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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시위대 “바나나껍질 새우이끼” 알고보니 ‘시진핑 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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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바나나 껍질 새우 이끼’ ‘프리드만 방정식’….

지난달 26~28일 벌어진 중국 ‘백지혁명(白紙革命·#A4Revolution)’ 시위에 등장한 문구들이다. 중국 시민들이 당국의 검열과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고안한 ‘암호 구호’다.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이 전혀 다른 어휘들에 반정부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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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껍질은 중국어로 샹자오피(香蕉皮)다. 이 단어의 중국 한어병음 표기 초성 이니셜은 ‘시진핑(習近平)’과 같다. 새우 이끼는 중국어로 샤타이(虾苔)인데, 퇴진이나 하야라는 뜻의 샤타이(下台)와 발음이 같다. 중국인들에겐 ‘시진핑 하야’로 읽히는 문구다.

시 주석 모교인 칭화대 학생들이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하는 ‘프리드만 방정식’이 적힌 A4용지를 들고 시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프리드만의 발음은 ‘자유로운 사람’을 뜻하는 ‘프리드맨(Freed man)’과 비슷하다.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에서 한 여성이 알파카 세 마리와 함께 걸은 것도 의미심장하게 해석됐다. 알파카의 중국어 단어인 차오니마(草泥馬)는 ‘엄마를 엿먹이라(肏你媽)’는 모욕적인 뜻을 가진 말과 발음이 같다.

통제와 검열이 일상화된 중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 중심의 ‘백지 시위’가 언어유희와 풍자로 잠재된 변화 욕구를 분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길거리 시위에 나설 경우 구금과 체포를 각오해야 하는 환경에서 중국 시민들이 창의적인 우회로 찾기에 성공한 셈이다.

시위대는 이번 시위에서 중국 국가 ‘의용군 행진곡’을 부르며 공안(경찰)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아”라는 구절이 핵심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최근 칼럼에서 “국가를 부르는 젊은이들을 체포하는 것은 어색하겠지만, 노래 가사에 담긴 시위대의 의미를 아는 시 주석은 참을 수 없을 것”이라며 “천안문 사태를 취재한 한 베테랑 기자는 ‘중국에서 3~4명이 모여 중국 국가를 부르면 체포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반어법으로 단속에 맞서기도 했다. 경찰이 ‘봉쇄 철회’를 외치지 말라고 하자, “봉쇄를 더 해달라” “코로나19 검사를 더 많이 하고 싶다!”고 외치는 식이다. 온라인에선 “맞다 맞다 맞다” “좋다 좋다 좋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등 긍정적인 중국어 표현을 수십 차례 반복적으로 적어 중국 당국의 온라인 검열을 피한 반어법 시위가 유행했다.

한편 지난달 30일 사망한 장쩌민(江澤民·1926~2022) 전 국가주석의 국장(國葬)이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됐다. 추도대회에는 시 주석과 전·현직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했다. 추도대회가 시작되자 14억 중국인은 3분간 묵념했다. 시 주석은 추도사에서 “사람은 고귀한 머리를 숙여선 안 된다”는 장 전 주석의 어록을 소환했다. 시 주석은 “과감하게 투쟁하고, 과감하게 승리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이 지지 않는 강대한 정신 역량”이라며 “모든 적을 압도하는 영웅적인 기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퇴진 구호까지 등장한 ‘백지 시위’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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