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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새 국방백서의 ‘북한 정권은 적’ 규정, 만시지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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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 정부 이후 6년 만에 적 개념 수정 예정

무너진 안보 의식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윤석열 정부 들어 다음 달 처음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2016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들어갈 것이란 소식이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하는 와중에도 평화 지상주의가 판치며 우리 국민의 안보 의식을 혼란스럽게 했던 사실을 돌아보면 지극히 당연한 조치다.

정부 소식통은 어제 “새 정부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대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명시하는 표현이 국방백서 초안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국방백서 등에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명시했다.

2년마다 발간되는 국방백서는 그동안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었다.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인 주적 또는 적 개념은 분명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마땅하지만, 정권의 색깔에 따라 주적 개념은 오락가락했다. 주적 개념은 1994년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폭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명기됐고, 2000년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김대중 정부 들어 남북 화해 국면이 조성되자 2004년 국방백서는 ‘직접적 군사위협’이란 표현으로 대체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발간된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란 표현이 다시 등장했고, 2016년 박근혜 정부까지 유지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2018년과 2020년 국방백서에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표현을 삭제했다. ‘주권·국토·국민·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문구로 대체했다. 이 때문에 적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5년 가까이 우리 군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안보 의식이 통째로 흔들리는 혼란기를 경험했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마친 북한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위장 평화 공세에 나섰다. 문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맹신하고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치중했었다.

거짓 평화에 몰두하는 와중에 안보 의식은 실종되고 말았다. 문 정부가 평화 지상주의에 취한 나머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 역량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필수 과목에서 ‘6·25전쟁사’를 빼기도 했다.

급기야 민주노총은 공공연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정치 투쟁을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다. 안보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적의 개념을 분명히 한 국방백서 발간을 계기로 윤 정부는 안보 전략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정상화하고, 안보 경각심을 되살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