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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두통에 'MRI 3종세트' 검사…尹정부, 文케어 싹 뒤엎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강화 정책, 즉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고 있다. 2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강화 정책, 즉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고 있다. 2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의 핵심 정책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즉 문재인 케어 뒤집기에 나섰다. 문 케어가 내건 '비급여의 급여화' '환자부담 상한액 축소'가 의료 남용과 비효율을 초래하고, 보험료와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켰다고 진단했다. 의료 체계 왜곡도 초래했다고 본다.

보건복지부는 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청회에서 이런 방안을 공개했다. 지난 7월 감사원에서 "문 케어 시행 이후 의료이용 과다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을 만들어 석 달 만에 이런 대책을 내놨다.

복지부는 문 케어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문 케어의 골자는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학적 비급여(건보 미적용)의 급여화'이다. 복지부는 8일 문 케어와 관련, "광범위한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이 의료 접근성을 제고하는 순기능을 했다"고 설명했다. 긍정적 평가는 이걸로 끝이었다.

문 케어의 대표 상품인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초음파 검사 건보 적용의 폐해를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열거했다.

40세 환자는 지난해 단순 두통 증상만을 호소했으나 뇌 조영제, 뇌혈관, 특수검사 3종류의 MRI를 동시에 촬영했다. MRI 검사에 건보재정 72만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뇌혈관 관련 수술이나 치료를 받지 않았다. 과잉 검사였다. 신경외과 의사의 신경학적 검사에서 이상 증세가 발견하지 않았는데도 MRI를 찍었고, 의학적 필요성을 따지지 않고 3개의 촬영에 건보를 적용한 것이다.

초음파 검사도 남용했다. 올 1월 52세 환자가 병원에서 소화불량을 호소했다. 갑상샘 결절도 발견됐다. 병원은 이 환자에게 복부·비뇨기·심장·갑상샘·혈관 등 6개 부위에 초음파 검사를 했다. 복부 불편감과 통증, 흉통을 호소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검사에 건보재정 115만원이 들어갔다. 이런 식의 여러 부위 동시 검사가 연 7000여건에 달한다.

2018년 4월 이후 3년간 근골격계 질환 수술을 하면서 상(上)복부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 경우가 1만9000여건에 달했다(감사원 감사).

건보 기준이 헐거워지고 도덕적 해이가 겹치면서 MRI·초음파 검사비가 2018년 1891억원에서 지난해 1조8476억원으로 약 10배로 뛰었다. 문 케어 시행 이전에는 검사 건보 확대에 매우 신중했었다. 하지만 문 케어로 둑이 무너지면서 홍수처럼 휩쓸려 나갔다.

문 케어의 주요 장치 중 하나가 환자 본인부담금 상한제이다. 한 해 건보 진료비 중 환자가 일정액까지만 내도록 제한하는 제도이다. 가령 1~7분위 중 1분위는 83만원까지만 내는 식이다. 그런데 문 케어를 하면서 소득 하위 50% 가입자는 본인부담 상한액을 낮췄다. 반면 상위 5~7분위는 상한을 일부만 높였다. 더 높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로 인해 상위계층이 오히려 이 제도의 득을 크게 보는 결과가 초래됐다.

또 이 제도로 인해 2016~2021년 건보재정 지출이 연평균 17.3% 증가했다. 전체 건보지출 증가율(8%)의 두 배가 넘는다. 적용 인원은 약 3배로 늘었다.

복지부는 문 케어를 하면서 적정하지 못하거나 과다한 의료 이용 사례가 발생했고, 외국인의 의료쇼핑이 늘면서 돈이 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비급여 의료행위 관리 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급여화를 추진하면서 실손보험과 연결된 비급여 시장이 팽창해 가계 의료비 증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문 케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건보료를 많이 올렸다. 연평균 건보료 인상률이 2013~2017년 1.1%에서 2018~2022년 2.7%로 껑충 뛰어 건보료 부담이 크게 늘었다.

건보 지출이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중증질환, 소아암 같은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지원은 미흡했고, 대형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해 의료 체계가 왜곡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문제가 의사 인력 양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소아암 전문의가 67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서울에 29명, 경기에 12명으로 쏠려 있다. 강원‧경북에는 한 명도 없다.

필수의료 기반이 약화하면서 위급한 상황에서 환자가 치료 적기(골든타임)를 놓치거나 타지에서 진료를 받는 일이 늘어났다. 중증응급환자 원내 사망률이 2019년 6.4%에서 2020년 7.5%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입원 후 30일 내 뇌출혈 치명률은 15.4%에서 16.3%로 증가했다.

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MRI 검사를 시작하기 전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MRI 검사를 시작하기 전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복지부는 문 케어를 뒤집는 방안을 내놨다.
우선 뇌·뇌혈관 MRI 건보 기준을 강화한다. 두통·어지럼증의 경우 신경학적 검사를 했을 때 보험을 인정하되 최대 3회 촬영까지 인정하는 것을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소견 있는 경우에만 보험을 적용하되 최대 2회 촬영만 적용한다. 상복부 초음파 건보 기준이 지금은 없다. 앞으로 수술 위험도 평가 목적으로 검사할 경우 의학적으로 필요한 때만 인정한다. 같은 날에 여러 부위를 초음파 검사하지 못하게 횟수를 제한할 방침이다.

문 케어 계획대로라면 올해 근골격계 MRI·초음파 검사에 건보를 적용해야 하는데, 이 방침을 뒤집는다. 필수적인 항목에만 제한적으로 보험을 적용한다. 건보료 기준 상위 계층인 5~7분위 가입자의 본인부담금 상한금도 올린다. 현재 360만~598만원인데 이를 414만~780만원으로 높인다. 이럴 경우 이들 분위의 환자 부담이 늘어난다.

또 상급종합병원(대형대학병원 43개)에 감기 등의 105개 경증질환 환자가 외래 진료를 받을 때 낸 돈을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포함하지 않는다. 가벼운 병으로 대형병원에 가는 것까지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본인부담금 상한제 환급금과 실손보험금 이중수령을 막는 장치를 만들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문 케어를 대폭 손질해 절감한 재정으로 응급·분만 등의 필수적인 의료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건보가 안고 있던 구조적인 비효율을 관리하려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며 "이번 단기 대책에 그치지 말고 현 정부 임기 5년 동안 보건의료제도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정부가 문 케어 등 지난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의 문제점만을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검사비 위주의 현행 건보 수가 제도를 의료 행위 중심으로 재조정하고, 필수의료·비대면 진료 등을 적절히 보상하는 합리적인 수가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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