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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상대로 충격의 성희롱까지…"교원평가? 정신과 다닌다"

중앙일보

입력

“얼굴평가는 기본이에요. ‘X같이 생겼다’ ‘숨소리가 싫다’ 이런 내용도 많고요. 수업에 대한 평가도 ‘귀찮게 이것저것 시키지 말아라’부터 밑도 끝도 없이 ‘진짜 못 가르친다’고 써 놓기도 해요. 심지어 좋은 평가라도 그저 ‘선생님 짱’ 이런 건데, 이게 교사 전문성 발전에 도움이 될까요?” (서울 A고등학교 교사)

교사의 능력을 개발하고 전문성을 신장한다는 목표로 시작된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가 본래 취지와 달리 교사를 향한 ‘인권침해’ 도구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세종시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이 교원평가를 통해 "XX 크더라" "기쁨조나 해라" 등의 글을 써 교사를 성희롱한 사건이 알려지고, 다른 교사들의 경험담이 보태지며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교육부 "욕설·성희롱 '필터링 강화'"…현장에선 "헛수고" 

지난 2020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구성원들이 교원평가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2020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구성원들이 교원평가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교육부는 논란이 커지자 욕설이나 성희롱 등 금칙어는 교원에게 전달하지 않도록 하는 ‘필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본질적인 평가 제도 개편을 요구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단체는 한 목소리로 ‘교원평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교원평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현재 교육부 장관인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주도해 전면 실시됐다. 교사도 교육 수요자인 학생, 학부모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교원평가는 매년 11월 학생·학부모가 온라인으로 교사의 수업 내용과 지도 과정 등을 객관식(5점 만점) 또는 서술형으로 평가한다. 평가 결과는 익명으로 해당 교사에게만 전달돼 열람이 가능하다. 점수가 지나치게 낮은 교사의 경우 교장·교감 면담을 하거나 최소 60시간에서 최대 6개월 이상 '능력향상연수' 과정에 참여해야만 한다. 하지만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연수에 참여한 교원은 0명이다. 2019~2020년만해도 160~190여명의 교원이 연수를 받았는데, 연수자 선정 권한이 지난해부터 시·도 교육청 자율로 바뀌면서 교원평가로 일종의 '페널티'를 받는 교사는 없어졌다.

"사실상 인기투표…정신과 치료받는 교사들도 다수"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공론화 트위터 계정에서 공개된 교원능력개발평가 성희롱 피해 사례. 사진 트위터 캡처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공론화 트위터 계정에서 공개된 교원능력개발평가 성희롱 피해 사례. 사진 트위터 캡처

일선 교사들은 교원평가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회의감을 느껴왔다고 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이번에도 평가 결과가 나왔지만 서술형이고 객관식이고 아예 확인을 하지 않았다”며 “봐봤자 속만 상하고, 학생들에 대해 안 좋은 생각만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교사 C씨도 “사실상 인기투표에 가깝기 때문에 학생들 스스로 좀 재미없고 귀찮은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담합’을 해서 해당 교사의 점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며 “평가의 취지는 알겠지만 지금과 같은 평가 방식이 교사에게 도움이 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교원평가 내용을 보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들도 상당수”라며 “평가 기간에는 특히 더 학생들 눈치를 보며 잘못이 있어도 지적하지 못하겠다는 교사들도 있다”고 했다. 평가참여율도 점점 떨어져 지난해 학생 참여율은 52.3%에 불과했다. 2018년(75.8%)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줄어든 수치다.

평가를 해야 하는 학부모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자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만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이라지만 개인 식별번호를 입력해야만 평가가 이뤄지는 만큼, ‘혹시 우리 아이가 특정되지는 않을까’ 우려해 솔직하게 적지 못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사진 학부모 온라인 카페 캡쳐

사진 학부모 온라인 카페 캡쳐

"평가 자체는 반대 안 해…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 있어야"

부작용이 있지만 교원평가 도입 취지 자체를 동의한다는 교사도 적지 않다.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 D씨는 “교사 중에서도 정말 이상한 사람이 있고, 평가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백번 공감한다”며 “교사에게 받을 불이익을 우려해 익명으로 한 것이라면, 차라리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대상으로 11월이 아니라 교육과정이 모두 마무리 된 12월에 실명으로 평가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전문가들은 교원평가 ‘폐지’보다 ‘개선’에 무게를 뒀다. 이영희 단국대 교수는 “교사의 수업을 받는 학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교사가 알아야 하는데 그 역할을 교원평가가 담당해줘야 하는 것”이라며 “평가를 받아야 문제적 교사는 걸러지고 교사 스스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동엽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정책연구실장도 지난 5월 교원평가제도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참관수업을 늘리는 등 학생과 학부모, 교사 간 주기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개선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평가 체제 안에 포함돼야 한다”며 “또 주기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평가에 참여시켜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개선 방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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