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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철강 등 피해 3조…업무개시명령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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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계속해서 공급을 채근하고 있는데 회사에선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오네요. 더는 영업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직원들에게 내일 출근하지 말라고 했어요.”

서울 서대문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4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화물연대 파업 여파로 기름을 구하지 못하자 이날 주유소 문을 닫았다. 지금으로선 하루 뒤에도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인근의 또 다른 주유소도 사흘 전에 겨우 구했던 휘발유가 또다시 바닥을 드러내면서 두 번째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이후 물동량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항만과 시멘트 업계와는 달리 정유·철강·석유화학 업종에서는 ‘물류 마비’에 따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유·철강·석유화학 등에서만 약 3조원 규모의 출하 차질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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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피해가 커지자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추가 업무개시명령 발동 준비를 지시했다. 정부는 정유·철강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발동 준비를 마쳤다. 운송 거부 화물차주는 유가보조금 지급과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운송 거부 사태에 대해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정부가 강경책을 내놓은 것이다.

전국 주유소의 기름 수급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주말을 넘기면서 기름이 동난 주유소는 전국적으로 1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전국의 재고 소진 주유소는 총 88곳이었다. 서울·경기 54곳 등 수도권이 가장 많았으며 강원 10곳, 충남 10곳, 충북 6곳 등이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실제로는 재고가 바닥났지만 집계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은 주유소를 포함하면 재고가 바닥난 곳은 100곳이 넘을 듯하다”며 “처음 우려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기름 소비량이 많은 수도권 지역과 직영 주유소 중심으로 휴업 사례가 이어졌다. 정유사들은 개인사업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자영 주유소에 우선적으로 기름을 공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화물연대 미가입 차량을 구해야 해서 애를 먹고 있다.

물류마비 확산…주유소 휴업 속출, 제철소는 문 닫을 판 

정부는 동원할 수 있는 차량은 모두 동원하기로 했다. 물류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자가용 유상운송 허용 대상을 8t 이상 일반용 화물차·유조차까지 확대한다. 이 대상에 곡물·사료 운반차까지 포함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키로 했다. 군·관용 컨테이너 115대를 투입한 것에 더해 중장비 수송을 위한 군 차량 50대를 추가 투입하고, 도입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이 정도로 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화물연대 측이 육상 운송을 막고 있어 상당수의 기름이 우회로를 통해 간신히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한 대형 정유사 관계자는 “파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송유관이나 선박 운송 등을 통해 일단 기름을 옮긴 뒤 수송 업체가 찾아오면 그때그때 공급해 주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컨테이너 운송 인력 확보와 운반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출하량이 평소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지난 10일간 석유화학 업계의 누적 출하 차질 물량 규모는 약 78만1000t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173억원에 달한다.

철강업계 역시 누적 출하 차질 규모가 총 1조원어치를 넘었다. 국내 5대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제강, KG스틸의 출하 차질액만 9000억원에 달한다. 파업이 이어지면서 지난 6월 총파업 때보다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중소형 철강사들은 적재 공간이 부족해 제철소 내 도로나 공터에 철강재를 쌓으면서 버텨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세아베스틸 관계자는 “부분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지하는 쪽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용산 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 대응과 관련한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기업과 국민의 불편이 최소화되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정유·철강 등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은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또 6일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파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민생과 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조직적으로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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