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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삼성 첫 여성 사장 배출, 딸들에게 희망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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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5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관계자들이 드나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사장 승진 7명, 위촉업무 변경 2명 등 총 9명 규모의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뉴스1]

5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관계자들이 드나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사장 승진 7명, 위촉업무 변경 2명 등 총 9명 규모의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뉴스1]

“여성 인재에 성장과 도전의 비전을 제시”

여성 사장 승진이 뉴스 안 되는 사회 돼야

삼성에서 오너가 출신이 아닌 첫 여성 사장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어제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면서,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이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로레알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로, 2007년 입사 후 갤럭시 마케팅 성공 스토리를 만든 인물이다. 2012년 부사장으로 승진해 그동안 삼성의 첫 전문경영인 여성 사장 후보로 거론돼 왔다. 삼성전자는 이날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사장 배출”이라고 명시하면서 “역량과 성과가 있는 여성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여성 인재들에게 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한국 대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에서 처음으로 여성 사장이 나왔다는 건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한국 사회가 축하할 일이며, 동시에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 땅에선 여전히 ‘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 속 유리천장이 두껍다. 21세기 한국 여성들은 남자와 똑같이 배우고 자라지만, 사회에 들어서면 냉혹한 남녀 차별을 경험해야 한다. 직장을 잡는 데 남자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결혼 후엔 임신·출산과 육아의 짐을 져야 한다. 이 와중에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다. 어느덧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는 시대가 보장됐지만,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 직원은 아직도 ‘용기 있는 자’로 치부되는 직장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의 남녀 차별은 숫자가 말해 준다.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여성 고용률은 51.2%다. 남성 고용률(70%)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어렵게 회사에 들어가도 대접이 다르다. 지난 4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1년 기준 OECD 국가들의 성별 임금 격차’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OECD 39개국 중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이스라엘로 24.3%를 기록했으며, 3위는 일본(22.1%), 4위는 라트비아(19.8%)였다. 더군다나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래 26년째 한 번도 깨지지 않은 불명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는 직무별 남녀 성별 임금 격차도 일본 다음으로 가장 심한 나라다.

한국 여성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 외교관 후보자(옛 외무고시) 여성 합격률은 60%대, 5급 공무원(옛 행정고시) 합격률도 40%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대기업 공채에서 남성 비율을 고려하지 않으면 여성 합격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건 알려진 비밀이다. ‘딸’들이 성장해 가면서 차별로 좌절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배려해야 마땅하다. 합계출산율 0.81이라는 세계 최저 출산율 기록으로 ‘소멸국가’가 되는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 이영희 삼성전자 사장의 영전과 같은 얘기가 더는 뉴스가 되지 않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