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 발명왕으로 선정된 소감은.
"지난 1년간 고생한 보람이 있어 기쁘다. 다만 언론에 많이 소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학계의 관심은 로봇이 아니다. 스티키봇의 발에 붙은 접착 패드다. 이 패드는 한쪽으로 힘을 가하면 붙는다. 그러나 다른 방향에서 당기면 쉽게 떨어진다. 유리벽과 직각, 즉 수평으로 밀면 잘 달라붙지만 조금이라도 아래쪽으로 당기면 쉽게 분리되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실용화된 것으로 이를 '방향성 접착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반면 일반적인 접착테이프는 잘 붙긴 해도 그만큼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래서는 유리벽을 올라갈 수 없다."
-어떻게 도마뱀 로봇을 개발하게 됐나.
"내가 속한 미 스탠퍼드대 '생체모방 조정연구실(BDML)'은 벽을 오르는 로봇을 개발해 왔다. 표면이 거친 경우는 성공했는데 매끄러운 곳을 오르는 로봇은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유리창도 오를 수 있는 가벼운 로봇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한 방향으로는 잘 붙지만 다른 쪽에서 당기면 쉽게 떨어지는 화합물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은 도마뱀의 일종인 게이코(도마뱀붙이)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개인적으론 2년 전쯤 게이코 발바닥 구조에 대해 루이스앤클라크대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컬러 오텀 교수가 쓴 논문을 읽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뒤 '끈적끈적함'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도마뱀을 보면서 연구했나.
"도마뱀을 직접 관찰한 것은 서너 번 정도다. 그러나 도마뱀이 벽을 오르는 비디오테이프는 30번 정도 봤을 것이다. 도마뱀 발바닥 연구와 관련해 많은 도움을 준 생물학자 로버트 풀 교수가 있는 UC버클리대를 찾아가 봤다. 풀 교수는 생물학자이면서도 기계공학에 많은 식견이 있다."
-스티키봇은 시멘트 벽 등도 오를 수 있나.
"지금은 안 된다. 그러나 시멘트 벽도 오르는 게이코의 발바닥은 접착 패드와는 비할 수 없이 세밀하다. 그리고 발바닥 조직에 이물질이 끼지 않는다. 그게 시멘트 벽을 오를 수 있는 비결이다. 그 때문에 나노기술을 응용, 더 섬세한 접착 패드를 개발하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힘들었던 순간은.
"접착 패드에는 특수 플라스틱 '폴리머(polymer)'로 만든 섬모를 붙여야 한다. 고무 같은 것이다. 어떻게 만들지 개념은 있었으나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100번 이상 다시 만들어야 했다."
-스티키봇과 접착 패드는 어떻게 응용될 수 있나.
"개발비를 낸 미 국방부 쪽에선 스파이 로봇으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로봇이 그 자체로 똑똑해지려면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로봇들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접착 패드만으로도 훌륭히 활용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예컨대 유리창에 쉽게 붙이고 뗄 수 있는 패드도 나올 수 있다. 또 중력이 없는 대기권 밖에서 우주선 위를 걸어다닐 수 있는 특수 신발도 나올 수 있다."
-과거부터 발명에 흥미가 있었나.
"어릴 적부터 만드는 것에 몰입했었다. 무선조종 자동차, 플라스틱 모델 제작 등이 취미였다. 또 늘 과학상자 경연대회, 고무동력기 대회 등의 학교 대표로 나갔었다. 과학자인 형도 어릴 적부터 발명과 관련된 많은 영감을 줬다."
-어떤 면이 이런 기발한 발명을 가능토록 했다고 보나.
"어릴 적부터 늘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수학도 공식을 대입해 푸는 걸 싫어했다. 새로운 방법으로 풀려고 했다. 그래서 고생도 많이 했다. 특히 궁금한 게 많아 모든 것에 대해 "왜 이럴까" 생각했다. 수학 문제를 접하면 "왜 이런 걸 냈을까"부터 고민했을 정도다. 그러니 남들보다 공부에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면이 미국에 와 공부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한국 학교에선 어떻게 지냈나.
