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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전문의 칼럼] 어린이 암 환자 치료 제한하는 연령 금기 약물 조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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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전문의 칼럼 한정우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 현장에서 의약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의약품 적정사용’(DUR) 정보를 발표한다. 특정 연령 등에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거나 심각한 부작용 우려가 있는 약물 성분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특정 연령대 금기 성분 조항이 약물이 필요한 어린이 치료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외국에선 특정 연령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의사가 약물을 허가 사항 외 용도로 처방하는 오프라벨(Off Label)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법적 절차에 따라 허가 외 처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예외적으로 허가 외 처방 사전 승인을 받더라도 환자가 보험 적용을 받기가 어렵다. 또  확실한 근거 없이는 국내 식약처의 허가 승인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성인에게서 표준치료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 표적치료제와 면역관문억제제의 경우 소아·청소년 신세포암종이나 악성 흑색종에 대해선 외국에서도 증례 보고 수준의 근거만 갖고 있다. 이런 사유로 소아에게서 신약 치료는 원천적으로 불법이다. 미약한 근거나마 호소해 신약의 사전심의를 통과해도 기본적으로 비급여이기 때문에 희귀암 소아 환자들은 경제적 고통을 받는다.

연령 금기 약물 조항은 신약뿐 아니라 수십 년간 사용되며 안전성을 인정받은 약제 사용도 막고 있다. 소아·청소년 암 환자들이 통증을 호소해도 연령 금기라는 사유로 적합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기 어렵다.

허가 외 처방은 무분별한 처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소아청소년과학회의 설명에 따르면 부적절하거나 불법적·실험적 의미의 사용이 아닌 치료적 목적으로 가용한 근거를 분석하고 환자와 상의한 후 동의를 얻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본질은 약물이 소아·청소년에게 어떤 위험성과 이익을 보여주는지 평가하고,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다. 소아·청소년 연령 금기를 절대 금기, 상대 금기로 나눠 상대 금기 약물에 대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만은 연령 금기 약물을 치료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인정해 줘야 한다. 그래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진료 전문성이 보장되고 아픈 환아가 적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과정을 수련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한정우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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