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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59화. 도원향

중앙일보

입력

돈·명예 다 버릴 수 있다,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오랜 옛날,『삼국지』의 영웅 이야기가 막을 내리고 사마의(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명장‧정치가)의 후손이 세운 진(晉)나라 시절 이야기입니다. 무릉이라는 곳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그가 물고기를 잡으러 강 위쪽으로 올라가던 중, 복숭아 꽃잎이 물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숭아꽃이 피는 것은 보통 따뜻한 봄날인데, 주변은 이미 쌀쌀해지고 있던 시기였죠. 이상하게 여긴 어부는 강을 따라 더 위로 올라가 복숭아꽃 가득한 계곡을 발견합니다. 신기한 마음에 둘러보던 어부는 계곡 안쪽에서 동굴을 발견합니다. 동굴에서는 뭔가 따스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죠. 동굴로 들어간 어부는 아름다운 마을에 다다라요.

바깥과 달리 화창한 봄 날씨의 마을은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부를 손님으로 맞이하며 환대했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부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그들이 춘추전국시대의 진(秦)나라 때 이곳에 들어와 살아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진나라는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했던 진시황제가 다스렸던 나라로, 이는 어부의 시대보다 약 100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1000년 이상 나이를 먹은 사람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들 자신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고 하니까요.

어부는 그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좋은 대접을 받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어부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 신비한 땅이 부러웠던 어부는 다음에도 또 오고 싶어서 돌아오는 길을 표시해 두었죠. 그리고 관아를 찾아가 이 이야기를 관리에게 전했습니다. 관리는 그 땅에 관심을 가지고 어부에게 부하와 함께 찾아보도록 했죠. 하지만, 어째서인지 표시가 모두 사라져서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항상 봄이 계속되고, 복숭아 향기가 가득한 낙원. 사람들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이곳을 도원향(桃源鄕)이라고 불렀죠.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의 산수화 ‘몽유도원도’에선 도원향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왼편의 현실 세계와 오른편의 도원 세계가 공존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걸작이다.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의 산수화 ‘몽유도원도’에선 도원향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으며, 왼편의 현실 세계와 오른편의 도원 세계가 공존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걸작이다.

도원향 또는 도원경(桃源境), 무릉도원(武陵桃源)은 다 중국에서 말하는 이상향(理想鄕)을 뜻합니다. 도원향은 본래 진(晉)나라가 멸망한 후 왕족 중 하나인 사마예가 재건한 진왕조인 동진(東晉) 시절, 시인 도연명의 작품 『도화원기』에서 유래했죠. 누구나 가보고 싶은 낙원, 이상적인 땅을 그리는 마음은 ‘몽유도원도’ 같은 그림으로도 표현됐어요.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의 광경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죠.

도원향은 조선시대에 쓰인 소설 『무릉도원』에서도 등장해요. 다섯 명의 미인이 혼인하는 이야기라고 하여 ‘오미인’이라고도 불리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역경 끝에 황제의 호감을 사고 잘 살았지만, 훗날 무릉도원으로 들어갔다고 하죠. 왕의 아들이 꿈을 꾸고, 황제의 부마라는 높은 자리에 오른 인물조차 속세를 버리고 들어갈 만큼, 도원향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땅이라는 겁니다.

산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풍경이 아름답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땅, 도원향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신비한 땅, 샹그릴라와 닮았어요. 이는 티베트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신비한 불법의 땅, 샹바라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장소인데 소설만이 아니라 영화로도 소개되면서 서양의 많은 이가 관심을 보였다고 하죠. 심지어 세계의 신비학에 관심을 품었던 나치 독일에선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니 재미있는 일입니다. 물론, 소설에서 창작된 장소인 샹그릴라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죠.

고대 중국의 이야기 속 낙원과 서양 소설 속 이상향이 서로 닮은 것을 보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비슷한 바람을 지닌 모양이에요. 도원향은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 나오는 이상향과도 비교됩니다.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의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생각한 이상적인 나라지만, 타국과 전쟁을 벌일 군대도 있고, 노예도 존재하죠. 전란을 피해 떠나 정치나 군대 같은 것은 잊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땅 도원향과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도원향, 샹그릴라, 그리고 유토피아. 세계 각지의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이상향은 당시 사람들의 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싶다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 말이죠. 특히, 전란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세상을 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도원향에선 이민족의 침입으로 힘겨웠던 당시 사람들의 심정을 엿볼 수 있죠. 하지만, 세상에 도원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등과 분쟁이 있기 때문이죠. 봄으로 가득한 도원향은 매력적이지만, 봄은 겨울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죠. 겨울의 역경을 넘어섰기에 우리는 더욱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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