"중.고생 시절엔 반에서 3~4등 정도 했다. 대학 땐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냈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졸업 직전이었다. 어느 강좌를 들었는데 이 과목에서 로봇을 제작, 다른 학생의 것과 싸워 먼저 깃발을 쓰러뜨리면 이기는 대회를 했었다. 그 대회에선 내가 만든 로봇이 마지막에 극적으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내 작업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돼 있었는데, 상당히 잘해 최고점을 받았다. 그런데 학점은 A가 아닌 B였다. 중간에 다른 학생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그 내용을 외워 쓰는 쪽지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최고의 로봇을 제작하고도 암기를 못 한다는 이유로 최고점을 못 받았다는 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게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취미는.
"테니스.골프.인라인스케이트 등 운동을 좋아하고 최근엔 성악을 배워 즐기고 있다. 특히 미국에 와서 많이 늘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던데.
"내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어렵게 키웠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보상금만으로 생활했지만 집안의 모든 일을 혼자서 결정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겐 아마 자식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우리의 삶에 간섭하거나 자신의 꿈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저 "뭐든 너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만 했다. 그분이라고 왜 자식에 대한 바람이 없겠는가. 그런 면에서 우리 어머니를 가장 존경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그러나 궁극적으론 실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는 걸 만들고 싶다. 예컨대 하늘을 나는 로봇을 제작해 볼 생각이다. 현재 관측용 비행기나 헬리콥터는 목표 지점에 가서도 계속 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뭇가지에 앉거나 벽에 붙어 있다면 훨씬 오랫동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 다리에 바퀴가 달린 로봇에도 흥미가 있다. 이 로봇은 길이 좋으면 바퀴로 달리다 험한 곳에서는 다리로 걸어다닐 수 있을 것이다."
-발명가나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해결 방식을 가르쳐 주고 그대로 풀게 하는 현행 교육은 문제가 있다. 책에 나온 해결 방법과 답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80% 이상은 다른 사람들이 벌써 해본 것들로 기존의 해결 방식으로 이뤄지는 일들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새로운 일들이므로 역시 새 방법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서 '정답은 없고 방향은 있다'는 게 내 좌우명이다. 늘 궁금해하고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정호 뉴욕 특파원
스티키봇은 … 도마뱀 모방한 '초강력 본드 발'
'스티키봇(Stickybot)'은 유리벽을 수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도마뱀 로봇이다. '들러붙다(sticky)'와 '로봇(robot)'의 합성어다. 강력한 접착력과 손쉽게 떨어지는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도마뱀 발바닥을 모방해 '초강력 본드 발'을 만든 것이다.
김상배씨는 벽을 올라가는 도마뱀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었다. 도마뱀의 발바닥은 미세한 섬유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발가락의 털 수백만 개는 도마뱀이 벽에 한번 달라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는 사뿐하게 움직이도록 해준다. 이 같은 원리를 스티키봇에 적용했다.
스티키봇의 4개 발바닥에 끝이 가느다란 합성섬유 수백 개를 심었다. 털 모양 섬모의 끝부분은 한 방향만을 보게끔 경사지게 처리했다. 섬모의 끝부분이 닿은 상태에서 경사면 방향으로 잡아당기면 마찰력이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에 유리벽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다.
대신 반대편으로 잡아당기면 손쉽게 떼어낼 수 있는 원리다. 따라서 유리벽에서 스티키봇이 몸을 위로 당기면 발바닥의 털이 단단히 달라붙고 발을 뗄 때에는 부드럽게 떨어진다. 유리.타일.화이트보드 등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현재 1초에 4㎝를 갈 수 있다. 스티키봇의 발에 붙은 접착 패드를 상품화하면 획기적인 발명품이 나올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국방부는 전투용이나 구조용 로봇 장갑.신발을 개발하는 데 이를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김상배씨는…
1975년생으로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마치고 2002년 도미, 미국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동물의 움직임을 응용한 로봇 제작이 주 관심사다. 지난해 개발한 재난구조 로봇 등 네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대학 졸업 뒤 한때 '솔루셔닉스'라는 3차원 광학스캐너 회사를 공동 설립, 기계를 개발하기도 했다. 고 김원국 한양대 법정대 교수의 두 아들 중 막내로 형 상필씨도 미국 퍼듀대에서 산업공학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