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폭발력 커지는 기업부채…450곳 단기부채 1년새 207조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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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한계 선상의 기업 뿐만 아니라 우량 기업들도 부채 부담이 늘고 있다. pixabay.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한계 선상의 기업 뿐만 아니라 우량 기업들도 부채 부담이 늘고 있다. pixabay.

모바일 게임 개발사인 넷마블의 올해 3분기 유동비율은 41.1%다. 1년 전인 지난해 3분기만 해도 넷마블의 유동비율은 164.4%였다. 유동비율은 1년 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유동자산)을 1년 안에 갚아야 할 부채(유동부채)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부채 상환 능력을 보여준다. 1년 만에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뚝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3분기 넷마블은 유동부채를 갚고도 6600억원이 남을 정도로 현금 유동성이 양호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지난해 10월 소셜카지노 게임사 스핀엑스 지분 인수부터다. 올해 내내 이어진 '수퍼 달러' 흐름 속 인수 자금 용도로 조달한 1조6000억원 이상의 달러화 부채가 불어난 탓이다.

넷마블 관계자는 “원화가치가 달러당 1400원대 중반에서 1300원대 초반으로 올라가며 재무 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향후 주요 자회사 배당 등 여러 방안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차입금을 줄여나갈것”이라고 밝혔다.

석유화학업체 롯데케미칼의 현금 유동성도 올해 들어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해 3분기 247.9%이던 유동비율은 지난 3분기 191.7%로 56.2%포인트 하락했다. 중·장기 사업 기반 확보 차원에서 지난 10월 배터리 소재 업체 일진머티리얼즈 경영권(지분 53.3%)을 2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며 대규모 자금 출혈이 불가피해졌다.

같은 달 부동산 경기 악화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관계사 롯데건설에 6000여억원을 지원하며 곳간은 더 비어갔다.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닥친 고유가로 원료비가 늘고 경기 침체 여파로 지난 2분기부터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지난달 10일 롯데케미칼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앞으로 신용등급(현재 AA+)을 하향 조정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고금리로 인한 자금 경색과 고유가와 고환율에 따른 비용과 이자 부담이 늘며 기업의 자금난이 심화하고 있다. 우량 기업이 모인 코스피 상장사마저 예외는 아니다. 기업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는 자금난에 기업 부채란 뇌관의 폭발력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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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상장사 454곳 유동비율 238.8%→221.3% 하락  

기업 부채 위기 신호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중앙일보가 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올해 3분기 코스피 상장사(비금융) 자금 안정성 조사’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해보니 올해 3분기 보고서(9월 말 기준)를 제출한 454개 상장사의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은 221.3%로 지난해 9월 말(238.8%)보다 17.5%포인트 하락했다.

454개 상장사를 전수조사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9월 말 유동부채는 총 1005조7000억원에 달했다.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1.3배(207조4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유동부채는 빠르게 늘었지만, 유동자산은 같은 기간 1158조6000억원에서 1417조6000억원으로 1.2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유동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면, 단기 부채를 갚을 만큼 현금 유동성이 충분치 않다는 의미”라며 “고환율·고금리·고유가에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운수·건설 등 비제조업 상장사 유동비율 92.3%p 급락  

업종별로는 운수·건설·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상장사의 유동성 악화가 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비제조업 상장사(152곳) 유동비율은 1년 전보다 92.3%포인트 하락한 184%를 기록했다. 제조업 상장사(302곳) 유동비율(211%)이 7.9%포인트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부채 위험이 커지고 있다.

유동성이 좋아진 기업은 줄고, 나빠진 기업만 늘어나는 추세도 확인된다. 유동비율 200%를 넘긴 기업(129개사)은 1년 전보다 19개 줄었고, 200%를 밑도는 기업(325개)은 1년 전보다 19개사가 늘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한계 선상에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기업조차 자금 조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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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기업 불확실’ 적시 기업 절반 이상 재무 악화 

이미 자금난이 심화한 기업의 기초체력은 3분기 들어 더욱 나빠졌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계속 기업 관련 불확실성’ 강조사항이 적시된 자산 1000억원 이상 상장사 32곳의 3분기 재무 상황을 전수조사해보니 20개는 부채비율이, 16개는 유동비율이 악화했다.

계속기업 관련 불확실성은 회계감사 결과,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하면 회사의 생존이 불투명할 수 있다는 감사인의 의사표시다. 이미 위험한 기업의 절반 이상이 재무적으로 더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기업 부채 위기, 연체율·신용등급에 안 드러나 

나빠지는 기업 전반의 건강 상태를 시장 지표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시중은행권 기업 대출 연체율은 0.23%로 1년 전보다 0.07%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 충격 완화 등을 위해 금융당국이 도입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 등에 따른 착시 현상의 영향이다.

신평사가 매긴 신용등급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가 평가한 9월 말 기준 20개 기업의 회사채 신용등급이 높아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상향 조정 업체(14개)보다 6곳이 늘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대출액 자체가 급증해 (분모가 커지며) 연체율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고, 중견·중소기업 연체율은 정부의 대출 상환 유예 조치 등으로 낮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연체율 하락을 두고 기업들이 빚을 잘 갚고 있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내년 실물 위기 온다…업종 전환 등 구조조정 나설 때” 

문제는 내년이다. 반도체 관련 부품업체인 A사의 자금담당 임원은 “최근 대출을 연장하면서 금리가 6%대로 올랐다. 그래도 일단 현금을 확보해두는 게 1차 과제”라며 “내년이 진짜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폭등과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 증가에 외부자금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내년에도 중소기업의 고금리 리스크는 지속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자금 사정 악화는 내년부터 실물 경제 부담으로 번질 수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에는 실물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오면서 기업 3곳 중 1곳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업 이익이 줄면 세수와 일자리도 감소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대학원장도 “내년에는 수출·소비·투자 모두 좋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고금리 상황이 지속하면서 상반기부터 경기 침체 국면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돈맥경화’로 한계 선상의 기업이 급증하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정부는 수익성이 악화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업종 전환에 나설 수 있도록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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