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가해자의 고통 또한 끝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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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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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준장에서 대령으로 강등됐다. 장성의 별을 뗀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례적이다. 1979년 12·12 사태 당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이 이등병으로 강등된 게 최근 사례다. 별의 추락은 최고 권력자의 분노를 샀을 때 발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다 심기를 건드린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소장)처럼 말이다.

33년 만에 재현된 장성의 강등은 과거와 성격이 판이하다. 전 실장은 선임에게 성폭력 피해를 본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예람 중사 사건과 관련돼있다. 그는 성폭력의 직접적 가해자가 아니다. 이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니 2차 가해의 범주로 볼 수 있다. 성범죄 2차 가해를 평가하는 사회의 잣대가 얼마나 엄정해졌는지 보여준다.

(성남=뉴스1) 김영운 기자 = 고(故)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이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이날 성추행 가해자 장모 중사는 1심에서 징역 9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1.12.17/뉴스1

(성남=뉴스1) 김영운 기자 = 고(故)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이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이날 성추행 가해자 장모 중사는 1심에서 징역 9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1.12.17/뉴스1

2021년 3월 회식 직후 성추행을 당한 이 중사는 다른 부대로 전출 갔지만 2차 가해에 시달리다 삶을 포기했다. 그 과정이 안미영 특별검사의 수사로 드러났다. 성범죄 피해자의 사적 정보를 수사 기관이 유출하는 구태는 여전하다. 이 중사 사건을 담당한 군 검사는 동기 법무관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이 중사의 자살 관련 내용의 글들을 게시했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사생활에 관한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했다"는 게 안 특검의 발표다. 공군본부 장교는 이 중사가 강제 추행을 당한 직후 선배 부사관과 통화한 녹음파일 2개를 기자 두 명에게 건넸다.

대령 강등…징역 3년 엄벌 잇따라

10년 전 우리 사회는 피해자 개인정보 누설로 진통을 겪었다. 2012년 11월 서울동부지검의 모 검사가 절도 피의자인 여성을 불러 조사하다가 검사실에서 성 접촉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일부 검사와 검찰 직원이 수사기록 조회 시스템에 있는 여성의 사진을 외부로 유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검사 등이 벌금 300만~5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지난 1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나.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태도 그렇다. 가해자가 허위 사실을 말하고 다닌 건 물론이고 공군본부의 공보담당 장교는 기자 세 명에게 "강제 추행 사건이 아니라 부부 사이 문제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고 했다. 직속 상관인 중대장은 다른 부대 장교에게 "피해자가 좀 이상하다"고 했다.

이예람 중사 2차 가해 줄줄이 철퇴

성폭력 2차 가해의 잔인함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건이 말해준다. 2020년 7월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피해자인 부하 직원은 2년 반 동안 갖가지 2차 가해에 시달렸다. 지난달 법원이 성희롱으로 결론을 내면서 한고비를 넘겼지만, 언제까지 시련이 이어질지 모른다. 법원이 성희롱으로 인정한 ‘좋은 냄새가 난다’ ‘너네 집에 갈까’라는 박 전 시장의 메시지와 러닝셔츠 입은 사진을 보낸 행위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런데도 피해자에게 ‘피해 호소인’이라는 생소한 이름표를 붙였다. 박 전 시장의 죽음에 대해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김재련 변호사의 분노에 공감이 간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용인하는 환경을 ‘강간 문화’라고 규정한 작가 리베카 솔닛은 직장에서의 성적 협박이 생사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해병대의 마리아 로터바크 일병을 기억하기 바란다"(『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고 지적했다. 로터바크 일병은 상급자의 강간을 증언하려던 중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됐다. 솔닛은 성폭력이 섬뜩한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들을 열거한다.

박원순 부하 직원 피해 언제 끝날까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의 참상을 목격 중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여성폭력 2차 피해방지 지침 표준안’에 따르면 2차 피해는 여성폭력 피해자가 ‘수사·재판·언론보도 등 여성폭력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 등을 포함한다. 박 전 시장의 부하 직원도 그랬지만, 이 중사 역시 전방위에서 2차 가해가 날아왔다. 직속 상관인 중대장과 대대장은 이 중사가 세상을 떠난 후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를 맡은 군 검사와 법무실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억울함을 언론에 알려야 할 공보담당 장교 역시 가해자 편에 섰다. 이 중사 입장에선 손을 내밀 사람이 안 보였을 것이다. 심지어 이 중사를 돕는 양 나선 변호사가 녹취록과 녹음 파일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 6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 중사 가족에 대한 2차 가해다. 앞으로도 2차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이 줄줄이 이어진다. 괴로워하는 피해자를 보면서 조용히 넘어가라 회유하고,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피해자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귀엣말하는 광경과 이별할 때가 됐다. 얼마나 더 많은 형사처벌이 가해져야 달라질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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