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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분만 시 ‘불가항력 의료사고’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적용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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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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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 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피해자를 위한 보상 재원을 정부가 100% 부담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형법상 과실치사상 죄를 적용하지 않는 의료사고 특례법이 제정된다.

8일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중증ㆍ응급, 분만, 소아환자 등 필수의료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의료기관과 의료진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방안이 주로 담겼다. 응급 수술ㆍ시술에 대한 수가 가산율을 인상하고 고난도 수술에는 추가 보상을 하는 등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 보상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분만 의료사고 보상재원 100% 국가 부담  

초(超) 저출산 추세가 장기화하면서 10년새 전국 산부인과 38%가 문을 닫았다. 전국 250개 시ㆍ군ㆍ구 가운데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어도 분만은 할 수 없는 지역이 63곳에 이르는 지경이 됐다. 분만 산부인과의 경우 다른 분야에 비해 의료사고 위험이 높다. 분만 중에 고의나 과실이 없이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의료인에게 과실치사상죄가 적용되면서 산부인과 기피현상이 심화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복지부는 ”분만 시 신생아 뇌성마비 등 불가항력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액 국가분담비율을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 보상액은 최대 3000만원으로 국가가 70% 의료기관이 30%를 분담한다. 정부는 이 비율을 10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국가분담비율을 90%까지 올리려했으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여야가 ‘저출산 시대에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합의했다”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또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피해자 재판절차 진술권, 국민 법감정 등을 고려해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적용여부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료인에 대한 형법상 과실치사상죄 적용을 배제하고, 형사 처벌을 면제하는 내용의 분쟁특례법이 제정될 전망이다. 다만 의료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의료사고는 특례 적용 대상에 들지 않는다.

복지부는 모든 분만 산부인과에 의료사고 분쟁ㆍ보상 부담을 반영해 현행 분만수가의 100%를 ‘인적ㆍ안전 정책수가’로 추가 지급한다. 여기에 더해 분만취약지의 안정적인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광역시를 제외한 전체 시군구의 분만 산부인과에 현행 분만수가 100%를 ‘취약지역수가’로 추가 지급키로 했다. 광역시가 아닌 지역에 위치한 분만의료기관은 현행 분만수가의 3배에 해당하는 수가를 지급받게 된다. 복지부는 “지역별 차등수가 제도는 효과성 평가 등을 거쳐 중증ㆍ응급, 소아진료 등 다른 분야에 확대 적용하겠다”라고 설명했다.

붕괴 위기에 내몰린 지역 중증소아 진료 기반을 회복하기 위한 제도가 도입된다. 복지부는 내년부터 2025년까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기존에도 어린이병원에 대한 지원이 이뤄졌지만 개별 의료행위에 대해 가산 수가를 얹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소아 환자가 줄면서 진료 자체가 줄어들자 이런 방식으로는 어린이병원의 손실을 메울 수 없게 됐다. 앞으로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가 중증소아 단기 입원ㆍ재택치료 등을 맡고, 대신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의료비용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성과평가를 거쳐 사후에 일괄 보상하기로 했다.

야간ㆍ공휴일 응급수술, 고난도 수술엔 추가 보상

현행 의료서비스 보상 체계는 ‘행위별 수가’제도다. 의료행위가 발생해야 수가를 주다보니 필수의료 수가를 아무리 높여줘도, 의료행위의 빈도가 낮고 수익도 낮게 형성되다보니 의료공급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필수의료분야에 공공정책수가를 얹어주기로 했다. 야간ㆍ휴일 응급, 고난도ㆍ고위험 수술에 더 큰 보상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뇌동맥류, 중증외상 등의 응급 수술ㆍ시술에 대한 가산율을 현행 100%에서 최대 175%까지 확대한다. 응급실에 내원한 중증 환자가 응급전용 중환자실에 입원할 때만 적용되던 관리료를 응급전용 입원실에 입원할때도 지급하기로 했다. 신속한 후속진료 연계를 위한 조치다.
내년부터 응급 심뇌혈관 질환자의 증상발현 후 최종치료 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실적을 평가해 보상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내년부터 수술ㆍ처치 등 저평가된 항목에 대한 종별 가산을 확대하고, 난이도나 자원투입 수준을 반영해 수가 기준을 세분화한다. 고난도ㆍ고위험 의료 행위에는 추가 보상한다. 같은 질환에 대한 수술이라도 고난도 수술방법을 적용하면 추가로 보상한다. 심뇌혈관질환 분야에 우선 적용 후 다른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병원 간 순환교대 당직체계  

이번 대책에는 지역별로 응급질환 협진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도 담겼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응급질환별로 수술, 처치 등 최종적인 치료가 가능한 곳을 미리 파악하고 의료진, 의료기관 간 협진망을 가동하는 방식이다. 응급 환자의 치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의 과로를 부르는 과도한 당직 근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병원간 순환당직체계가 도입된다. 병원마다 전문의 1~2명밖에 없는 경우 매일 24시간 당직 체계를 돌리기가 어렵다. 적은 수의 전문의가 당직을 서며 버티기 일쑤다. 앞으로는 월요일엔 A병원, 화요일엔 B병원 식으로 병원 단위 전문의 순환교대 당직 체계가 가동된다. 응급의료체계 내에서 중증응급 환자의 최종 치료까지 가능하도록 현재 응급처치ㆍ검사 등 응급실 진료 역량을 기준으로 지정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전면 개편한다. 지정 기준에 중증질환의 수술ㆍ시술 가능 여부를 추가한다. 행정구역 중심으로 지정된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를 실제 수요ㆍ자원 분포를 반영한 진료권에 따라 재편한다. 또 권역별 심뇌센터ㆍ외상센터ㆍ소아응급의료센터의 기준을 강화하는 동시에 센터 운영비와 전공의 지원을 늘린다. 이에 더해 복지부는 중증ㆍ응급 수술 등 필수의료 분야에 헌신한 의료인에게 주는 ‘한국의 의사상’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에는 의대 정원 확대, 전공과목별 쏠림 현상 해소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2020년 기준 국내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2.4명) 다음으로 낮고 평균(3.7)보다 1.3명 적다. 복지부는 “2020년 9월 의정협의에서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하며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특정 과목 쏠림 현상에 대해 차전경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료기관에서 과목별 필수인력 비율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되기는 했으나 오히려 수도권 쏠림 등이 더 심화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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