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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 잊지 말자”… 장쩌민 애도 물결에 담긴 홍콩의 ‘속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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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국 주석 장쩌민의 사망을 보도하는 신문들. [출처 Kyle Lam/HKFP(홍콩프리프레스)]

전 중국 주석 장쩌민의 사망을 보도하는 신문들. [출처 Kyle Lam/HKFP(홍콩프리프레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타계하면서 중화권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운구되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유해 옆으로 시민들이 도열해 추모행진을 이어갔다. 중국 SNS에서는 장쩌민 전 주석의 생전 활동 영상이 잇따라 게시되며 그를 기리고 있다. 중국은 오는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장쩌민 추도대회를 거행한다.

홍콩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사망에 큰 애도를 표하고 있다. 장쩌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당일 저녁, 홍콩 입법회와 홍콩특별행정구(SAR) 법무부 등 주요 정부 부처 웹사이트는 그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흑백으로 표시했다. 홍콩의 주요 언론사들도 홈페이지를 흑백으로 변경했다.

대대적 추모 공간도 마련했다. 홍콩의 최상위 기관인 중앙인민정부 주홍콩연락판공실(中央人民政府駐香港聯絡辦公室)을 포함한 도시 전역엔 장쩌민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곳곳에 설치됐으며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홍콩 매체 HK01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왔다고 밝힌 한 이공대 학생은 “장쩌민의 통치는 홍콩에 큰 공헌을 했으며 시민들의 생활 수준이 분명히 향상됐다”며 유감을 밝혔다.

홍콩의 중국연락사무소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1일 시민들이 고(故)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을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홍콩의 중국연락사무소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1일 시민들이 고(故)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을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홍콩 고위 관리들과 의원들도 장쩌민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존리 홍콩 행정장관은 본인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삭제하고 장쩌민 전 주석의 서거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존 리 행정장관은 “장쩌민 주석은 높은 위신을 지닌 뛰어난 지도자이자 중국 공산당 3세대 중앙 지도부의 핵심”이라며 동시에 장쩌민의 개혁개방과 일국양제 정책에 대해 칭송했다.

또 “(본인은) 계속해서 일국양제 원칙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구현하고 홍콩의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보장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홍콩의 대표적인 친중파로 알려진 레지나입(葉劉淑儀) 의원은 페이스북에 “매우 유감”이라며 “장쩌민 전 주석은 집권 당시 홍콩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일국양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며 홍콩을 매우 지지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친중 인사 렁춘잉(梁振英) 전 홍콩 행정장관은 SNS에 “장쩌민의 지도하에 홍콩 사회가 다양한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했다”며 장쩌민을 ‘영원불멸’의 존재라고 기록했다.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이 1997년 7월 1일 자정 홍콩 반환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이 1997년 7월 1일 자정 홍콩 반환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국양제 영원하길’… 홍콩의 진짜 속내

홍콩의 각종 매체도 앞다퉈 장쩌민 기사를 보도하는데, 시각이 조금 다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장쩌민의 업적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모양새다.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 전날, 장쩌민이 홍콩에 상륙하기까지 1세기 넘게 홍콩에 발을 디딘 중국 지도자는 없었다”며 “장쩌민은 중국이 변함없이 ‘일국양제’, ‘항인치항(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 ‘고도자치’ 의 원칙을 이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장쩌민은 본인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홍콩 반환’을 꼽았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중국에 반환됐다. 당시 집권 중이던 장쩌민은 직접 ‘홍콩의 미래는 더욱 좋아질 것’(香港明天更好)이라는 휘호를 작성해오며 덩샤오핑이 영국과의 홍콩 반환 협상에서 제안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뼈대로 할 것이라 말했다.

장쩌민은 홍콩특별행정구(SAR) 정부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허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02년까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재임하면서 그는 ‘홍콩인이 홍콩을 고도의 자치권으로 다스린다’는 방침을 견지하며 홍콩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

장쩌민이 1997년 7월 1일 기념식에서 퉁치화(오른쪽) 당시 홍콩 행정장관과 첸치첸(왼쪽)중국 외교부장과 나란히 서 있다. [AFP=연합뉴스]

