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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 통계 작성 후 첫 역성장…고금리에 가계대출 줄고, 기업대출 늘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은행권의 전세대출 잔액이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전세대출 이자가 연 7%까지 치솟으며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진행된 영향이다.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 뉴스1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11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57조8000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원이 줄었다. 11월 기준 가계대출이 줄어든 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4년 1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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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별로는 주택담보대출이 1조원이 늘었고,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은 2조원이 줄었다. 기타 대출은 통계 작성 후 11월 기준으로는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기타대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매달 줄고 있다. 기타대출 잔액은 올해에만 20조원이 감소했다. 주담대 증가액도 통계 작성 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지난달에는 전세대출도 1조원이 줄었다. 전세대출이 감소한 건 관련 전세대출 관련 통계를 모은 2016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전세대출 금리가 급등하며 전세수요가 줄고, 전세의 월세화가 본격화된 결과다. 5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의 전세대출 금리는 7일 기준 연 5.93~7.51%로, 전국 아파트 전·월세전환율(4.8%ㆍ9월 기준)보다 대출금리가 높다.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것보다 월세를 내는 게 더 나아진 상황이다. 한은 황영웅 시장총괄팀 차장은 "전세거래가 둔화하면서 관련 자금 수요가 감소했다"며 "신학기 전세 수요 등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모니터링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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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이 발표한 11월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도 2조1000억원이 감소했다. 은행권과 합치며 전 금융권에서 가계대출이 3조2000억원이 줄었다. 상호금융(-1조6000억원), 카드사 등 여신 전문사(-1조원), 저축은행(-1000억) 등이다. 전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은 1년 전보다 0.3%(5조1000억원)가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5년 이후 첫 감소다.

은행 정기예금에는 뭉칫돈이 몰렸다. 11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59조4000억원으로 전월보다 27조7000억원이 늘었다. 정기예금에는 올해 1~11월 215조3000억원의 돈이 새로 유입됐다. 반면 수시입출식 예금에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달 수시입출식 예금 잔액은 887조6000억원으로 전월보다 19조6000억원이 줄었다. 수시입출식 예금에서는 올해 1~11월 116조4000억원의 돈이 빠져나갔다. 이자를 거의 주지 않아도 되는 수시입출식 예금은 큰 폭으로 줄고, 이자를 더 줘야 하는 정기예금이 늘며 은행들의 자금 조달비용도 늘고 있다. 조달비용 증가는 통상 대출금리로 전가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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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빨아들이는 대기업…대출액 중소기업 추월

지난달 기업대출 잔액은 1179조7000억원으로 전달보다 10조5000억원이 증가했다. 11월 기준으로는 통계 작성 후 가장 많이 늘었다. 기업대출은 올해 1~11월에 114조원이 늘어났다. 특히 올해에는 대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빨아들이고 있다. 대기업 은행 대출 잔액은 지난달 6조5000억원이 늘어나 중소기업(4조원)보다 증가 폭이 더 컸다. 올해 1~11월 대기업 대출은 43조7000억원이 늘어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액(9조2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올해 1~11월 70조3000억원이 늘어나 지난해(82조8000억원)보다 증가 폭이 오히려 줄었다.

대기업들은 기업어음(CP) 시장에서도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달 CPㆍ단기사채 순발행액은 3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올 한해 22조원의 순발행이 이뤄졌다. 한은 관계자는 "에너지 공기업과 우량 기업들의 회사채 시장 대신 CP를 찾으며 발행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만기가 짧은 CP는 발행 절차가 간소한 데다, 시가평가를 적용하지 않아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하락 등의 손실이 장부에 남지 않는다. 회사채 시장에는 여전히 냉기가 돌고 있다. 지난달 회사채는 1조1000억원의 순상환이 이뤄졌다. 회사채는 올해 1~11월 6조5000억원의 순상환이 이뤄졌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한국 채권시장과 금융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은 이유를 미국 기준금리 인상 탓만으로 돌리기 어렵다”며 “금융회사 간 과도한 예금 확보 경쟁과 우량 대기업의 대출 과점화로 유동성 부족 현상을 전 세계 공통된 현상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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