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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빈곤이 부른 한동훈 여당 대표론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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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차기 국민의힘 대표로 세워야 한다는 ‘한동훈 차출설’을 놓고 여권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일 기존 당권 주자들에 대해 “성에 차지 않는다”며 ‘수도권 대표론’을 언급하며 촉발됐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할 일이 많은데, 왜 자꾸 이런 말이 나오느냐”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공개 발언이 알려진 뒤 ‘윤심(尹心)과 다르다’는 쪽으로 가닥은 잡혀가고 있지만, 7일에도 여권 내부 논쟁은 가열됐다.

이날 친윤(親尹) 공부모임 ‘국민공감’ 출범식에 참석한 친윤계 의원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우리 당의 모습만 자꾸 작아지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장제원 의원), “아주 극히 일부에서 하는 주장”(권성동 의원)이라며 차출설을 일축했다. 반면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보도된 언론 인터뷰에서 “새 대표는 수도권 선거를 견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MZ세대와 공감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새로운 인물’이어야 하니 한 장관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다만 한 장관 차출설이 실현되려면 현실적 장애물이 적지 않다.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외부인사가 곧바로 여당의 대표가 되는 사례가 드물고 리스크도 크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경우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되며 정치에 입문했지만, 이듬해 총선에서 대패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여권 핵심부에서는 한 장관이 2024년 4월 총선에 출마하는 ‘2단계 차출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는 말도 나온다. 이 밖에 여당 내부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체제에서 검사 출신 여당 대표가 나오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장관도 이날 차출설을 부인했다. 한 장관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중요한 할 일이 많기에 장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드린다”며 “앞으로도 그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계에서 당 대표 제안이 있었나’라는 질문에는 “그 누구도 저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답했다. 법사위 회의 후 퇴장하는 길에도 한 장관은 ‘총선이 1년 반 남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법무부 장관으로서 충실히 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겠다”고 답했다.

현실성 떨어지는 한 장관 차출설이 이토록 회자되는 건 여야의 ‘빈곤한 정치’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고질적 ‘영입정치’의 유산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한동훈 “장관직 최선 다할 것” 차출설 부인 

한동훈

한동훈

실제로 여권의 영입정치는 역사가 깊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반기문 대망론’이 절정에 달했지만, 반 전 총장이 입국 한 달도 안 돼 불출마를 선언하며 여권이 낭패를 본 적이 있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후 총선을 앞두고 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전 총리, 총선 참패 후 소방수로 등장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도 모두 외부인사다.

지난 대선(윤석열 대통령)과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안철수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때도 외부인사 영입이 선거 최중요 변수로 거론됐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집권 여당이 당 대표를 차출식으로 뽑는 건 묘수가 아니다. 오히려 여의도 정치가 희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한 장관 차출설과 무관하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법무부의 수장을 맡고 있는 한 장관을 대중 앞으로 계속 호출하고 있어서다. 특히 민주당의 ‘청담동 술자리’ 공세 등이 허위로 드러나면서 한 장관의 체급을 오히려 키워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민주당은 ‘이모(이모씨)’를 ‘이모’(어머니의 동생)로 오인해 한 장관을 비판한 김남국 의원, ‘한국3M’을 한 장관의 딸로 오해한 최강욱 의원의 질의로 “헛발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윤 대통령의 성에 차는 후보는 한동훈”(박지원 전 국정원장)이라는 말을 처음 공개적으로 꺼낸 게 야권 인사라는 점에 주목하는 이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한 장관을 정치할 사람으로 규정하면, 전 정권 수사에 대해 ‘정치적 목적을 가졌다’고 비판하기가 더 용이해질 것”이라며 “차출설을 야당이 함께 띄운 측면도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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