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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빌딩' 늘어가는 뉴욕…빌딩 부자들도 한숨 터진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자리 잡은 오피스 타워.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으로 뉴욕의 오피스 빌딩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자리 잡은 오피스 타워.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으로 뉴욕의 오피스 빌딩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건물 가격이 줄줄이 하락하는 가운데 최첨단 오피스 타워를 구축한 미국 뉴욕의 빌딩들이 높은 공실률로 인해 '좀비' 건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하이브리드(재택근무와 회사 출근의 혼용)' 근무 방식과 중국 투자자 이탈에 이어 최근 미 연방준비위원회의 급격한 금리 인상, IT 업체들의 감원 바람 등으로 뉴욕 중심지 맨해튼의 건물주와 임대업자들이 일격을 맞았다고 FT는 전했다.

오피스 보안기업 캐슬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뉴욕의 상업용 사무실 점유율은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또 컬럼비아대와 뉴욕대 교수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사무실 빌딩의 가치는 2029년까지 약 25%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뉴욕에 기반을 둔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서비스 쿠쉬먼&웨이크필드의 더그 하몬 회장은 "백기 투항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오피스 빌딩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제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경우 건물 소유주들이 대출 기관에 건물을 넘기는 사례가 늘 것이라는 관측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암울한 전망 속에 지난주 새로운 징조가 나타났다. 지난 1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은 1250억 달러(약 161조원)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펀드에 대한 환매 요청이 쇄도하자 이를 제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저금리 기조로 인해 거의 공짜로 건물을 임대하고 수익을 내던 시장이 침체할 것으로 예상되자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급증한 데 따른 조치다.

또 지난달 메타 플랫폼(페이스북)은 비용 절감을 위해 뉴욕 허드슨 야드의 사무실 공간을 약 2만3000㎡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1만1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 나왔다.

앞서 지난달 17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글로벌 회계법인 KPMG는 내년 허드슨 야드의 초고층 빌딩으로 옮기기로 하면서 사무실 공간을 40% 줄이기로 했다. KPMG 대변인은 "재택과 현장, 하이브리드 등을 잘 섞은 미래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는 직원과 리더 간의 연결을 향상시키고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근무는 직원들이 주 3~4일 출근한다는 점에서 당장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추세는 짙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특히 경기 침체가 예견된 상황에선 비용 절감을 위한 우선순위가 된다. 밴 니워버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뉴욕에서 직원 한 명당 들어가는 공간 비용은 연간 약 1만6000달러(약 2000만원)라며 "(경기가 나빠질수록) 기업은 그 비용을 아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허드슨 야드의 새 빌딩은 수요가 있는 편이다. 문제는 지어진 지 오래된 'B급', 'C급' 빌딩이다. 뉴욕의 사무실 임대는 7~10년 단위의 장기 계약이라 당장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향후 금리가 더 오르고 공실이 급증할 경우 리모델링이 필요한 노후 빌딩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부동산컨설팅업체 와튼프라퍼티의 루스 콜프-하버 대표는 "뉴욕 사무실 건물의 약 40%가 지금 중대한 결정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서비스업체 JLL의 밥 크나칼 뉴욕 투자·영업 대표는 맨해튼 등에서 '좀비 오피스' 건물이 점점 늘고 있다며 전형적인 좀비는 몇 세대 전부터 여러 사람에게 꼬박꼬박 수입을 가져다준 공동 소유 건물이라고 했다. 크나칼 대표는 "오래된 빌딩은 새로운 로비와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건물주에게 막대한 보수 비용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들은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업용 오피스 부문의 침체는 뉴욕시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6월 회계연도 기준) 뉴욕시가 오피스 타워에서 거둬들인 세수는 68억 달러(약 8조8000억원)로 직전 연도(75억 달러)보다 9.3% 감소했다. 상업용 빌딩에서 나오는 세수는 시 전체 세수의 9%를 차지한다. 또 지난해 뉴욕 소재 상업용 오피스의 가치는 286억 달러(약 37조원) 감소했는데, 이는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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