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일 대구 한 토론회에서 한 발언의 여파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7일 오전 친윤계 주도로 국회에서 열린 공부모임 ‘국민공감’ 발족식에는 권성동ㆍ김기현ㆍ안철수 의원 등 주요 당권주자들을 포함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5명 중 71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투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오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현장을 방문한 정 위원장과 달리, 공개일정이 없었던 주 원내대표의 불참을 놓고 당내에선 “최근 주 원내대표의 발언을 놓고 껄끄러운 당 분위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주 원내대표는 3일 대구ㆍ경북 언론 초청 토론회에서 차기 당권 주자 가운데 김기현ㆍ윤상현ㆍ조경태 의원 등의 이름을 열거한 뒤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게 당원들의 고민”이라며 “다들 (당원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차기 당 대표의 조건으론 “국회 지역구 의석의 절반이 수도권인 만큼 수도권에서 대처가 되는 대표여야 한다.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대표여야 하고 공천에서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을 놓고 6일 당내 반발이 쏟아졌다. 당권 주자들은 “내부 총질보다 더 나쁜 게 내부 디스”(6일 나경원 전 의원), “수도권 출신 당 대표를 내세워야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주장은 틀렸다”(6일 김기현 의원), “자꾸만 편 가르기 하는 느낌을 주는 건 적절치 않다”(6일 조경태 의원)고 반박했다.
특히 친윤계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이 7일 이 발언을 직격했다. 장 의원은 이날 국민공감 발족식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주 원내대표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며 “굳이 안 해도 될 말씀을 해서 우리 당의 모습만 자꾸 작아지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장 의원은 “그런 표현에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고 (세간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대통령은 우리 전당대회 후보를 두고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 걸로 본다”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 주변에선 3일 발언이 “특별히 누군가를 염두에 둔 게 아닌 단순 일반론”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 원내대표는 해당 발언을 공개 비판한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다. 발언 전문을 보면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일반론을 얘기한 거 같다. 평소 지도부가 모였을 때도 ‘MZ세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자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주 원내대표가 실명을 거론한 점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계파색이 옅고 신중한 걸로 정평이 나 있는 주 원내대표가 특정 인물들을 언급한 배경이 따로 있을 거란 해석이다. 한 중진 의원은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마치 명단을 읽는 듯 실명을 언급했다”며 “발언을 한 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비윤계로 꼽히는 당권주자들이 주 원내대표의 발언에 화답하면서 이 같은 해석에 힘을 더했다. 이날 유승민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웬일로 주 원내대표께서 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가 싶었다. MZ세대, 수도권에서 지지를 받는 그런 당권 후보가 지금 저밖에 더 있느냐”라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중도와 젊은 세대의 지지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당의 얼굴이 돼야 유권자에게 변화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썼다.
당 일각에선 주 원내대표가 용산 대통령실과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하며 긴장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부터 발생한 용산과의 긴장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내대표 선거 당시 막판까지 ‘윤심’논란이 이어지면서 장 의원과 가까운 이용호 의원이 42표를 득표하는 등 선전했다.
지난 달 8일 주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이른바 ‘수첩논란’으로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국감장에서 퇴장시키자, 친윤계인 초선 이용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주 원내대표를 직접 비판하는 등 친윤계와 주 원내대표의 긴장도가 높아졌다. 최근에는 주 원내대표가 야당과 예산안 합의처리 이후 국정조사에 합의한 걸 놓고 친윤계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지며 간접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당내에선 “논란이 되는 발언으로 일종의 존재감 부각이 됐다”(지도부 관계자)는 긍정 평가도 나온다. 한 중진의원은 “주 원내대표는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여러 상황을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당이 총선을 앞두고 어떤 변곡점을 맞이하면 가장 냉정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장 의원 등의 비판에 대해 “내가 디스한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런 게 아닌데 자기들이 계속 스스로 디스하는 것 같다”며 “나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적도 없고 디스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