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차기 국민의힘 대표로 세워야 한다는 ‘한동훈 차출설’을 놓고 여권 전체가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이미 일부 친윤계가 특정 주자를 차기 대표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한 장관 차출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여권 내 세력 다툼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주호영 원내대표가 일부 당권 주자 이름을 일일이 거론한 뒤 “(기존 주자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된 논쟁은 7일 더 증폭됐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공개된 일간지 인터뷰에서 “새 대표는 수도권 선거를 견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MZ세대와 공감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새로운 인물’이어야 하니 한 장관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것 아닐까”라고 발언했다.
친윤계는 곧바로 반발했다. 이날 오전 친윤계 모임 ‘국민공감’ 출범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한 장관 차출론을 막는 데 주력했다. 장제원 의원은 “그런 얘기를 자꾸 하니까 일 잘하고 있는 한 장관 차출론이 나오는 것”이라며 “대통령께서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장 의원은 당 투톱인 정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심판을 보실 분이 기준을 만드는 건 옳지 않다”고 날을 세웠다. 전당대회에 직접 출마할 예정인 권성동 의원도 “(차출론은) 아주 극히 일부에서 하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재차 반박에 나섰다. 그는 장 의원의 비판에 대해 “총선 승리를 위해 MZ세대와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말”이라며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론인데, 그게 왜 심판으로서 해선 안 될 말이냐”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동훈 차출설’을 둘러싼 친윤계와 여당 지도부의 미묘한 입장 차이는 한 장관 역할론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전날 한 장관 관련 기사가 쏟아지자 “법무부 장관으로서 한 장관에게 주어진 숙제가 산더미”라며 “왜 여당에서 자꾸 분위기를 띄워 논란을 자초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실 참모진과의 회의에서 "한 장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차출론) 왜 자꾸 이런 말이 나오느냐"고 답답함을 표했다고 한다. 한동훈 차출설이 윤 대통령 의중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 장관이 전당대회 출마 조건인 ‘책임당원’이 되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책임당원이 되려면 최소 3개월 간 1000원 이상의 당비를 내야 하는데, 지금 곧바로 사퇴하더라도 내년 3월초에나 책임당원이 된다. 한 장관을 차출하려면 전당대회 일정까지 뒤로 미루는 대규모 공사가 뒤따라야 한다.
이에 따라 여권 핵심부와 친윤계 사이에선 ‘한동훈 2단계 차출론’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1단계 격인 전당대회는 한 장관이 아니라 기존 친윤 주자가 나서고, 2024년 4월 총선에선 한 장관이 출마해 총선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시나리오다. 당내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정치 경험이 없는 한 장관 입장에서는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대표보다는 총선부터 도전해 차근차근 체급을 키우는 게 베스트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김재원 전 최고위원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장관은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서 영입을 해서 당의 총선에 도움을 달라고 할 여지가 많다”며 “정치권에 진입하기 위해서 총선 때 움직여야 되느냐, 이런 생각보다는 길게 봐도 충분히 가능한 분”이라고 말했다.
논란의 한복판에 선 한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참석 전 취재진과 만나 입을 열었다. 한 장관은 “저는 지금까지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일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계에서 당 대표 제안이 있었나”라는 질문에는 “그 누구도 저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답했다. 전당대회가 아닌 총선 출마 생각이 있냐는 물음엔 “아까 충분히 말했고, 법무부 장관으로서 충실히 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한 장관은 이날도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해 거침없이 입장을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해 수사 받을 가능성에 대해 “검찰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를 할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송금 특검 얘기를 꺼냈다. 한 장관은 “당시 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며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관여한 것이 드러나면 유감스럽지만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