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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넓히고 인파 모이면 경고 방송…경찰‧지자체 연말 인파 관리 안간힘

중앙일보

입력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예고한 파업일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후 서울 지하철 3ㆍ4호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경찰이 확성기로 질서유지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예고한 파업일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후 서울 지하철 3ㆍ4호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경찰이 확성기로 질서유지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인파가 몰리고 있으니 얌전하게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퇴근 대란’이 벌어진 지난달 30일 오후 7시쯤 서울지하철 2호선 역삼역. 개찰구 진입을 통제하던 한 경찰관은 확성기를 들고 이렇게 소리쳤다. 퇴근길 직장인이 몰려든 역삼역은 당시 개찰구와 승강장이 있는 지하 2층 대합실 진입로부터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차 이동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과밀 사태가 심각해지자 역에는 관할 경찰서 외에도 지하철경찰대·소방서·강남구청 직원 등 관계 기관 인력이 줄줄이 모여들었다. 현장에 나온 한 공무원은 “‘이태원 참사’를 겪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노심초사하며 인파 운집에 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2호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2호는 될 수 없어”…대책 마련 분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예고한 파업일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후 서울 지하철 3ㆍ4호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경찰이 확성기로 질서유지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예고한 파업일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후 서울 지하철 3ㆍ4호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경찰이 확성기로 질서유지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경찰과 지자체가 인파 밀집 등에 분주하게 대비하고 있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이들의 인파 관리 역량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경찰청은 이달 내 전국 경찰서와 지구대·파출소에 확성기를 최소 1대씩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이 지난달 중순쯤 전국 시‧도 경찰청에 예산을 배정한 뒤 확성기는 일선으로 속속 배치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파 관리에 효율적으로 대비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연말 ‘SNS 명소’로 꼽히며 사람으로 붐비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일대도 특별 관리되고 있다. 경찰은 철제 펜스(울타리) 구역을 백화점 건너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등으로도 넓혔다. 인근 경찰서 당직 근무자가 유사 상황 때 현장에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지원 체계도 변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야간(오후 5~10시)엔 인근 주한 중국대사관 경비 인력도 동원해 인파 밀집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고 말했다. 경찰은 2022 카타르월드컵 거리 응원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광장도 철제 펜스로 응원 구역을 나누는 방식 등으로 인파를 분산하고 있다.

이 밖에 이태원 참사 뒤 구성된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TF)는 지난 1일 3차 전체회의를 열고 주최자가 불분명한 다중 운집 행사도 주최자가 있는 행사에 준해 지자체 등 유관 기관과 협업해 안전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앞선 TF를 통해서는 각 시·도청 112상황실이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당직 기동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서울경찰청은 당직 기동대를 지난달부터 운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곧 전국 시·도청이 당직 기동대를 도입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현장 인력이 유기적으로 즉각 움직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CCTV 보고 경고 방송 울린다

지난해 11월 서울 신세계 명동 본점 외관에 설치 돼 있는 미디어 파사트를 보기위해 모인 시민들로 인도가 북적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지난해 11월 서울 신세계 명동 본점 외관에 설치 돼 있는 미디어 파사트를 보기위해 모인 시민들로 인도가 북적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 광진구는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 응급 대응 체계를 최근 강화했다. 건국대 인근 ‘건대 맛의 거리’ 등 지역 내 사람이 몰리는 장소에 면적 1㎡당 2명 이상이 밀리면 상황을 알려주는 군집 기능 등을 추가하는 식이다. 위험이 인지되면 해당 지역에는 CCTV 스피커를 통해 “인파가 몰릴 수 있는 곳에서는 출구를 미리 확인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경고 방송이 울린다. 광진구 관계자는 “경고 방송을 통해 인파 분산을 유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는 지난달 29일 관계기관 안전대책 회의를 열고 기관별 협조 방안 등을 논의했다. 중구 측은 ‘명동 빛 축제’ 등 관내 축제로 구에 연말 10만명 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 중구 관계자는 “CCTV 관제실에서 명동 관광특구 등 다중 인파 모니터링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찰과 지자체의 대책이 일부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대책을 세울 땐 ‘성공적 마무리’ 등처럼 목표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그 성공의 개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대책을 만드는 경찰과 지자체가 명확히 인식해 기획 단계부터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인재 가천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홍수 강도를 30년·50년 기준으로 설계했다가 기상 이변에 대응 못 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변수가 발생한다”며 “매뉴얼을 고치는 게 아니라 예측에서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용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관제센터만 봐도 경찰은 도로나 차도만을 보고 구청은 인도나 광장 등만을 보는 등 현 체제에선 일사불란한 통제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공동 대응이 아니라 재난·안전 담당 기관들이 현장에서 같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종합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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