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걸로 떴는데? ‘일본풍’ 지우기에 나선 중국 업체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중국 업체들이 ‘일본풍’ 색채 없애기에 돌입했다.  

당초 ‘일본풍 마케팅’으로 승부했던 브랜드가 이제는 노를 정반대로 젓고 있다. ‘일본 제품은 곧 고급’이라는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데다, 최근 일본 관련 부정적인 이슈가 잇따라 터지면서 ‘일본 지우기’ 작업에 더욱 속도를 올리는 분위기다.

나이쉐더차의 간판이 달라진 것을 의아해하는 중국 네티즌들 [사진 샤오훙수]

나이쉐더차의 간판이 달라진 것을 의아해하는 중국 네티즌들 [사진 샤오훙수]

최근 중국 밀크티 브랜드 나이쉐더차(奈雪的茶)의 간판이 달라졌다. 기존에 사용하던 ‘奈雪の茶’에서 ‘奈雪的茶’로 바뀌었다. 이름은 그대로지만 표기가 일본식에서 중국식으로 달라진 것이다. 영문 표기 역시 ‘NAYUKI’에서 ‘NAIXUE’로 바꿨다. 일각에서는 나이쉐더차의 짝퉁 매장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나이쉐더차가 “브랜드 업그레이드의 일환으로 12월부터 로고를 변경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나이쉐더차는 창업 당시 일본 느낌을 내세운 밀크티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 마치 일본 브랜드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의도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일본 제품이 고급으로 통하던 시절, 나이쉐더차는 고급 밀크티 브랜드로 자리 잡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본 딱지’는 양날의 검이었다. 창립자 펑신(彭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중국 차 문화의 매력을 알린다”는 창립 취지를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일본 간판을 달고 애국주의를 논한다”는 비판을 지속해서 받아왔다.

위안치썬린 음료에 표기된 일본식 한자(?) [사진 즈후]

위안치썬린 음료에 표기된 일본식 한자(?) [사진 즈후]

이에 앞서 역시 일본풍 마케팅을 내세웠던 위안치썬린(元气森林)과 미니소(名创优品)도 최근 ‘일본 딱지’를 뗐다. 위안치썬린은 로고에 있는 ‘기운기(氣)’의 한자 표기를 일본식 한자(気)에서 중국식 간체자(气)로 바꿔 달았다. 미니소는 기존에 ‘일본식 디자인 브랜드’를 표방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2023년 3월까지 브랜드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한때 중국 업체들 사이에서 일본풍 마케팅은 유행처럼 번졌다. 2013년 이후, 미니소를 필두로 다양한 생활 소비재 브랜드에서 일본 색채를 고의적으로 녹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브랜드로 오해하는 소비자가 많은 것은 당연했다.

미니소 매장 [사진 正解局]

미니소 매장 [사진 正解局]

미니소는 일본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했을 뿐만 아니라, 로고에도 일본어를 병기했다. 유니클로 로고와 비슷한 모양과 배치 역시 의도적이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음료 브랜드 위안치썬린도 일본풍 마케팅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 한자(気) 표기를 로고에 넣고, 요거트 음료에도 역시 ‘北海道3.1’라고 일본을 연상시키는 표기를 집어넣었다.

이처럼 중국 업체들 사이에서 일본풍은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마케팅은 주효했다. 미니소와 나이쉐더차는 IPO에 성공했고, 위안치썬린은 3년 사이 월매출이 0(제로)에서 수억 위안으로 치솟았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 일본 브랜드가 가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증시 상장에 성공한 나이쉐더차 [사진 나이쉐더차 위챗 공식계정]

홍콩 증시 상장에 성공한 나이쉐더차 [사진 나이쉐더차 위챗 공식계정]

그러나 최근 불미스런 이슈가 터지면서 ‘일본풍 대세’의 흐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8월, 미니소 스페인 인스타그램에 중국 전통복장 치파오를 입은 6명의 디즈니 공주 인형 사진이 게재되었다. 문제는 그 아래 첨부된 설명이었다. “공주들이 일본 ‘게이샤’ 옷을 입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발견한 중국 네티즌은 크게 분노했고, 결국 미니소는 대대적인 사과를 하고 운영 방침 전환을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난징(南京)의 밀크티 브랜드 푸젠타오산(伏见桃山, 일본명: 푸시미 모모야마)도 이와 비슷한 문제로 이름을 바꿨다. 일본어로 ‘伏见桃山陵’가 일본 메이지 천황릉이라는 게 밝혀져서다. 당초 ‘푸시미 모모야마’라는 일본식 표기를 병기했던 푸젠타오산은 이 일로 브랜드명을 푸샤오타오(伏小桃)로 바꿨다.

푸젠타오산 밀크티 [사진 샤오샹천바오]

푸젠타오산 밀크티 [사진 샤오샹천바오]

중국 내 애국주의 열풍도 일본풍 지우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토종 브랜드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굳이 일본 색채를 강조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때 시장에서 먹혔던 일본풍은 이제 논란만 키우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이제 중국풍을 강조하는 것이 이득인 시대가 온 것이다. 더군다나 식음료 및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업계의 경쟁이 과열됨에 따라 소비자 반응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어진 것도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일본풍으로 성공한 업체들이 창립 초기와 완전 다른 방향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방책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일본 탈을 쓰고 중국 제품을 판다’는 부정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또 애국주의 열풍에 가세해 새로운 성장 곡선에 안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을 내세워’ 성공한 중국 업체들은 결국 그때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다시 ‘일본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글 홍성현 차이나랩 객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