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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의 3574일…조선 근대 열어젖힌 모험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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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새남터기념성당에서 만난 박흥식 감독은 “답답할 땐 절두산 성지를 찾아 김대건 신부(동상)의 손을 잡고 온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새남터기념성당에서 만난 박흥식 감독은 “답답할 땐 절두산 성지를 찾아 김대건 신부(동상)의 손을 잡고 온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종교영화를 넘어 조선 근대를 열어젖힌 한 사람의 모험담이죠. 『정감록』의 ‘해도진인(海島眞人)’이 딱 김대건 신부란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 첫 가톨릭 사제 김대건(1821~ 1846) 전기 영화 ‘탄생’을 연출한 박흥식(60) 감독은 ‘청년 김대건’을 근대화의 선각자로 해석했다. ‘탄생’은 김 신부가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에 선정된 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다. 김 신부와 근대화 선각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상영시간 150분 속에 진솔하고 꼼꼼하게 담아냈다.

시기적으론 김 신부가 1836년 15세에 최방제·최양업과 조선교구 신학생에 발탁돼 마카오·중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해, 이듬해 스물다섯에 새남터에서 순교하기까지 3574일의 여정을 담았다. 배우 윤시윤이 김 신부를 연기했다. 총제작비는 150억원으로 알려졌다.

개봉 당일(11월 30일) 서울 용산구 새남터 기념성당에서 만난 박 감독은 조선 시대 예언서 『정감록』이 밝힌,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러 바다의 섬에서 온 참사람(진인)을 사제 서품 후 바닷길로 귀국한 김대건 신부에 빗댔다. 김 신부는 불어·라틴어가 유창했고, 간단한 영어도 구사해 통역가로도 활동했다. 옥살이 중에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 개략을 편술한다.

박 감독은 김 신부가 홍콩 초대총독을 지낸 영국 해군 장교 찰스 엘리엇과 만난 정황도 찾아냈다. “그간 천주교 내 한국어 번역판 기록에선 ‘샤를 엘리오’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번역돼 있어 몰랐는데, 시기를 따져보니 아편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찰스 엘리엇이었어요.”

배우 윤시윤(오른쪽)이 주연을 맡아 청년 김대건의 마지막 10년을 연기했다. [사진 민영화사]

배우 윤시윤(오른쪽)이 주연을 맡아 청년 김대건의 마지막 10년을 연기했다. [사진 민영화사]

영화에는 당시 영국 군함이 조선 해안선을 샅샅이 훑고 간 역사와 더불어, 김 신부가 영국대사를 만나 작지만 강한 조선을 얕볼 수 없게 만든 대화 장면도 있다. 김 신부 순교 150주년 당시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낸 자료 등 각종 관련 자료에, 각본을 겸한 박 감독의 시대적 해석과 상상을 보탰다.

박 감독은 김 신부가 생존했다면 조선이 더 빨리 발전했을 것이라 거듭 강조했다. “우리나라 역사학과에서 근대화 기점을 보통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보거든요. 그런데 서양에선 데카르트 말처럼 ‘스스로 생각하면서’ 근대가 열렸다고도 합니다. 조선이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게 정조 말이죠. 조선의 근대는 서학과 동학의 평등개념에서 출발했다고 봐요.” 신자가 아닌 박 감독이 초기 천주교 사제에 주목했던 이유다.

‘탄생’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유년기를 담은 영화 ‘저 산 너머’(2020)를 본 유흥식 추기경이, 이 작품에 전액을 투자한 건축가 남상원 회장에게 김대건 신부 영화 제작을 제안했고, 조선 시대 가톨릭 사제에 관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던 박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2년 전 시동을 걸었다. 영화 ‘역전의 명수’(2005)로 데뷔해 ‘경의선’(2007), ‘두 번째 스물’(2016)을 만든 박 감독에겐 6년 만의 신작이다.

‘탄생’은 지난달 16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첫 공개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인은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민족이다. 화장을 많이 한 미소가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태어난 미소다. 비극적인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근면한 한국인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항상 웃으면서 그 일을 했다”며 영화 흥행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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