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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적자 막을 대안 없는데…국회, 한전채 발행 확대 '부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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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03인,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03인,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경영 상황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전의 회사채(한전채) 발행액 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한전으로선 유동성 확보가 발등의 불이 됐다.

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선 한전법 일부 개정안이 재석 의원 203명 중 찬성 89명, 반대 61명, 기권 53명으로 부결됐다. 이 개정안은 현행 '자본금+적립금'의 2배로 제한한 한전채 발행 한도를 최대 6배까지 높여주는 게 골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기권이나 반대 표결을 던졌다. 여야 합의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야당의 '비토'가 나온 셈이다.

이날 반대토론에 나선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건 미봉책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자금시장을 더욱 경색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면서 "한전 적자 해결책은 명료하다. 전기 요금에 연료비 등 발전원가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 개정이 대안 없이 무산되면서 여당에선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산중위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 직후 "민주당의 반대로 한전은 전력구입비 결제를 제때 못 하게 되고, 자칫 전력시장 전체가 마비될 대혼란을 초래할 위험에 빠지게 됐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한 주택가의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한 주택가의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올해 한전은 에너지값 급등 등에 따라 3분기까지 21조83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부도 최악의 경영 상황을 고려해 한전채 발행 한도 상향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그러나 한도가 늘어나지 못하면서 한전의 재정적 압박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이달부터 시행된 SMP(계통한계가격) 상한제로 각 발전사에 지급할 전력 도매가 지급액은 다소 줄었다. 그러나 연 30조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지금까지 월 수조 원에 달하는 한전채 발행으로 유동성을 어렵게 확보했는데 이마저도 한도 초과로 막힐 위기다. 한전에 따르면 내년 3월 주주총회 전까지는 추가 발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이후 대책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한전의 자금난이 현실화되면 채권·대출 등 금융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남은 방안은 이달 중에 결정될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의 대폭 인상과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투입, CP나 은행 대출 확대 정도다. 하지만 물가인상 등과 맞물려 전기료 인상 폭이 유동적인 데다 재정 지원도 정치적 부담이 크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료를 인상해도 실제로 회수하려면 한 달 이상 걸리고 월 단위로 걷는 거라 재정상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일단 새로운 한전법 개정안이 최대한 빨리 통과되는 쪽으로 노력하겠단 입장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3~4월쯤이 한전의 재정적 한계로 보이는데, 유동성이 다 떨어지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모든 발전사가 돈을 못 받는 대규모 정전급 사태가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주는 한편,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은 큰 폭으로 올려 한전 재무구조 개선과 에너지 사용 절감을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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