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신청한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의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비슷한 혐의를 받는 다른 피의자의 신병확보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향후 구속 수사는 물론이고 범죄 입증을 위해서도 상당한 증거와 법리 보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 전 서장을 핵심 피의자로 올려놓고 지난 1일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를 적용해 다른 경찰 피의자 3명과 함께 구속영장을 가장 먼저 신청했다. 입건 당시엔 직무유기 혐의도 있었지만 공무원의 직무유기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법원의 경향을 고려해 영장 신청 단계에선 배제했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이 사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참사를 인지하고도 적절한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본다.
법원 “피의자 방어권 보장해야”
그러나 김유미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5일 밤 이 전 서장과 사고 발생 초기 현장 책임자였던 송병주 용산서 112상황실장(경정)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증거 인멸과 도망할 우려에 대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사유를 밝혔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은 주로 피의자가 주장하는 논리가 전혀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고 볼 때 쓰는 표현”이라며 “상대방이 충분히 반박할 땐 혐의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업무상 과실이 되려면 어떤 의무가 인정이 돼야하고, 그러한 의무를 본인이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게을리했을 때 죄가 성립한다”며 “과실이 있는지 없는지, 그 과실과 사망이라는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날 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한 한 변호인은 “과연 위험성이 있다고 해서 사망 결과가 바로 예견되는것인지, 사고 위험성을 인지했어야 했는데 인지 못 한걸 과실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항변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특수본, 이임재 영장 재신청 안할 듯
특수본은 6일 오전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기각 사유를 분석한 뒤 재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관계자는 “명시적으로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는다고 밝히지는 않은 만큼 어느 정도 혐의는 받아들여졌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장 다른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 이 전 서장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 재신청하기는 어렵다는 내부 기류가 읽힌다. 사실상 참사 당시 부실대응과 관련해 핵심 피의자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강 수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현장 책임자에게서 뚜렷하게 입증되지 않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윗선’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따져 묻기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특수본은 이날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로 입건된 김 청장을 지난 2일에 이어 나흘 만에 재소환했다.
경찰측 주요 피의자 구속을 시작으로 소방과 구청 관계자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려는 수순도 주춤하는 분위기다. 수사 초반 책임론이 가장 강하게 재기됐던 이 전 서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마당에 같은 혐의로 입건된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구속을 장담하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본은 6일 오후 “현재 타기관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과 관련하여 보강수사를 진행 중이며, 전일 알려드린 일정보다 다소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6일 기준 특수본에 입건된 21명 가운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된 피의자는 16명에 이른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은 큰 사고가 터지면 여론에 따라 마구잡이로 구속하는 행태에 대해 법적인 관점에서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몇백명이 죽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구속까지 하는 것은 너무 좀 과하다는 전체적인 배경에서 기각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특수본 안팎에서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라 지자체와 소방이 재난을 대비하고 구호할 1차적 책임을 지는 만큼 경찰 책임자인 이 전 서장과는 다른 법원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