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범석의 살아내다

"제가 좀 막살았습니다" 돈의 무게에 짓눌렸던 암환자의 삶

중앙일보

입력

김범석 서울대 암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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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제가 좀 막살았습니다.” 보호자는 안 계시냐는 질문에 사내는 멋쩍어하며 대답을 했다. 환자분한테 보호자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받은 대답 중 가장 인상적인 대답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막살았다”는 대답이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되면 막산 것일까.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그에게 보호자에 관해 묻기 어려웠다.

그는 늘 혼자였다. 가족 없이 혼자 와서 혼자 항암주사를 맞고 갔다. 항암치료를 할 때마다 늘 "돈이 얼마나 드냐"고 물어봤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표준치료가 실패하고 다른 치료 대안마저 없어지자 그에게 임상시험(trial) 참여를 제안했다. 그는 선뜻 응했다. 신약은 처음엔 효과가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효과가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임상시험 신약마저 효과가 없어지자, 그는 다른 임상시험 참여를 원했다. 다른 임상시험 참여 기회가 생기면 꼭 연락해 달라고 연신 부탁했다.

몇 주 뒤 참여 가능한 임상시험이 생겨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의 휴대전화는 정지돼 있었다. 연구간호사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요금을 내지 않아 정지된 거 같다고 했다. 연구간호사는 나에게 몇 가지 사실을 더 알려주었다.

그는 연구간호사에게 5만원이 언제 입금되는지를 자주 물었다고 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검사와 치료가 무상으로 이뤄질 뿐 아니라 매주 병원 올 때마다 교통비 5만원이 제공되는데, 그 5만원이 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돈이었나 보다.

넉넉지 않아 보인다고 짐작은 했지만, 그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나 싶었다. 간혹 경제적 사정이 내 짐작이 크게 벗어나는 환자를 보면 당혹스럽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돈의 무게가 다르다. 5만원이 5000원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50만원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후자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돈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삶은 막살아지고 돈의 무게로 삶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도 그랬던 것 같다.

스위스 작가 에른스트 스튀켈베르크(1831~1903)의 '노인의 얼굴'의 일부분.

스위스 작가 에른스트 스튀켈베르크(1831~1903)의 '노인의 얼굴'의 일부분.

보호자가 없다고 했는데 병원 차트에 보호자 번호가 적혀 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했다. 그랬더니 동료 택시기사가 받았다. 동료 택시기사의 말에 따르면 그는 무연고자였고, 요즘은 자기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전전하며 잠을 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차트에 주소가 적혀있지 않았다.

한참을 통화하다 보니 그의 막 삶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냈다. 사업, 사업실패, 음식점, 음식점폐업, 빚보증, 이혼, 가족해체, 가족 단절, 다시 사업, 사업실패, 사기, 소송, 택시…. 술·담배는 기본, 그리고 암. 그리고 연락 두절. 그게 60평생 그의 삶이었다. 그러면서 막살았다고 했다. 그 결과로 보호자가 없다고 했다.

태어났을 때 누군가에게 큰 기쁨이었을 것이고, 한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을 텐데, 어떤 이유로 단절되고 이렇게까지 내팽개쳐질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그에게도 분명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고, 가족이 있었을 것이고,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막살면서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을 수 있어도 처음부터 그에게 아무도 없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가 혼자였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에 무연고자는 없다. 태어났으면 낳아준 사람이 있고, 핏줄로 연결된 사람들이 있다. 그저 가족에게 버림받는 사람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는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을지 시신은 누가 인도해 갔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무연고 시신이 되어 싸늘한 냉동 창고에 꽁꽁 언 채 오래 보관되진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을 텐데, 어떤 이유에서건 소리 없이 사라져 가는 사람들. 그렇게 소리 없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한때는 소중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내 기억에서 그의 삶을 쉽게 지워버려도 될 만큼 나는 그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을까. 아무도 없이 홀로 맞는 죽음, 아무도 거두지 않는 죽음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