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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명분 없는 집단행동 그만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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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2차대전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급성장한 노동조합은 인플레에 따른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수백만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을 지속했다. 이렇게 시작된 파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정치 파업으로 변질하였고, 급기야 공산당과 좌익세력은 정권 타도와 체제전복을 위한 총파업을 추진했다. 이를 감지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최고사령부(GHQ) 사령관은 파업 중지를 전격 명령함으로써 총파업은 결행 직전 무산되었다. 1947년 2월 1일 전후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정권에서 있었던 ‘2·1 총파업’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물연대의 집단운송 거부에 이어 민주노총이 동시다발적 총파업을 예고한 다음, 정부의 파업 철회 권고에도 정치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열흘 넘게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물류 중단과 교통 대란으로 국민 경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데 이어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안전운임제 폐지까지 경고하면서 노·정 관계가 일촉즉발 위기로 치닫고 있다. 75년 전 일본의 ‘2·1 총파업’을 연상케 한다.

화물차주는 개인사업자에 해당
안전운임제 실효성·문제점 따져
원점에서 존폐 여부 재검토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번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는 민·형사적 면책이 되는 파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화물차주는 특정 회사에 종속되어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 화물차량을 가지고 위·수탁계약에 의해 운송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형식적으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에 소속되고 있을 뿐, 노동조합으로서 실질적·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노동조합이 아니다. 따라서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이나 단체행동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의 집단행동이 위법한 경우 이로 인한 손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이 아니라 하더라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할 수는 있다.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운송 거부에 동참하지 않는 다른 운송업자들에게 멱살잡이와 계란 투척에 이어 운송 차량에 쇠구슬을 쏘는 등 차량 운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정당화할 수 없다. 집회·결사도 쟁의행위와 마찬가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행할 때 면책되는 것이지, 타인의 조업을 방해하거나 위법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떤 이는 화물연대 사태의 책임을 전적으로 정부에 돌리고 있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다. 현재 문제가 되는 안전운임제의 도입 배경을 보면 화물차 운전자들의 과로·과적·과속 운행을 금지하기 위해 적정운임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도입됐다. 하지만 개인사업자 간 운송료 결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그 자체가 요금 담합으로 자유경쟁과 시장원리에 반한다. 이로 인해 2004년 안전운임제를 도입하면서 운송종사자의 집단적 화물 운송 거부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운수종사자에게 업무 복귀를 강제하는 업무개시명령제도를 함께 규정했다. 따라서 운수종사자가 국가의 정당한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거나 3년 일몰제를 전제로 도입한 안전운임제의 영구 존속과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행위는 명분이 없다.

안전운임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탓에 이를 둘러싼 분쟁은 도입 당시부터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점으로 돌아가 제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방법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안전운임제의 실효성과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다음, 존폐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양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굴복만을 강요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전가의 보도로 남용하지 말고, 화물연대 등 노동단체는 명분 없는 집단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잦은 파업으로 국민 피로도가 가중되는 가운데 민생을 무시한 총파업은 국민 호응을 받지 못한다. 며칠 전 지하철노조에 이어 철도노조도 예고된 파업을 철회하여 업무에 복귀했고, MZ세대를 중심으로 투쟁적 노동운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