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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난에도 문 걸어 잠근 북한…모니터링은 거부, 내부는 옥죄기

중앙일보

입력

봄 가뭄, 여름 홍수, 일조량 부족 등 기상악화로 올해 작황에 타격을 받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차단을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북한은 이전에도 인도적 지원에 대한 외부의 모니터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그 과정에서 내부의 열악한 경제·인권 상황이 드러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요원들이 지난 2019년 4월 북한 황해북도에서 현지 조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요원들이 지난 2019년 4월 북한 황해북도에서 현지 조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소리(VOA)는 8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산하 인도지원사무국(ECHO) 대변인이 '2023년 인도적 지원 계획에 북한도 포함돼 있느냐'는 질의에 "검증을 위한 직원들의 접근이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초 방역 조치를 명분으로 자국 내 체류 중인 국제기구 요원들을 철수시켰다. 현재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모니터링할 요원들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시작한 재난 대응과 식량 안보에 관한 프로그램이 중단됐고, 일부 사업만 완료할 수 있었다는 게 ECHO 측의 설명이다.

앞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2일 올해 4분기 '작물 전망과 식량 상황'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의 식량 지원이 필요한 국가 중에 하나로 재지정했다. FAO는 보고서에서 "북한 주민 대다수가 낮은 수준의 식량 섭취로 고통받고 있다"며 "북한의 올해 농업 생산량이 평균 이하를 밑돌 것으로 예상돼 북한의 식량 안보 상황은 계속 취약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4일 "국가알곡 수매를 끝낸 단위들이 늘어난다"며 "올해 농사의 성과적 결속을 위해 계속 분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은 태탄군 옥암농장의 가을걷이 모습. 뉴스1

노동신문은 지난달 4일 "국가알곡 수매를 끝낸 단위들이 늘어난다"며 "올해 농사의 성과적 결속을 위해 계속 분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은 태탄군 옥암농장의 가을걷이 모습. 뉴스1

북한 당국은 수확기 양곡 징수를 독려하고 곡물 생산·유통과 관련한 법령을 개정하는 등 식량 관련 통제를 강화하면서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상무회의에서농장법, 양정법 등의 수정·보충 안을 심의하고 해당한 정령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양곡 수매 등 식량 유통과정에서 나타난 비리 현상을 막기 위한 입법 조치로 풀이된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올해 수확기에 앞서 법무 부문 일꾼이나 기관원을 농장에 상주시켜 계획된 수매량을 철저히 입도선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 28일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에서 워낙 쌀 생산량에 대해 허위 보고가 많았던 것 같다"며 "이 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허풍방지법을 제정했다"고 보고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곡 유통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북한이 지난 9월 이른바 '허풍방지법'을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이런 상황 때문에 곡창지대인 황해도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탈북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온다"고 말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지난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에서 "봄 가뭄과 호우 여파로 올해 작황과 식량 상황 악화가 예상돼 양곡 징수를 독려하며 물량 확충에 매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황해남도 지역 농민들이 지난 9월에 지원받은 농기계를 이용해 수확하는 모습. 뉴스1

황해남도 지역 농민들이 지난 9월에 지원받은 농기계를 이용해 수확하는 모습. 뉴스1

북한 당국은 가용한 자원을 농업 부분에 집중시키는 모습을 보였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9월 말에 군수공장 동원해 제작한 농기계 5500대를 황해남도 지역으로 보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일한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교수는 "기상의 영향으로 작황이 부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가을걷이를 앞두고 급하게 농기계를 투입했다"며 "탈곡 과정의 기계화를 통해 수확 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올해 작황이 나빠질 것에 대비해 수확기에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이란 설명이다.

북한은 이 밖에도 올해 1월에 농업을 담당하는 부처의 지위와 권한을 격상시킨 바 있다. 내각 부처인 농업성을 한 단계 상위 조직인 농업위원회로 격상시켜 먹는 문제 전반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런 내부 옥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식량 사전은 개선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문제는 사회주의 시스템 자체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며 "자영농에 준하는 근본적인 농업개혁이 없다면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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