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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놀라운 과거...'2002년 한국' 축하해준 포르투갈 유일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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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차장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어린 시절 레스토랑을 운영한 부모님을 도와 서빙 일을 종종 했다. 자국 포르투갈 언론과 인터뷰하며 밝힌 바에 따르면 꽤 싹싹하고 친절해 곧잘 팁을 챙기는 웨이터였다고 한다.

선수 시절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포르투갈이 2002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0대 1로 패해 조기 탈락했을 때 벤투는 주전 미드필더로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패배의 충격 탓에 선수 대부분이 경기 후 인터뷰를 거부했는데, 유일하게 벤투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괴롭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16강에 오른) 한국과 미국을 축하해주는 일뿐”이라며 “두 나라 모두 우리보다 강했다”고 패배를 겸허히 인정했다.

지도자로 새 출발 한 이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슴 속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 놓지 않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언론과도 줄곧 대립각을 세웠다. 선수 시절 뛰었던 스포르팅(포르투갈)에서 코치를 거쳐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포르투갈 대표팀, 크루제이루(브라질), 올림피아코스(그리스), 충칭 리판(중국)을 거쳐 지난 2018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가는 곳마다 ‘폐쇄적’ ‘독선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전술과 선수 기용에 대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오직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10년 전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 똑같은 비판에 시달리자 벤투 감독은 “나는 선수들에게 4-3-3 포메이션이 좋은지, 또는 4-4-2가 나을지 묻지 않는다. 하지만 스테이크 주문을 받는 건 가능하다. 선수들에게 웰던 또는 미디엄-레어를 마음대로 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에 빗대 ‘감독은 전술을 세우고 선수는 실행한다’는 역할론을 강조했다. 감독은 스스로 결정하고 그 책임까지 지는 자리라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은 결과일 것이다.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벤투 감독은 안팎으로 지도력을 의심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벤투 감독이 이끈 한국은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의 원정 16강행을 이뤄내며 지난 시간의 정당성을 입증했다. 벤투가 옳았다. 결과로 입증하고 멋있게 떠나는 그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