려움·발진은 산정특례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관련 없는 허리디스크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응급·분만 등 필수의료는 건보 확대

복지부는 문 케어가 의료체계 왜곡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건보 지출이 늘어났는데도 중증 질환, 소아암 같은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지원은 미흡했고, 대형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의사 인력 양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소아암 전문의가 67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서울 29명, 경기 12명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 강원·경북에는 한 명도 없다.

필수의료 기반이 약화하면서 중증 응급환자 원내 사망률이 2019년 6.4%에서 2020년 7.5%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입원 후 30일 내 뇌출혈 치명률은 15.4%에서 16.3%로 증가했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대형대학병원 43개)에 감기 등 105개 경증 질환 환자가 외래진료를 받을 때 낸 돈은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포함시키지 않을 방침이다. 가벼운 병으로 대형병원에 가는 것까지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과 실손보험금 이중 수령을 막는 장치도 만들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문 케어를 대폭 손질해 절감한 재정으로 응급·분만 등의 필수적인 의료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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