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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구단주 '기다리겠다'는 말에 두산 감독 결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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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를 맡은 이승엽 감독. 김효경 기자

두산 베어스를 맡은 이승엽 감독. 김효경 기자

올해 가을 야구계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은 두산 베어스의 이승엽(46) 감독 선임이었다. 두산은 구단과 인연이 없고, 지도자 경력도 없는 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다음 시즌 구상을 시작한 이승엽 감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지난 10월 취임한 이승엽 감독은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천 2군 캠프에서 진행된 마무리 훈련을 이끌었다. 선수단 파악을 위해 개인 면담을 가진 뒤 훈련을 꾸준히 체크했다. 맨투맨 트레이닝을 하며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마무리 훈련이 끝나 몸은 편해졌지만, 내년 스프링캠프 생각에 머릿속은 복잡하다.

이승엽 감독은 "여유가 없었는데, 요즘은 잘 쉬고 있다. 방송이나 해설을 할 땐 스케줄이 유동적이었는데, 이제는 준비할 시간이 생겼다. 다가오는 캠프에 대한 구상과 시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지낸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 감독은 "처음엔 감독이 됐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조금씩 무게감을 느끼고 있다. 23년간 야구를 하면서 많은 지도자를 봤다. 힘들고, 외롭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어 "생각했던 이상으로 힘든 일이 많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천 2군구장에서 진행된 마무리 훈련을 지도하는 이승엽 감독. 연합뉴스

이천 2군구장에서 진행된 마무리 훈련을 지도하는 이승엽 감독. 연합뉴스

이승엽 앞에 항상 따라붙었던 수식어는 '국민타자'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라이온 킹'이다. 1995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2017년 은퇴할 때(일본 8년 제외)까지 뛰었다. 은퇴 이후 해설위원과 홍보대사를 지낸 이승엽 감독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두산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만나자는 거였다.

"식사 자리라고 해서 나갔다가, 제안을 받아 놀랐다. 나에겐 대구 이미지가 강해서 '다른 팀에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바로 수락하지 못하고 '감사하다'고 했는데, 구단주께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같이 하자'는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줘 '여기로 와야겠구나. 나를 원하는구나. 믿어주는 분에게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승엽 감독은 취임식 인터뷰에서 '보강해야 할 포지션'에 대한 질문에 "포수"라고 답했다. 그리고 두산은 FA(자유계약선수) 양의지와 6년 최대 152억원에 계약했다. 양의지의 가세로 두산은 단숨에 큰 힘을 얻었다.

이 감독은 "양의지가 좋은 선수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야구장에서 오며가며 몇 번 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고. (유)희관이를 통해 한 번 보자고 했는데, 흔쾌히 나와줬다"고 말했다.

양의지와의 대화를 통해 이승엽 감독은 양의지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이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인데도 만족하지 않고 더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나처럼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의지가 우리 팀에 필요하다, 꼭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FA 계약 전 함께 식사를 했던 박정원 두산 베어스 구단주와 이승엽 감독, 양의지. 사진 박정원 인스타그램

FA 계약 전 함께 식사를 했던 박정원 두산 베어스 구단주와 이승엽 감독, 양의지. 사진 박정원 인스타그램

박정원 구단주도 양의지와의 식사 자리에 함께 했다. 공교롭게도 양의지 계약 발표 하루 전 이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고, 잠시 공개됐다. 하지만 이미 유출된 이후였고, 팬들은 '구피셜(구단주 오피셜)'이라며 놀라워했다. 이승엽 감독은 "아마 그날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만나신 날일 것이다. 그런 자리가 있다고 하니, 함께 하시겠다고 했다. 구단도, 구단주도 너무 애를 써주셨다. 설사 양의지가 오지 못해도 감사하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승엽 감독은 두산 지휘봉을 잡기 전 JTBC 예능 '최강야구'를 통해 감독으로서 모습을 선보였다. 홈런타자 출신이지만 세밀한 작전을 구사했고, 베테랑들은 물론 윤준호, 류현인, 최수현 등 어린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이 감독은 "일본에서 야구를 하다보니 영향을 받았다. 지도자가 된다면 여러 가지 작전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번 작전이 나간다면, 그건 선수를 믿지 못하는 모양새다. 다만 1점이 필요하고, 진루타가 필요할 땐 적재적소에서 벤치가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곰들의 대화에서 팬들을 만난 이승엽 두산 감독. 연합뉴스

지난달 곰들의 대화에서 팬들을 만난 이승엽 두산 감독. 연합뉴스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난 무게 잡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19살 때 야구단에 들어가 42살까지 뛰었다.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20살 선수의 마음, 25살의 마음, 베테랑의 마음 모두 이해한다.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선수들이 다가오지 못한다. 캠프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하면 가족같아지지 않을까"라고 웃었다.

의심의 시선도 있다. 코치 경력 없이 곧바로 감독이 됐기 때문이다. 이승엽 감독은 "해설위원을 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지도자가 되면 '이런 연습, 이런 방법을 써봐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야구를 위에서 보면 잘 보인다. 시야는 더 넓어졌다"며 "경험이 없으니까 우려하는 건 당연하다. 두 배, 세 배 노력하고 준비하면 갭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김한수 전 삼성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이승엽 감독은 "내가 신인일 때 주장이었고, 코치와 감독으로서 팀을 이끈 모습을 봤다. 내가 흥분했을 때, 김한수 수석코치가 이야기한다면 한 번 더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제안을 거절하실까봐 걱정했는데 감사하다"고 했다.

이승염 두산 감독(오른쪽)과 김한수 수석코치. 연합뉴스

이승염 두산 감독(오른쪽)과 김한수 수석코치. 연합뉴스

출범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한국 야구는 2000년대 후반 국제대회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다. 대표팀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고, 기술위원을 지낸 이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주말리그로 인해 연습량이 줄어들었다. 선수들의 체격조건은 좋아졌는데 제도적으로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 예전보다 과학적인 연습을 하고 있지만, 훈련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는 결국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 '꼰대'라고 불릴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성공과 더 좋은 야구를 위해서라면 연습을 더 해야 한다."

두산은 내년 1월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에 스프링캠프를 꾸린다. 이승엽 감독이 2000 시드니올림픽 동메달결정전 8회 일본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결승 2루타를 때려낸 곳이다. 메달 수상자가 새겨진 동판도 남아 있다. 당연히 이승엽 감독의 이름도 있다. 이승엽 감독은 "기분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좋은 기운을 받아 오겠다"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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