장쩌민이 1997년 7월 1일 기념식에서 퉁치화(오른쪽) 당시 홍콩 행정장관과 첸치첸(왼쪽)중국 외교부장과 나란히 서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 특별행정구 건립식 이후 장쩌민은 세 차례 홍콩을 방문했다. 특히 홍콩 반환 1주년을 맞은 98년엔 시민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며 아시아 금융 혼란이 홍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홍콩 정부의 저항 효과를 거듭 지지하고 칭찬했다. 2001년 장쩌민은 국제도시로서의 홍콩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포춘 글로벌 경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 2002년 네 번째 홍콩 방문을 했던 장쩌민은 당시 행정 장관이던 퉁치화(董建華)를 만나 격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퉁치화는 1997년 홍콩 반환과 함께 첫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홍콩 반환 전, 장쩌민은 홍콩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퉁치화라는 인물을 발견했고 그에게 ‘불간섭주의’적 접근법을 채택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러나 2002년, 퉁치화는 중국에 대한 반역은 물론 외국 정치단체의 홍콩 내 정치 행위 등을 모두 금지하는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며 사임했다.

과거 행적에 대해 돌이켜 보라는 의미일까. SCMP는 추모 기사에 퉁치화 역시 함께 언급했다. 퉁치화는 최근 “장쩌민이 1997년 홍콩 반환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일국양제 국가 원칙을 구현한 위대하고 현명한 지도자라고 늘 굳게 믿고 있다”고 밝혔다. SCMP 보도에 따르면 퉁의 대변인은 “퉁 씨가 그를 매우 그리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퉁치화는 장쩌민이 위대하고 현명한 정치가이자 지도자라고 항상 굳게 믿었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퉁치화는 장쩌민이 위대하고 현명한 정치가이자 지도자라고 항상 굳게 믿었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홍콩을 방문하거나 홍콩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강렬한 따뜻함을 느꼈다”, “영원히 빛나는 우리 조국의 진주 (홍콩)”, “홍콩이 더 나은 미래를, 모든 주민이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SCMP는 장쩌민의 말을 인용하며 홍콩을 향한 장쩌민의 과거 행보에 관해서도 기술했다.

“장쩌민시대의 홍콩은 일국양제 하에서 ‘가장 자유로운 황금기’였다”. 홍콩 유력매체 홍콩명보는 류루이사오(劉銳紹) 홍콩 시사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홍콩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과거 중앙 정부의 정책을 돌아보는 기사를 작성했다.

홍콩 유력신문사 타쿵파오(大公網)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타쿵파오 95주년을 기념하여 작성한 축사를 공개했다. 공개된 두 개의 휘호엔 “애국과 홍콩을 사랑하는 전통을 계승하고 일국양제 정책을 시행한다”, “100년 애국 전통을 살려 시대와 함께 미래를 개척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타쿵파오는 해당 휘호와 함께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며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양심”이라며 “두 축사의 내용과 의미는 타쿵파오에 대한 관심과 격려이며, 홍콩 언론에 대한 간절한 당부이며, 홍콩의 단결, 안정, 번영에 대한 기대”라고 밝혔다.

(좌) 장쩌민이 1997년 타쿵파오 창건 95주년을 맞아 작성한 축사. (우) 2002년 타쿵파오 100주년 당시 장쩌민이 작성한 축사. [출처 타쿵파오(大公網)]

(좌) 장쩌민이 1997년 타쿵파오 창건 95주년을 맞아 작성한 축사. (우) 2002년 타쿵파오 100주년 당시 장쩌민이 작성한 축사. [출처 타쿵파오(大公網)]

SCMP는 「홍콩은 장쩌민에게 감사의 빚을 졌다」는 사설을 실으며 “경제적 붕괴와 함께 정치적 분리,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거대한 권력 경쟁이 일어났다. 불행하게도 홍콩은 지금 끔찍하고 쓰라린 투쟁에 갇혀 있다”고 밝혔다. 또 “홍콩에서는 더는 오래된 규칙 (일국양제)이 적용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은 장쩌민이 홍콩을 위해 한 일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난 7월 홍콩반환 25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은 지난 25년 동안 ‘일국양제’ 약속이 철저히 지켜졌고, 그 결과 홍콩이 현재의 번영 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은 시 주석의 집권 이후 일국양제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중국은 2019년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후 2020년 홍콩 보안법을 제정해 통제를 더 강화했다. 홍콩의 중국화를 못 박은 셈이다.

어긋난 일국양제 정책에 탈(脫) 홍콩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블룸버그통신은 “홍콩의 중국화로 일국양제 시스템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많은 사람이 불안감에 홍콩을 떠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쩌민의 죽음이 홍콩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차이나랩 김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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