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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처럼 수신료 받는데...NHK 회장 왜 14년간 재계인사 세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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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내년 1월 취임하는 신임 회장에 일본은행 이사 출신인 이나바 노부오(稲葉延雄·72) 리코 경제사회연구소 비상근고문을 지난 5일 선임했다. 내부 출신이 아닌 재계 인사가 NHK 회장직을 맡는 건 지난 2008년 후쿠치 시게오(福地茂雄) 아사히맥주 회장 이후 6명 연속이다. 1976년부터 2007년까지 31년 동안에는 단 한 차례(10개월 간)를 빼고 NHK 내부 인사가 회장을 맡아왔다.

이나바 신임 NHK회장은 6일 기자회견에서 "공정하고 공평하며 오류가 없는 확실한 정보를 끊임없이 국민에 제공하지 않으면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는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NHK의 차기 회장으로 선임된 이나바 노부오(稲葉延雄·72) 리코 경제사회연구소 비상근고문. 교도=연합뉴스

NHK의 차기 회장으로 선임된 이나바 노부오(稲葉延雄·72) 리코 경제사회연구소 비상근고문. 교도=연합뉴스

NHK에선 이사회에 해당하는 경영위원회(외부 전문가 12명)의 대표인 경영위원장이 최고경영책임자(CEO)를 맡고, 회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는 구조다. 경영위원회가 회장을 임명하긴 하지만 방송법에 따라 프로그램의 내용에는 경영위원회가 일체 관여할 수 없다. 또한 인사·조직 개편 등을 놓고도 회장에 실질적 권한이 주어진다. 따라서 NHK의 경우 회장이 사실상 CEO 역할을 하고 경영위원회는 감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회장의 능력이 절대적인 선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외부 인사 등용 배경은 = NHK는 지난해 "구조개혁 성과를 시청자에게 환원한다"는 원칙 아래 지상파방송과 위성방송(BS)의 수신료를 내년 10월부터 각각 10%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지상파 수신료의 경우 월 1225엔(약 1만1680원)에서 1100원(1만488원)으로 내린다. 최근 5년 사이 세 번째이자 역대 최대 폭의 인하다. NHK 측은 "이번 인하로 4500억원의 수입손실이 생기겠지만 적립된 잉여금과 군살빼기로 메워 2027년도에는 흑자 체제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NHK 경영위원회 관계자를 인용, "당장 임기 3년 동안 대규모 구조조정 등 경영수완을 선보일 수 있는 건 내부 인사로는 무리"라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도 "NHK 보도의 공정성, 민영방송처럼 만드는 프로그램 연출에 대한 비판도 강하다"며 "공영방송의 역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 속에 수신료 제도에 대한 엄격한 (시청자들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고 재계 인사 임명에 대한 배경을 짚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민의 방송'인 공영방송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따르기 위해선 내부 파벌과 이익에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외부 인사가 과감한 수술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붙여 받는 한국 KBS와 달리 NHK는 시청자로부터 수신료를 따로 납부받는 방식이라 제대로 된 공영방송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미즈호금융그룹 출신의 마에다 데루노부(前田晃伸) 현 회장이 최근 한 행사에서 "앞으로 NHK가 비대해지는 일은 결코 없을테니 여러분 안심하셔도 된다"고 인사말을 한 것에서도 NHK 안팎에 경영합리화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NHK 내부 인사는 "내부 발탁을 바라는 마음이야 왜 없겠냐만 국회로부터 예산을 여야 가리지 않고 동의받기 위해선 객관성이 담보된 외부 인사가 더 낫다는 내부 여론도 강하다"고 전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있는 NHK사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일본 도쿄 시부야에 있는 NHK사 전경. 사진 위키피디아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 집착하는 NHK = NHK 회장을 결정하는 NHK 경영위원회(한국 공영방송사의 이사회에 해당)는 총 12명으로, 전원 외부 인사다. 다만 한국처럼 정치적 성향이 여야 한쪽으로 치우친 인사는 결코 선임될 수 없게 이중 장치를 걸어뒀다. 먼저 경영위원의 선임. 방송법에 경영위원은 중·참의원 양쪽의 동의를 얻어 총리가 임명하게 돼 있다. 여야 어느 한쪽에서라도 반대가 있으면 현실적으로 통과가 힘들다. 현재 12명의 경영위원 면면을 보면 ^경제계 출신 5명 ^학자 5명 ^법조인 1명 ^비영리단체 직원 1명이다. 또 NHK 회장이 되기 위해선 경영위원 12명 중 9명 이상(4분의 3)의 절대다수 찬동을 얻어야 한다. 한마디로 중립적인 명망가(경영위원)들이 능력 있는 경영자(회장)를 뽑는 게 NHK의 시스템이다. 이사회 위원을 여야가 사실상 나눠 갖고(KBS: 7대 4, MBC: 6대 3), 그때그때 정치적 지형에 따라 사장이 정해질 수밖에 없는 한국 공영방송과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현재 민주당이 국회 과방위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방송법 개정안의 방향 또한 NHK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성별·연령·지역을 감안한 100명의 국민을 선정해 '사장 후보 국민추천위원회'를 만들고 ^이사회 이름을 '운영위원회'로 바꾸고 ^구성 인원은 9~11명이던 것을 21명으로 늘리고 ^KBS와 MBC 이사회는 국회 추천 몫을 5명, 나머지 16명의 추천권은 PD연합회 같은 직능단체와 방송 관련 학회 등이 나눠갖고 ^공영방송 사장은 운영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한다는 것. '시민 참여'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관련 이익단체의 '사익'이 반영되고, 능력보다는 인기투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큰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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