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제2의 손흥민·김연아·박태환 배출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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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황수연 학교체육진흥연구회 회장·전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

황수연 학교체육진흥연구회 회장·전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

스포츠는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세계 랭킹 9위 포르투갈 팀을 2대1로 꺾고 2010년 이후 12년 만에 16강에 진출했다. 지난 6일 브라질에 패배해 첫 원정 8강은 무산됐지만, 이번 월드컵 대표팀이 안겨준 감동의 여운은 여전히 크다.

사실 국내 축구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초·중·고 등록 선수가 745개 팀, 1만9730명뿐이다. 우리는 초등부 323팀, 중등부 235팀, 고등부 187팀뿐인데 이웃 나라 중국은 2016년부터 초·중·고 5000개 축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25년까지 5만 개의 축구 인재 양성학교를 운영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축구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경기 단체의 초·중·고 선수는 8만9739명으로 체육 인구 저변이 취약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보여준 스포츠 경기력은 기적과도 같다. 이런 기적은 스포츠 영재 육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학교체육이 일궈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72년 시작돼 50년간 우리나라 꿈나무를 길러 내고 있는 전국소년체전이 그 바탕이 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오늘날 스포츠 경기는 국민 전체의 화합과 애국심 함양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스포츠의 가치가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체육의 뿌리인 학교체육을 진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엘리트 체육이든 사회체육이든 다 함께 발전하려면 국민체육의 근간인 학교체육부터 활성화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빙상계 ‘미투 운동’에서 촉발돼 체육계를 혁신하기 위한 대책으로 지난 정부가 발표한 스포츠 혁신 방안이 체육 발전을 저해하는 졸속대책이라고 많은 체육인과 국민이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체육계의 의견과 다르고 선수들을 육성하는 초·중·고·대학의 현장과 유리됐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전국소년체전 폐지, 합숙 훈련 폐지, 학교운동부 폐지, 국가대표선수촌 합숙소 폐지 등 체육 영재 양성 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대책이다. 국가대표선수촌이나 각급 학교의 합숙 훈련이 폐지되면 엘리트 체육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 체육의 단점은 보완하되 순기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은 아예 엘리트 스포츠를 폐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도 엘리트 체육을 포기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는 국민통합에 크게 기여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고, 국민 사기 앙양과 애국심 함양 등 사회 분위기를 고양해주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스포츠 활동은 더욱 중시하고 강화해야 한다.

스포츠 선진국인 영국·일본 등 전 세계가 엘리트 체육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이 시기에 한국이 세계 스포츠 추세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엘리트 체육과 국위 선양을 포기한다면 국제 경기 국가 대항전과 올림픽 국가대표 등이 갖는 자부심과 태극마크의 의미는 어디로 가겠는가.

물론 어떤 메달도 인권보다 가치가 높을 수는 없으며 국위 선양이 선수 개인의 행복보다 앞설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희망을 고취하는 정책이 이대로 꺾여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엘리트 스포츠의 가치를 너무 쉽게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선전했다. 100명의 외교관보다 더 큰 국위 선양을 하면서 전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엘리트 스포츠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제2의 손흥민은 물론 이강인·황희찬·조규성·백승호와 김연아·박태환·추신수·류현진 등 세계 정상급 엘리트 선수를 계속 배출해 대한민국의 우수성과 저력을 세계에 알리면 좋겠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월드컵 우승에 도전하는 꿈을 꿔본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세계적 추세에 맞춰 엘리트 체육을 더욱 집중적으로 육성해 대한민국 축구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수연 학교체육진흥연구회 회장·전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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